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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淸關係의 초기 형성단계에서‘盟約’의 역할-丁卯胡亂期 朝鮮과 後金의 講和過程을 중심으로- = The role of ‘maengyak’ in early stages of relationship between Joseon and Q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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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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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per emphasizes that during the first Manchu’s invasion in 1627, peace between Joseon and Manchu was signed in the form of a ‘maengyak(盟約, pledge)’. In this context, it aims to consider the process and practical effects of the pledge confirmed in 1627. In the Pre-modern era of East Asia, a pledge was signed frequently to seek peace between the two parties which didn’t have an established relationship like tributary system. Especially the Late Jin(後金) of 17th century utilized it actively in the purpose of integrating its nation and escaping from the influence of Ming Dynasty. This east-Asian pledge accompanies sacrifice, vow and curse as its form and during the Manchu’s invasion, Joseon and the Late Jin had negotiated for a long term about whether the peace is concluded by a pledge or not. Late Jin, who wanted to formalize its relationship with Joseon and to progress smoothly a war with Ming, forced a pledge. On the other hand, Joseon wanted to avoid the form of a pledge not only because it was reluctant to be formally connected with Late Jin but also because it was aware of the binding force that a pledge can possess. But in the end, these two dynasties made a pledge by which the foreign relations of Joseon would be restricted until the second Manchu’s Invasion in 1636. After signing, Manchu started the war of conquest against Ming with lessened threat in behind. Whereas, King Injo of Joseon dynasty had to endure internal criticisms that he made expedient decides as well as those of Ming that he betrayed its gratitude and started interacting with Late Jin. Besides, Joseon had to give much of economical supports to Manchu, but in the end, it brought about the second invasion in 1636 on the pretext of the pledge broken by Joseon. Although Joseon wanted to evaluate the pledge as another loose rein policy, effectively, it was rather Joseon who was isolated in the international east-Asian society of that time. At this point, we can understand the pledge not as a mere show, but as a kind of ritual with practical binding force.
더보기이 논문은 정묘호란 당시 조선과 후금의 강화가 ‘盟約’이라는 형식으로 이루어졌음에 주목하여 ‘정묘맹약’의 체결 과정과 실질적 영향력을 고찰하였다. 전통시대 동아시아에서 맹약은 조공-책봉과 같이 제도화된 관계가 수립되지 않은 양자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일시적인 평화를 구하는 과정에서 빈번하게 실시되었는데, 특히 17세기 후금은 주변 부족들을 통합하고 명 질서에서 벗어나는 과정에서 맹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맹약은 犧牲과 盟誓 그리고 詛呪라는 형식을 수반하는데, 정묘호란 당시 조선과 후금은 강화의 형식을 ‘맹약’으로 할 것인지의 여부를 두고 장기간 교섭을 진행하였다. 후금은 조선과의 관계를 공식화하고 대명 정복전쟁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한 목적에서 맹약을 강요하였고, 조선은 후금과의 공식적인 관계설정을 꺼려하였던 데다 맹약이 지니고 있는 구속력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맹약의 체결을 최대한 회피하려 하였다. 하지만 결국 조선은 후금과 맹약을 체결하였고, 이후 병자호란 이전까지 조선의 대외관계는 정묘맹약으로 인해 상당히 제한되었다. 맹약으로 인해 後顧之患을 덜 수 있었던 후금은 본격적인 대명 정복전쟁을 시작하였고, 인조정권은 權道를 행했다는 내부의 비판과 함께 再造之恩을 잊고 후금과 교류하였다는 이유로 명나라의 비난 또한 감수해야 했다. 그뿐 아니라 조선은 후금에 많은 경제적 지원을 하게 되었으며,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는 조선이 정묘맹약을 저버렸다는 이유를 조선침략의 주요 명분으로 선전하였다. 조선은 정묘맹약을 어디까지나 羈縻政策의 일환으로 포장하려 했으나, 정묘맹약으로 인해 국제무대에서 실질적으로 ‘재갈’이 채워진 쪽은 오히려 조선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보았을 때, 정묘호란 이후 병자호란 이전까지 조선과 후금의 관계를 규정한 ‘맹약’은 단순한 겉치레가 아니라 보다 실질적인 구속력을 지닌 의례의 일종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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