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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 효령대군이보(孝寧大君李補)(1396~1486)의 불사(佛事) 활동(活動)과 그 의의(意義) = The Buddhist Patronage of Prince Hyoryeong, Lee Bo and its Signific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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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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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연도
2008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KDC
228.705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25-60(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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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조선 초기 강력한 억불정책이 전개되는 가운데 종실(宗室)의 수장(首長)이었던 효령대군(孝寧大君)의 불사활동(佛事活動)을 정리한 것으로 그가 불사를 통해서 이루고자했던 본질적인 의의를 고찰하고자 하였다. 효령대군이 평생 동안 불교를 신봉해왔음은 이미 역사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사찰에서 설행되는 불교법회(佛敎法會)를 비롯하여 사찰의 중수(重修)및 중창(重創)에 관여하였다. 또한 불상(佛像), 불화(佛畵), 탑파(塔婆), 범종(梵鍾)등 다양한 불교미술품을 조성하고, 불경(佛經)의 언해(諺解)및 간행(刊行)등에 실질적인 후원자가 되기도 하였다. 억불 숭유정책이 시행되던 조선 초기의 시대 상황을 감안한다면, 그의 불사활동이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졌음은 주지할 만하다. 그의 불사활동은 단순히 개인적인 신앙심으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효령대군의 불교에 대한 관심과 신앙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왕실의 불교신앙이라는 배경에서 성립된 것이었다. 세종 연간까지 효령대군은 부모와 형제를 천도하고 종실의 안정을 도모하며 부왕의 후궁과 동생의 부인을 위로하는 등 여러 목적으로 조성된 불사에 참여하였다. 이러한 적극적인 불사참여는 초기에 개인적인 불심으로부터 발현한 것이지만, 이후 그의 불교후원은 개인의 차원을 넘어 종실의 수장으로서 왕실을 대표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 시기 효령대군을 중심으로 일어난 불사 활동은 태종과 세종 전반기 주춤했던 불교계에 활기를 불어 넣었으며, 세조 연간에 시행되었던 불교정책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세조 연간은 정치적으로 불안한 시기였다. 형제와 조카를 살해한 세조는 왕권의 정통성 문제에 있어 종실과 신하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였다. 때문에 그는 대군시절부터 신봉했던 불교를 자신의 왕권 강화의 도구로 적극 활용하였다. 사리분신(舍利分身)이나 여래현상(如來現相)과 같은 불교적 상서(祥瑞)를 통해 왕권의 정당성을 찾고자 하였다. 효령대군은 불교를 통해 왕권을 강화하려는 세조의 정책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세조의 즉위 과정에서 여러 종친들과 단종의 죽음을 겪었던 효령대군은 더 이상의 왕권 다툼으로 인한 참화를 방지하기 위해 세조의 적극적인 불사에 동참한 것으로 생각된다. 당시 효령대군이 세조를 지지한다는 사실은 대외적으로 종실이 세조의 정통성을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하였으며, 사실상 세조의 왕권강화에 큰 힘을 실어주게 되었다. 효령대군은 기념비적인 흥천사종(興天寺鍾)을 주성하여 세조의 정통성과 선정(善政)을 대외적으로 선전하였고, 세조의 명을 받아 원각사(圓覺寺)건립과 간경도감(刊經都監)에 참여하였다. 세조 연간에 일어났던 불교의 상서로운 이적은 순수한 종교적 현상을 통해 단종의 폐위와 세조의 즉위로 촉발된 왕의 위상 하락과 정통성에 대한 위협을 극복하기 위한 정치적인 행보로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세조연간 효령대군의 불사활동은 왕권 안정이 곧 종실의 안정이라는 종실 수장으로서의 의무를 발현한 것이라 하겠다.
더보기Prince Hyoryeong, as the representative member of the royal family, supported Buddhist masses in the early Joseon Dynasty when a strong anti-Buddhist policy was in effect. This research aims to analyze the purpose of his patronage and what he intended to achieve through it. It is well known that the prince had lived his life as a sincere Buddhist. He supported Buddhist rituals and the restoration of Buddhist temples. He also supported Buddhist arts such as sculpture, painting, and the construction of pagodasand bells as well the publication and transcription of Buddhist scripts. When one considers the strong anti-Buddhist policy with which the Dynasty suppressed Buddhists at the time, it is possible to say his dedicated patronage was remarkable. His patronage doesn`t seem to originate solelyfrom his personal piety. The royal family had its own tradition of Buddhist belief and it was the basis of his piety. Until the reign of King Sejong, the prince supported many Buddhist masses which were carried out for the sake of the royal family. At the beginning, his patronage was based on his personal piety. But later, he supported Buddhist masses as the representative member of the royal family. His patronage revived the impoverished Buddhist society in the reign of King Sejong, and made the foundation of the pro-Buddhism policy which was employed in the reign of King Sejo. King Sejo killed his brother and cousin to usurp the throne thereby making his claim to power illegitimate. He used Buddhism to make up this political defect. He held Buddhist rituals and fabricated miracles to redeem his political authority. Thus Prince Hyoryeongplayed an important role in this situation. Prince Hyoryeong, having experienced the illegal usurpation of the throne, supported King Sejo to avoid any further dispute over the throne. The fact that the prince supported King Sejo meant that the entire royal family admitted the King`s authority and the legitimacy of the throne was strengthened. Prince Hyoryeong supported the production of the Buddhist bell of Heungcheon Temple to propagate the orthodoxy of King Sejo and his good government. The prince also supported the construction of Wongaksa Temple and joined Kangyung-dogam(刊經都監), the office of publication of Buddhist scripts). The Buddhist miracles which occurred during the reign of King Sejo seem to signify political attempts to strengthen the orthodoxy of the throne. So that it is possible to see that Prince Hyoryeong, as the representative member of the royal family supported Buddhist masses to stabilize the throne and to redeem the royal family`s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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