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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와 감정주체: 최명희의 <혼불>을 중심으로 = Ideology and Emotional Subjects : Focusing on the Honbul by Choi Myung-Hee
저자
엄숙희 (전북대학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22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83-112(30쪽)
제공처
이 연구는 『혼불』 속 인물들의 감정에 주목하여 이데올로기와 주체의 관계를 고찰해본 것이다. 『혼불』은 지배 이데올로기에 의해 정교하게 작동하는 감정체제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의 폭력적인 감정 억압 현실을 섬세한 내면을 통해 보여준다. 『혼불』에서 감정규범은 개인의 미시적 일상에 적용되어 철저하게 개인의 감정을 규제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혼불』의 주사건은 사촌 간인 강모와 강실의 근친상간으로, 이 사건은 근대사회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기존의 견고했던 가부장적 질서가 약화되는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혼불』은 체제가 금지한 감정들로 인물들이 겪게 되는 고통을 밀도있게 형상화하고 있다. 더불어 사회적 금기를 어긴 인물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수치의 감정을 다루면서 수치의 감정이 지닌 규범적 효력이 개인들의 욕망을 스스로 통제하도록 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혼불』이 주목하는 또 다른 점은 체제의 균열 속에서 주체가 경험하는 불안이다. 작중 인물 강모는 가부장제가 약화된 시기의 종손으로, 종손의 역할을 강요받으며 살아왔다. 그 결과 작중에서 자신의 고유한 본성과는 무관한 삶을 살아야 하는 운명에 처한 강모의 방황과 감정적 고통은 극심한 것으로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혼불』은 철저하게 감정통제가 이뤄진 사회에서 여성에게 국한된 젠더화된 규범의 폭력성과 억압성을 보여주면서 여성들의 감정적 고통을 부각시킨다. 그 중에서도 주목할 점은 효원의 분노의 감정이다. 여성의 분노가 금지된 사회에서 효원이 느낀 분노의 감정은 고통과 불편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가부장적 질서에 반하는 저항의 감정으로 나타난다.
감정 규범은 다른 여타의 규범과 다르게 보편적이면서도 문화에 따라 다르다. 그 문화가 지향하는 가치 체계와 이데올로기가 반영된 것이 감정 규범이다. 최명희가 『혼불』에서 섬세하게 그려낸 감정 세계는 한 사회의 감정체계가 인간의 감정에 가하는 폭력성과 억압성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혼불』이 환기시키는 것은 이데올로기적 사회 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인간이 과연 본성대로 살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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