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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임씨 세력의 연원과 분포 = An Origin and Distribution Im Family Local Power in Goryo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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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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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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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C
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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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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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179(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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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wi-hyeon was a sub-hyeon(sub-county) of Suju and Pyeongtaek-hyeon was a sub-chyeon of Cheonan-bu in Goryo Era. Local families with surnames existed in the region but their power was not strong. When Taejo Wanggeon concilated the local family powers, he was interested in Chungju, Cheongju, and Jincheon as strategic areas. Taejo tried to incorporate the local power of Cheongju’s Yu family and Jincheon’s Im family from which Taejo’s 10th consort and Hyejong’s queen came. Cheongju area was also anti-cental government and Taejo Wanggeon tried to pacify the area by multiple visits and building walls, and he provided a preferential treatment to Chengju’s local power family.
Pyeongtaek area had a significance as a center from which Im family power settled first and migrated throughout the country. Pyeongtaek area a combinded area of Jinwi-hyeon of Gyeonggi province and Pyeongtaek-hyeon of Chungcheong province. Located at the western sea coast area, it had a geographical advantage of having a trade with China, and it provided the reason to have a tale that Im family ancestor came from China. Pyeongtaek-hyeon had agricultural fields of 2,234 gyeols(15,447㎡) of which rice fields were three fifth, and Jinwi-hyeon had 2,841 gyeols of which rice fields was a half. According to Seo Geo Jeong, “offcials and people of Jinwi-hyeon sufferd from frequest visits by envoys and official visitors as it was located at the juction of three provinces.” Although Pyeongtaek was not a rich area this geographical factor contributed to the growth of Im family as one of nation’s big ten families.
Im family of Pyeongtaek spreaded out to Joyang, Okgu, Yecheon, Buan, Sunchang, Seonsan, Eunjin, and Gilan. The offsprings of Im family settled in the new areas and promoted themselves to central officials. There were various reasons for them to migrate to new areas. Mostly they migrated as they moved to the areas where their in-law families lived, or fleed from political oppression and wars. They might fleed to avoid explotation of local officials or collection of debts, or they might seek the ways to live at the time of bad harvest, though evidences are rare. This also happened to other families in general in Goryo Era.
고려 초에 진위현은 수주 속현으로, 평택현은 천안부의 속현으로 있었다. 이들 지역에도 토성이 있었으나 지역세가 강하지 못하여 고려 초에 큰 세력을 떨친 것 같지는 않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호족세력들을 회유하였는데 당시 전략적 요충지로서 그의 관심대상은 충주, 청주 그리고 진천 등이었다. 따라서 태조가 그의 세력권 내로 편입시키려고 시도한 호족세력은 충주 유씨와 더불어 왕건의 10번째 비와 혜종의 비가 된 진천지방의 임씨세력이었다. 청주의 경우, 궁예에 의해 1,000여명이 사민될 정도로 반정부적이었다. 그러므로 고려를 건국한 왕건은 수차례의 순행과 축성, 그에게 협조적인 청주호족을 우대함으로서 민심을 회유하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고려시대의 평택지역은 임씨세력이 처음으로 거주하면서 각지로 분파된 중심지로서의 의미가 중요하다고 판단된다.
지금의 평택지방은 경기도 영역이던 진위현과 충청도 영역이던 평택현이 합쳐진 지역이다. 이곳의 지리상 이점은 서해안으로 바로 통할 수 있어 중국과의 교역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평택임씨 시조가 중국에서 건너왔다는 설화가 있게 된 이유라고 생각한다.
평택현은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墾田이 2234결 중 논이 3/5 정도이며 진위현은 간전 2841결 중 논·밭이 반반이라고 한다. 특히 진위현의 경우, 서거정은 “3도의 요충지에 위치하여 사신과 빈객의 왕래로 백성과 아전이 번거로운 영접에 시달린다고 하였다. 평택이 크게 풍족한 지역은 아니었지만 이점이 오히려 각지로 뻗어나갈 토양을 조성해 오늘날 임씨는 10대 성씨 중 하나로 발전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평택 임씨는 조양, 옥구, 예천 부안, 순창, 선산, 은진, 길안 등 전국에 퍼져나가 각 지역에서 토착세력으로 자리잡아 중앙에 관원으로 등장하였다. 그들이 살던 지역에서 이주하게 된 원인은 다양하다. 그 중 가장 많은 이유는 처가나 외가를 따라 가거나, 혹은 정치적 탄압을 이유로, 국가로부터 사패를 받거나 전쟁을 피해서 이주한 것으로 판단된다. 혹은 속현에 대한 주군현의 수탈을 피해, 혹은 흉년이 들어 살기 힘들어서, 혹은 빚을 피해 도주하기도 했으리라 생각되지만 확실한 자료는 찾기 어렵다. 이는 평택 임씨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고려시대에 살았던 주민들의 일반적인 모습이라고 생각된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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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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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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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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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5 | 0.5 | 0.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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