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후반기 문학의 근대 기획 양상
저자
발행사항
서울 : 고려대학교 대학원 , 2010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박사)-- 고려대학교 대학원 : 국어국문학과 2010. 2
발행연도
2010
작성언어
한국어
주제어
발행국(도시)
서울
형태사항
229 p. ; 26 cm.
일반주기명
지도교수: 김인환
참고문헌: p. 218-229
DOI식별코드
소장기관
이 논문은 이효석, 유진오, 김남천이 기본적으로 진보적 역사관을 지닌 근대주의자였으며, 식민지 후반기 정치사회의 변화에 따라 이들이 지닌 진보에 대한 관점을 변화시킬 수밖에 없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이들은 1920년대 후반 사회주의가 지식인 사이에 유행하던 분위기 속에서 근대문학에 접했다. 유진오, 이효석은 사회주의적 동반자 작가로, 김남천은 카프계 작가로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국제주의자이자 근대주의자였으며 초반에 그 자질은 ‘사회주의’로 드러났다. 창작 초기에 이들은 역사의 진보와 청춘남녀의 연대를 서사의 구성 원리로 삼았다.
이효석, 유진오, 김남천은 1910년을 전후해서 태어난 국권상실 1세대다. 국가 경험이 없던 이들이 주체를 정립하고 사회를 구성할 근대 보편주의로 택한 것은 일차적으로 사회주의였다. 사회주의란 주권 없이 주체를 정립하고 미래를 구성해낼 이념으로 식민지 청년들에게 수용되었다. 이는 ‘새로움(新興)’의 사상이었으며 ‘청춘’의 은유였다. 사회주의란 기성세대의 도움 없이 청년의 연대만으로 세계의 미래에 개입할 수 있게 하는 유토피아적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더불어 사회주의는 그것이 적으로 삼은 자본주의의 최대 단계를 제국주의로 봄으로써 식민지 청년들에게 더욱 매력적인 것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
1931년 만주사변과 1935년의 카프 해소, 1937년의 중일전쟁과 1941년의 태평양전쟁은 사회주의적 진보주의자이던 작가의 세계관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만주사변 이후 강화된 사회주의 탄압의 분위기 속에서 이들은 소설을 통해 전향의 논리를 구성하게 된다. 1935년 카프 해소, 사회주의 러시아의 일국사회주의화는 이들이 세계를 구성하는 방식을 전적으로 수정하도록 요구했다. 1930년대 중반 폐병, 성병, 마약중독은 이 시기 사회주의자들의 전락과 적응지체에 대한 은유적 질병이었다.
경성의 소비자본주의화와 더불어 일어난 ‘새 것의 가치 하락’ 및 ‘사회주의 퇴조’는 이 시기 작가들이 경험한 이중(二重)의 권태의 원인이 된다. 1930년대 중반 이후의 소설은 ‘권태의 사회학적 대응’이자 매너리즘의 양식으로 드러났다. 현실 초월적 이상주의로 도피하거나, 사소한 일상적 문제에 피학적으로 반응하는 주체의 모습이 빈번히 형상화 되었다.
1930년대 초반에 소설의 주인공은 청년이었으나, 1930년대 후반 이후 소설의 주인공은 삼십대를 넘어선 중년에 접어들고 있었다. 이러한 소설 내적 세대 변화와 더불어 주인공들의 세계관 역시 변화하게 되는데, 초기에는 새로움과 혁명을 추구하던 청춘은 점차 세속적이고 타협적이며 기회주의적인 속물로 변화하게 되었다.
1930년대 후반기가 되면 부재상태가 된 보편주의에 다른 가치들이 개입할 여지가 생긴다. 이효석, 유진오, 김남천은 장편소설을 통해 학문․예술․기술(學藝術)적 근대를 기획하였다. 전문가로서의 학자가 자연과학, 인문학을 통해 근대를 완수 혹은 초월하려는 시도가 이 시기 장편소설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예술이란 고귀한 ‘시민’을 양성하는 것으로서 특히 ‘음악’이 지닌 조화와 통일의 매커니즘은 문화시민을 문화제국에 통합시키는 원리를 지닌 것이기도 했다. 새시대의 전형으로 기술자나 과학자가 제시되었다. 김남천의 소설에는 인도주의적 가치나 이념에 휩쓸리지 않은, 교양과 건강을 두루 갖춘 식민지 기술자가 빈번히 등장했다.
1940년을 전후로 하면 ‘동양적인 것’, ‘조전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 부각되는데 이는 일제 말 파시즘의 확장 및 동아시아론과 무관치 않았다. 장편소설이 주로 낙관적 결말을 제시하며 전체에 투항하는 서사를 그려내고 있었다면, 일부 단편소설은 죽음의 주위를 배회하고 있거나 부재하는 본향(本鄕)을 그리워하는 애상적 노스탤지어에 빠져들기도 했다. 1930년대 초반 사회주의 계열 혹은 동반자 계열의 작품은 미래를 바라보고 있었으다. 이 시기에는 동경(憧憬)의 전망이 우세했다. 한편 1940년 이후 ‘애상적 노스탤지어’를 주제화한 소설은 과거를 향하고 있으며 ‘애수(哀愁)’의 감성에 기반하고 있다.
한편 이 시기 이효석과 김남천의 작품에 기독교적이거나 메시아적 소재가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20대 초반 창작을 시작하던 때의 양식과 소재로 회귀하려는 무의식이 감지된다. 김남천은 이즈음 미완(未完)의 작품을 많이 남겼다. 1940년 이후 그의 소설에는 감상(感傷)이 과잉 노출되어 있다. 한편 그는 이 시기 삽화, 우화, 수수께끼를 사용하면서 서사를 미숙화하거나 신비화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러한 서사의 불능 양상은 이 시기 하나의 ‘가능성’으로 독해될 필요가 있다. 사회주의에서 출발한 근대주의자가 ‘진보’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구제(救濟)의 인식에 다가가고 있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미숙(未熟)한 서사나 미완(未完)의 서사를 문학사 안으로 불러들이는 일은, 친일/협력/침묵의 삼 항으로 분류되는 이 시기 문학에 대한 다른 시각을 제공할 수 있다. 일제 말 조선문학에서 ‘미완’의 형식은 이 시기 문학의 가능한 형식으로 존립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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