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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균형 외교 정책과 2차 대전과의 상관관계 연구 = A Research on the Interrelation between Polish Mediation Foreign Policy and World War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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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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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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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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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239(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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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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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는 18세기에 들어와 내우외환 끝에 주변 3대 강국-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에 의해 세 번에 걸친 삼국 분할을 당한 뒤 123년간
나라 없는 설움을 겪다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18년에 비로소 다
시 나라를 되찾았다. 건국의 영웅인 피우수드스키 장군이 정권을 잡으
면서 폴란드는 옛 영토와 명예를 되찾고 이웃하는 양대 강국인 독일과
소련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노력했다. 당시 폴란드의 외교 안
보는 베르사유 평화조약, 국제연맹, 프랑스-폴란드 동맹의 세 축으로
구성됐다. 하지만 1933년 히틀러가 독일 정권을 장악한 후 자신의 세
계 정복 야욕을 공공연히 드러내면서 상황이 급변해져갔다. 폴란드는
이웃하는 독일과 소련 중 한 나라와 지나치게 밀착될 경우 다른 한 나
라로부터 받게 될지 모르는 보복이나 공격을 두려워했다. 18세기 국가
분할과 패망의 악몽이 다시금 되살아난 것이다. 그래서 폴란드는 1932
년에 스탈린 통치하의 소련과, 1934년에는 히틀러 통치하의 독일과 각
각 불가침조약을 체결한 뒤 등거리 외교를 펼치며 세력 균형을 시도했
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에 자국의 군사력과 동맹 관계를 과신하
던 폴란드 외무장관 벸은 “굴욕적인 평화보다 폴란드 민족의 자존심이
훨씬 고귀하다.”고 당당하게 주장하며 당시 국민들로부터 전폭적인 지
지를 받았다. 하지만 폴란드가 방심하고 있는 사이 히틀러와 스탈린은
독-소 불가침조약을 체결하며 비밀리에 상호간에 걸친 폴란드 침략을
용인하고 또 다시 폴란드를 양국 간에 분할한 뒤 소멸시키는 것에 합의
했다. 결국 1939년 9월 1일 180만 명의 독일군이 폴란드를 침공하며
제2차 세계대전이 막을 올렸다. 그로부터 16일 뒤에는 소련이 그 어떤
선전포고도 없이 등 뒤로부터 폴란드를 침략했다. 폴란드가 꿈꾸고 확
신하던 균형 정책은 채 7년을 넘기지 못하고 비참하게 막을 내리고 말
았다. 이후 폴란드는 동서로 분단되어 각각 독일과 소련에 의해 분할
점령되며 아우슈비츠로 대변되는 처참한 대학살과 민족 말살이라는 고
난을 감내해야만했다.
In the 18th century Poland was divided into parts three times among the
Big Three strong countries- Prussia, Austria, Russia after troubles from
within and without. In the year 1918 Poland finally took back its own
sovereignty in consequence of World War Ⅰ after a long time of 123 years
of grief over the national ruin. Józef Piłsudski, the national hero of
foundation, seized power and tried to retrieve former territory and glory and
be independent from the influences of two powerful neighboring countries,
Germany and Soviet Union. At that time the Poland's diplomacy for national
security was composed of three axes - the Versailles Treaty, the League of
Nation and a France-Poland alliance. However in the year 1933 when Hitler
seized power, he brought out publicly the lust of domination of the world
which brought a sudden change of the situation. Poland was afraid of the
retaliation or offensive movements from two strong neighbors in case if
they adhere closely to one of them. The division of the nation in 18th
century and the hideous dream of the ruin has been reborn for the second
time. Therefore Poland tried to maintain the balance of power by being
under power of Stalin in 1932 and also being under Hitler's power in 1934
after contracting a nonaggression pact and extending the equidistance
diplomacy. Just before the outbreak of World War Ⅱ, the Foreign Minister
Józef Beck, who flaunted the military strength and an allied relation, has
won the hearts and minds of the people by claiming that "the pride of the
nation is more meaningful than a disgraceful peace." However when Poland
was unwatchful, Hitler and Stalin had contracted a nonaggression pact
between Germany and Soviet Union and had admit an invasion of Poland in
secret. They also had agreed to divide Poland between them and plow under
the nation. Eventually on September 1st 1939 1,8 million German soldiers
invaded Poland and drew up the curtain of the World War Ⅱ. And 16 days
from that date without any declaration of war, Soviet Union attacked Poland
from the back. Polish dream and assurance of balanced policy had come to
an end in not even 7 years. Since then Poland was separated into East and
West, divided by the occupation of Germany and Soviet Union. And also
Poland had to bear hardships of the decapitated holocaust of Auschwitz and
the national obliteration.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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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1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기타) | KCI등재 |
2013-01-01 | 학술지명변경 | 한글명 : 동유럽연구 -> 동유럽발칸연구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 KCI등재 |
200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6-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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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13 | 0.13 | 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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