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서에 나타난 여성의 지혜 : 잠언 8:22-31 & 31:10-31 = Lady Wisdom in Prov. 8:22-31 and 31:10-31
저자
박종수 (강남대학교 신학과)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1994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KDC
230.000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9-31(23쪽)
제공처
소장기관
지금까지 잠언서에 나타나는 여성지혜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필자 나름대로의 "하나의" 제안을 제시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제안은 언제나 새로운 또 다른 비판과 해석을 요구하게 된다. 왜냐하면 "진리"라고 하는 것은 한 곳에 머물기를 원하지 않으며(욥기28 : 13-22). 새로운 환경에서 늘 새롭게 우리에게 다가 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필자가 잠언서에 나타난 여성지혜의 정체와 역할을 살펴 본 첫째 목적은 그 여인지혜의 온전한 실체를 밝히기 보다는 그 여인지혜를 소개하는 히브리 시인의 목적과 잠언서 전반에 흐르는 여성에 대한 인식을 재조명하는 데 더 큰 목적이 있다. 잠정적인 결론은 잠언 8:22-31은 여인지혜의 신성(神性) 즉 "모든 피조물보다 선재한 야훼의 또 다른 모습인 영적인 존재, 즉 지혜"에 대한 찬양시라고 말할 수 있으며, 조심스럽지만 가능성 있는 제안으로는 잠언 31장의 현숙한 여인은 그 "여성지혜의 실재적 예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히브리 시인의 의도는 무엇일까? 잠언서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는 남성중심적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아비의 훈계를 어미의 훈계보다 늘 앞세우며, 남자보다는 여인을 조심하라는 편견을 들 수 있다고 필자는 지적한 바 있다. 잠언서 전체를 통해 볼 때 31장의 현숙한 여인은 사실 지혜로운 여인의 대표자격이 되며(잠언 14:1), 음녀와 이방여인과 대조되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이 음녀와 이방여인에 대한 언급은 잠언의 곳곳에서 발견된다. 잠언 7장은 그 음녀의 행위에 대해 자세하계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잠언 5: 20에서는 음녀와 이방여인을 아무런 구별없이 동일시 하고 있다. 이 이방여인의 정체는 무엇인가? 왜 잠언서의 기록자는 이방여인을 음녀와 동일시 했는가? 우리는 잠언서에 나타나는 음녀에 대한 정보와는 달리 이방여인에 대한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다. 그 이방여인은 이유도 없이(?) 음녀와 같은 타락한, 저주받은 존재요,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아야 할 존재이다. 그 이방여인은 잠언 6:24에서 악한 계집과 동일시된다. 스코트는 잠언 6 : 16이 우가릿 문헌에 나타나는 셈족이 즐겨 사용하는 호교론적 표현과 평행구를 이룬다고 주장하면서, 야훼가 싫어하는 것을 행하는 자가 곧 음녀요, 이방여인임을 암시한다. 결국 그 이방 여인은 구체적인 악한 행동 때문에 음녀와 동일시되는 것이 아니라 이방신을 섬김으로 해서 경계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민족의 정체성과 야훼신앙이 절실히 요구되던 기원전 2-3세기 경에 잠언서의 편집자는 이러한 사회적인 요구사항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전승되어 온 잠언들은 편집하면서 여인지혜의 역할을 강조하고자 했다. 왜냐하면 남녀를 불문하고 쓰러져가는 유대의 앞날을 걱정하면서 여인들의 역할에 민족적이자 종교적인 헌신을 기대했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에스더서를 들 수 있는데 이것 역시 동시대에 편집되어 성문서의 일부로 정경속에 포함된 것이다. 이경숙 교수가 지적한 대로 비록 에스더는 모르두개의 지시를 받긴 했지만, 그 시대의 유대인에게 모범이 되는 이상적인(ideal) 여인임에는 분명하다. 캠프가 주장한 바와 갈이 잠언서가 편집될 당시에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확대됐다는 사실은 문헌상 분명하지 않지만, 적어도 잠언서 기자는 유대의 구원과 희망에 여성의 역할 특히 여성지혜의 역할에 상당한 기대를 했음이 분명하다. 그와 동시에 그는 지혜의 신적인 속성을 하나님과 동등하거나 하나님의 또 다른 속성으로 묘사함으로써 지혜가 이방사상과 구별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결론에 대신하여 잠언서의 기자와 오늘날 여성신학이 요구하는 과제를 대질시키고자 한다. 과연 잠언서 기자는 오늘날 여성해방을 위해 일조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 역시 가부장적인 전통속에서 여전히 여성의 인권을 고려하지 않은 여성해방의 장애자로 남아 있는가? 이러한 양자택일 식의 질문은 우리의 의도와는 거리가 멀다. 왜냐하면 진리는 새시대의 요구에 새롭게 응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진리의 본질은 초월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초월적인 진리는 현재의 실존에 응답해야만 한다. 성서의 기록은 그 "진리를 내포한다(contain)." 그 진리에 대한 해석은 우리의 몫이다. 잠언서에서 말하고 있는 여인지혜나 현숙한 여인은 분명히 여신(goddess)을 드러내기 위하여 소개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담지하는 신적인(神話的) 언어와 전통마저 무시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런 언어가 지혜의 모습을 보존하고 강인하게 우리의 뇌리에 살아 움직이기 때문이다.
성서 기자는 이 점을 간과하지 않고 여성지혜를 과감히 소재하고 있다. 잠언서의 대부분은 아직도 여전히 이유없이 이방여인을 악녀라고 소개하는 남성중심적 편견이 남아 있긴 하지만, 적어도 잠언 8장과 31장의 여인지혜의 모습은 오늘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그것은 1) 첫째, 제한된 사회적·종교적 여건 속에서도 성서기자는 여성지혜의 역할을 강조함으로써 지혜를 구원의 매개체로 삼고자 한다. 2) 둘째, 시대적 여건으로 말미암아 비록 남성 중심적인 사고를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지만, 지혜의 신성에 나타난 야훼의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강조함으로써 구원사역에 있어서의 성차별을 배제한다(특히 잠언 31장). 3) 셋째, 타문화권의 지배를 받는 상황에서(주전 2-3세기) 성서기자는 야훼신앙의 정통성과 순수성을 치키고자 애쓰고 있다. 4) 넷째, 오늘의 여성해방을 기대하는 모든 이들에게 여성지혜의 모든 희망적인 예시를 주저없이 과감히 밝힘으로써 여성이 소외되지 않는 사회, 여성이 구원자로 등장하는 사회, 동시에 여성이 찬양받은 사회에로의 길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성서의 메시지를 새롭게 해석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고무적이며, 성서가 기독교 전통안에서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가치있는 "거룩한" 책임을 보여준다. 그것은 성서가 이미 기독교인에게 자기 문화의 일부요, 살과 피의 일부가 된 것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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