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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가톨릭계의 안중근 기념사업 전개와 그 = An Jung-Geun Memorial Affairs by Korean Catholic church and Its Mea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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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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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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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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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82(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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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한국가톨릭계의 안중근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없이는 안중근의 사상의 현재화 또는 미래화를 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한국가톨릭계의 안중근 기념 사업 전개와 그 의미’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국권회복 이전 뮈텔 주교를 필두로 한 한국가톨릭계의 주류세력은 안중근의거를 살인행위로 규정하였다. 물론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드망즈 신부 등 안중근의거를 적극 옹호한 세력도 존재하였다. 하지만 계봉우와 같이 안중근을 성인의 반열로 올린 가톨릭인사는 보이지 않았다.
항일전쟁기 한국가톨릭계는 부정적인 안중근인식이 강하였다. 일제로부터 벗어난 이후 안중근을 건국의 이념적 지표로 삼고자 한 가톨릭 신자 박강성과 같은이도 있었다. 하지만 가톨릭계는 1970년대까지 노기남 대주교가 안중근 추도 미사를 거행한 일도 있으나 큰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양상은 안중근관계자료의 발굴과 출간, 한국의 경제발전, 민주화의 진전과 더불어 매우 느린 속도로 바뀌어갔다. 특히 한국민주화운동을 이끌었던 사제단 소속의 신부들이 중심이 되어 지속적인 안중근 추모행사와 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사제단은 교단의 인식보다 늘 한발 앞서서 안중근을 한국가톨릭의 중심으로 세우려고 노력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남북분단이라는 현실을 극복하고 통일을 열 에너지원으로 안중근의 사상에 착목하였고,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에너지원을 안중근에게서 얻었다.
이들의 활동은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의 조직과 안중근평화연구원의 창립으로 이어졌다. 이는 안중근을 추모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민족발전의 사상적 원동력으로 삼겠다는 국가발전 전망과 안중근을 한국가톨릭사의 가장 위대한 ‘순교자’로받들어 가톨릭의 미래비젼으로 삼겠다는 원대한 포부에서 나온 것이다.
한편, 교단의 안중근인식은 느리지만 지속적인 변모의 양상으로 보였다. 특히 1993년 김수환 추기경의 고백은 가톨릭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는 역설적으로 가톨릭계의 안중근인식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안중근을 순교자로 볼 수 없다”, “안중근의거 때문에 일제의 한국병탄이 앞당겨졌다”, “안중근이 천주교신자였습니까”라는 주장이 거침없이 나왔던 것이다.
그러나 2009년 의거 100주년과 2010년 순국 100주년을 기하여 가톨릭계의 안중근인식에 커다란 변화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특히 염수정 주교는 “안중근의 시복시성을 추진하겠다”는 선언을 하였다. 하지만 국권이 회복된 지 66년이 지난 지금까지 분명하지 못하고 더딘 안중근인식을 드러내고 있는 한국가톨릭계의 현실을 본다면 시복성문제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판단된다.
This thesis is about the history of An Jung-Geun Memorial affairs by Korean Catholic church and its meaning on the basis that we cannot establish An's commemoration and realization of his thoughts apart from the Korean Catholic's recognition on An Jung Guen. it concludes:
There had been two sects in the Korean Catholic church on An's patriotic deed. One is the major faction in church led by Bishop Mutel who didn't see An's commitment as more than a murder. The other hardly revealed one with Father Demange Florian had valued An's deed as an honorable one; None of them but Ke Bong-Woo the Korean Christian scholar were willing to saint An Jung-Geun.
Korean Catholic Church have had a tendency showing a strong negative view on An Jung-Guen during the period of Japanese occupation in Korea. There still was one catholic Park Gang-Seong trying to take An Jung-Geun as the spirit of the national foundation right after Korean being free from Japanese Imperialism. Korean Catholic Church hadn't made much difference other than Archbishop No Ki Mam's holding annual memorial mass for An Jung-Geun till 1970s.
This Korean Catholic Church has been slowly changing its viewpoint with the find of An's historical records and its publication, Korean economic development and its democratization; 'Korean Catholic Priests Association for Justice' leading the Korean democratic movement takes center to continuously hold the memorial service for An Jung Guen and annual academic conference on his thought. They have struggled to make An Jung-Geun’s stand on the core of the Korean Catholic church. The priests from the Association look back An Jung-Geun and certainly find him to be the spirit and the concreteness to reunite the South and North Korea.
The movement of Catholic Priests Association for Justice finally came up with organizing An Jung-Geun memorial conference and the foundation of An Jung-Geun Academic Institute for Peace. They have the great ambition and strong willingness to commemorate An Jung-Geun and let him to spread his theological driving force to help national development, furthermore respect him to be 'the greatest martyr' in the history of Korean Catholic church and admire him as inspirational leader for the future.
To be different from the point of view of the Catholic Priests Association for Justice, the church has gradually changed the viewpoint on An Jung-Geun. In 1993, Cardinal Kim Soo-Hwan's comment on An Jung-Geun reatly shocked Korean Catholic Church; it was paradoxically showing their indifference to An at a glance. Therefore the unconcerned priests produced the claims: "An Jung-Geun cannot be the martyred", "He is the one putting forward Japanese illegal occupation in Korea" or "An Jung-Geun, a catholic?"
Some great variations came up right before and after the 100years anniversary of An's martyr and his patriotic deed. Bishop Yem Su-Jeong made an announcement that the church will soon come to have An Jung-Geun canonized and saint him. It seems to take time though considering the present Korean Catholic church's little understanding about him even though now it has been 66 years since being independent from Japanese Imperi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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