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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7세기 선비들의 낙동강문화(洛東江文化)와 그 의미 - 정구, 장현광, 정경세의 문학 작품을 중심으로 - = 16th and 17th century scholars’ culture of 洛東江 and its meaning - Focusing on the literary works of Jeong Gu, Jang Hyeon-kwang, and Jeong Kyung-s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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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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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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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8(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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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현에게 산수(山水)는 삶의 터전이자, 공부와 풍류의 공간이었다. 낙동강은 생명의 근원인 물을 소유하고 있기에, 다양한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 강을 통해 경상좌 · 우도, 서울 · 경기까지 교류와 협력, 갈등을 일으키며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본 논의는 16-17세기에 활동한 한강 정구 · 여헌 장현광 · 우복 정경세를 중심으로, 이들이 어떻게 낙동강을 인식하며 문학으로 창작하고 있는지, 그 동이성(同異性)을 살펴보고 나아가 문화현상을 고찰했다.
정구 · 장현광 · 정경세의 낙동강 인식은 첫째, 놀이와 선유(船遊)의 공간으로 활용하며, 풍류를 즐기고 있었다. 이들은 낙동강(洛東江) 가에서 소요를 하는 소소한 즐거움과 달밤에 뱃놀이를 즐기며 풍류를 만끽하고 있었다. 즉 공자의 기상을 함양하고 풍류를 즐기고 있었다. 동인(同人)과 함께 물가에서 소요하기도 하고, 뱃놀이를 하며 달구경과 시를 창작하기도 했다. 공자와 증점이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대에서 바람을 쐬는 기상과 뱃놀이 문화가 적극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둘째, 전대의 도학자를 추숭하며 은일(隱逸)과 구도(求道)를 지향하고 있었다. 낙동강은 길재, 김굉필, 퇴계학파 등 도학자를 추숭하고 있었다. 이들은 낙동강 가에 은일하여, 구도(求道)를 지향하며 학문과 성정 함양에 힘을 쏟고 있었다. 그의 제자 및 동인(同人)은 낙동강 가에 집을 지어, 왕래와 교유를 하며 학문을 배우고 도학 함양을 함께하고 있었다. 이들은 공자의 기상을 함양하고, 도(道)와 덕(德)을 겸비하고자 노력했다. 낙동강 가는 은일처, 도학처가 되어 제자들과 함께 낙동강문화를 형성하고 있었다.
정구 · 장현광 · 정경세는 낙동강을 중심으로 求道와 풍류 문화를 형성하고 있었다. 두 문화가 혼융되어 반복되어 나타나, 놀이와 구도의 습합이 이뤄졌다. 낙동강은 도맥이 흐른다고 생각하며 강학(講學)과 선유(船遊) 등의 문화를 형성했다. 이들은 좁게는 학단을 형성하고, 넓게는 도맥[학파]을 형성해 전승하고 있었다. 즉 당대 영남 사림파의 성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비록 지역은 달리했지만, 정구는 대구 인근에서 장현광은 구미에서 정경세는 상주의 낙동강 가에서 제자를 양성하고 학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For our Seon-hyeon, mountains and waters were a place of living, a place of study and style. Because the Nakdong River possesses water, the source of life, it has created various cultures. Through this river, exchanges, cooperation, and conflicts are being created from Gyeongsang Left and Right to Seoul and Gyeonggi Province, forming a culture. This discussion focuses on Jeonggu Han River, Hyeonkwang Yeoheon, and Jeonggyeongse Woo Bok, who were active in the 16th and 17th centuries, and how they perceive the Nakdong River and create it as literature, examines the synchrony, and further examines the cultural phenomenon.
First, the perception of Nakdong River by Jeong Gu, Jang Hyeon-gwang, and Jeong Kyung-se was used as a space for play and entertainment, and they enjoyed the wind. They were enjoying the small pleasures of jogging along the 洛東江 family and enjoying the winds of the moon by boating on the moonlit night. In other words, he was cultivating the spirit of Confucius and enjoying the wind. They spent time together at the water's edge, played boats, and created moon-watching and poetry. It can be seen that Confucius and Jeung-jeom bathe in the rider, and get air in the radish belt, and the culture of boating and gis are actively appearing.
Second, he respected the Taoists of the previous generation, and was oriented toward 隱逸 and 求道. Nakdonggang worshiped Taoists such as Giljae, Kim Gongpil, and the Toegye School. They were quietly working on the banks of the Nakdong River, oriented toward the path of morality and concentrating on learning and cultivating character. His disciple and fellow man built a house on the banks of the Nakdong River, traveling and interacting, learning science, and cultivating the Tao together. They tried to cultivate the spirit of Confucius, and to combine the Dao and the virtue. The Nakdonggang River became a place of solace and education, forming a Nakdonggang culture with the disciples.
Jeong-gu, Jang Hyeon-gwang, and Jeong Gyeong-se formed a culture of 求道 and Pungryu around the Nakdong River. The two cultures blended and appeared repeatedly, creating a fusion of play and composition. He thought that the Nakdong River flows through the river, and formed a culture such as literature and literature. These were passed down by forming a narrow school, and broadly forming a domaek (school). In other words, it was closely related to the growth of the Yeongnam Sarim group at the time. Although the regions were different, Jeong-gu was near Daegu, Jang Hyeon-kwang was Gumi, and Jeong Gyeong-se was training students along the Nakdong River in Sangju, and he continued his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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