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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7년 朝 日간 국교재개시 被虜人의 역할 = The Roles of a war prisoner in the Resumption of Diplomatic Relationships between Joseon and Japan in 1607
저자
방기철 (선문대학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1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47-72(26쪽)
KCI 피인용횟수
4
제공처
이 글은 1592년 일본의 침략으로 시작된 7년 여에 걸친 전쟁 후, 일본의 국교재개 요청에 대한 조선 정부의 대응과정에서 피로인들이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를 살펴 본 것이다.
전쟁 중 일본은 10만여 명 이상의 조선인을 일본으로 납치했고, 전후 6,000~9,000여 명 이상이 조선으로 돌아왔다. 당시 조선은 일본과 국교가 단절된 상태였으므로, 일본에 대한 정보를 확보할 수 있는 루트가 거의 없는 상태였다. 따라서 대일정보의 상당 부분을 일본에서 생활하다 돌아온 피로인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쓰시마는 종전과 거의 동시에 조선 정부에게 통상재개를 요청했다. 뒤이어 일본 중앙정부와의 국교재개를 요청했다. 조선은 전후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남아 있었지만, 일본과의 화의는 피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과의 국교재개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일본의 재침이 있을 것인지의 여부였다. 이 문제는 새로 집권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일본을 완전히 장악한 것인지와도 관련된 문제였다.
조선 정부는 대일정보 확보를 위해 쓰시마에 사신을 보내 일본의 정세를 파악하기도 했지만, 이와 함께 조선으로 돌아온 피로인들에게 대일정보의 상당 부분을 의지하기도 했다. 피로인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일본의 재침가능성 여부, 쓰시마와의 통상문제, 일본의 정세 등을 조선 정부에 알려 국교재개에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조선 정부는 피로인들을 믿을 수 없는 존재로 규정하고, 국교재개에 적극적인 인물들을 처벌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선 정부의 대일정책은 피로인들이 제시한 바와 같이 쓰시마와의 통상 재개를 허가했고, 일본에 사신을 파견하여 국교를 재개했다. 이러한 사실들은 조선 정부의 대일정책에 피로인들의 정보 제공이 상당한 부분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전후 조선과 일본이 국교를 재개하여 200여 년에 걸쳐 교린우호의 평화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데에는 피로인들의 역할이 상당히 큰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This study set out to investigate the roles of a war prisoner in the process of Joseon government's reactions to Japan's request for the resumption of diplomatic relationships between the two countries after about seven years of war that started by Japan's invasion in 1592.
During the war, Japan abducted more than 100,000 Joseon people to the islands, and 6,000~9,000 of them returned back to Joseon after the war was ended. Since the diplomatic relationships between Joseon and Japan were severed during the period, Joseon had few routes to secure information about Japan and accordingly had to depend on a war prisoner, who returned back to Joseon after years of staying in Japan, for the majority of information about Japan.
Tsushima Island requested the resumption of trade to the Joseon government almost right after the war was over, being followed by Japan's central government that asked for the resumption of diplomatic relationships between the two countries. Even though Joseon still had antagonism against Japan after the war, it thought it was inevitable to resume interactions with Japan. The most important issues in the resumption of its diplomatic relationships with Japan were whether Japan would invade Joseon again in future and whether Tokugawa Ieyasu(德川家康), who recently grasped the power in Japan, would completely own the country in his hands.
The Joseon government dispatched envoys to Tsushima Island to secure some information about Japan and understand what was going on in the country, while depending on a war prisoner, who returned back to Japan after years of staying in Japan, for the majority of information about Japan. A war Prisoner performed certain roles in the resumption of diplomatic relationships between the two countries regarding whether Japan would invade again, trade with Tsushima Island, and political situations of Japan based on their experiences.
Thinking that a war Piroinser were not to be trusted, the Joseon government even punished some of them who were active with the resumption of diplomatic relationships with Japan. Like they suggested, however, it carried out such policies on Japan as allowing for the resumption of trade with Tsushima Island and that of diplomatic relationships with Japan by dispatching envoys to it. Those measures taken by the Joseon government suggest that its policies on Japan reflected a considerable of information provided by a war prisoner. In that sense, it is safe to say that a war prisoner played very huge roles in the resumption of diplomatic relationships between Joseon and Japan after the war and the peaceful state over 200 years or so between the two countries.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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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 KCI등재 |
200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6-06-10 | 학술지명변경 | 한글명 : 전남사학 -> 역사학연구 | KCI등재 |
2006-03-21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전남사학회 -> 호남사학회영문명 : Chonnam Historical Association -> Honam Historical Association | KCI등재 |
200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3-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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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68 | 0.68 | 0.68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63 | 0.6 | 1.183 | 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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