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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본 류큐, 류큐에서 본 일본 - 다메토모 도류담을 예시로- = Ryukyu as Seen by Japan and Japan as Seen by Ryukyu - As Seen Through the Tale of Tametomo`s Island Ex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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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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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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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수록면
111-134(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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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겐모노가타리』를 근거로 하는 미나모토 노 다메토모의 오니가시마 도해담은 그 후 다메토모가 류큐에 건너가 류큐 최초의 왕인 슌텐의 아버지가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로 성장해 간다. 이것이 `다메토모 도류담`이다. 사츠마 침입 이전인 이른바 고류큐 시기에는, 다메토모가 오니가시마에 건너갔다가 귀국했다는 이야기가 나가라이본 『호겐모노가타리』에서 이야기되다. 이것으로 일본의 가마쿠라기에 다메토모가 바다를 건넜다는 전승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다메토모 도류담은 일류 쌍방에서 이야기되며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일본 측의 전승으로서 가장 오래된 것은 오산승 겟슈 주케이(겐운, 1460-1533)의 『겐운문집』에 기록된 것이다. 이밖에 17세기 초두 류큐에 3년간 체재했던 정토종 학승(學僧)인 다이추의 저작 『류큐신도기』에 기록된 내용을 통해서도, 류큐 역사 속의 옛 시대에 다메토모 도류담이 이야기되어 전해져 내려왔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해진다. 류큐 측에서 다메토모 도류담이 이용된 것으로서 하네지 조슈(쇼쇼켄)에 의해 1650년에 편집된 류큐 최초의 사서 『중산세감』을 들 수 있다. 하네지 조슈는 법령집인 『하네지시오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류큐와 일본이 동일하다는 생각을 적극적으로 주장한 인물이다. 하네지의 언설로 대표되는 것처럼, 류큐에서도 다메토모 도류담은 이용되고 있다. 류큐에 있어서도 하네지언설로 대표되는 이데올로기의 토양이 배양되어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른 바 다메토모 도류담은 일찍이 중세부터 일본과 류큐 쌍방에 있어서 국가 신화로서 의미를 부여받았던 것이다. 근세가 되면 다메토모 도류담은 류큐에 관한 지식 유입과 함께 다양한 작품에 포함되어, 국가 창건 신화를 형성하는 전승으로 발전해 갔다. 류큐 신화로서 변화해가게 된 것이다. 다메토모 신격화를 그린 이야기 중 하나로, 이즈 하치조지마의 천연두를 막아주는 신으로서 모셔지는 예가 있다. 이것은 『진세츠유미하리즈키』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이 전승은 근대까지 지속적으로 회자되어 전쟁 시 다메토모는 무신[武運長久の神]으로 수용되게 된다. 다메토모 도류담은 시대 속에서 변용되어 갔고, 달리 읽혀졌으며, 인구에 회자되어 왔다. 류큐에 있어서도 하네지 조슈 등의 지식인 계층에 의해 전략적으로 이용되었다. 그렇다면 전후 70년을 넘긴 이 시대에 우리들은 다메토모 도류담을 어떻게 이야기해 나가면 좋을 것인가. 전쟁을 직접적으로 겪지 않은 우리들이 어떻게 받아 들여갈 것인지, 어떻게 전승해나갈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더보기The tale of Minamoto no Tametomo`s journey across the sea to Onigashima Island, based on The Tale of Hogen, develops into the tale of Minamoto crossing over to Ryukyu and fathering its first king, Shunten. This is known as “The Tale of Tametomo`s Island Exile.” During the so-called Old Ryukyu period, before the invasion of Ryukyu by Satsuma, the Nagarai version of The Tale of Hogen describes Tametomo as crossing the sea to Onigashima Island and then returning to Japan, demonstrating that this tale existed during the Kamakura era of Japan. Thus it was told and retold in both Japan and Ryukyu, and subsequently created many other variants. The oldest source of this tale in Japan can be traced back to the Gen`un Anthology (Gen`un monjuu, 幻雲文集), a collection of the writings of Zen monk Gesshu Jukei (1460-1533). Aside from this source, the tale can also be traced to An Account of the Ways of the Gods in Ryukyu (Ryukyu Shinto-ki, 琉球神道記) written by the Jodo sect Japanese priest Taichu Ryotei, who stayed in Ryukyu for three years. This demonstrates the possibility that the tale of Tametomo`s island exile was transmitted since long ago in Ryukyu`s history. The first use of the tale in Ryukyu occurs in the Mirror of Chuzan (Chuzan seikan, 中山世鑑), the first history of Ryukyu compiled by Haneji Choshu, also known as Sho Shoken, in 1650. As demonstrated by the Directives of Haneji (Haneji shioki, 羽地仕置), a collection of his law reforms, Haneji was a strong proponent of viewing Japan and Ryukyu as the same. As Haneji`s opinion demonstrates, Ryukyu also used the tale of Tamemoto`s island exile, and it could be that said the soil for cultivating the ideology advocated by Haneji was also in Ryukyu. Thus the so-called tale of Tametomo`s island exile early on conferred a state mythos to both Japan and Ryukyu since the medieval period. Entering in the modern period, this tale developed into a Japanese state founding myth from a Ryukyuan myth along with the influx of knowledge of Ryukyu into Japan through various other works. One such tale portraying Tametomo`s deification is of worshipping him as a god preventing the spread of smallpox in Hachijo-jima Island in the Izu archipelago. This tale originates from the Strange Tales of the Cresent Moon (Chinsetsu Yumiharizuki, 椿說弓張月), and was transmitted from the modern period to World War II, where Tametomo was appropriated into a god of military victory. The tale of Tametomo`s island exile has transformed throughout the ages, been interpreted in various ways, and talked about. It was also used strategically in Ryukyu by Haneji Choshu and other intellectuals of his class. Thus the question remains as to how this tale should be told seventy years after World War II, as we must consider how to receive this tale and transmit it as a generation that has not directly experienced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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