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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금산사의 역사적 전개와 사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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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KDC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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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141-164(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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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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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금산사의 조선시대 역사와 사격에 대하여 살펴본 연구이다. 그간 금산사의 조선 전기의 역사는 알려진 바 거의 없었는데 본고에서 나름대로 복원 시도하여 사찰의 역사 흐름을 가름하여 보았다. 본 연구의 성과는 다음과 같다.
태조대 무렵 양가도승통 종림이 금산사 장로로 있었다. 조선 태종 대 금산사의 주지도징이 비행을 하였다는 죄목을 씌워 사원전과 노비를 환수받는 등 탄압을 당하였다. 그 후 세조에 의해 금산사의 5층 석탑 중수가 이루어졌으며, 성종대 세조의 서자 덕원군 이서가 인근 승도 사장들과 더불어 탑을 중수하였다.
중종대 호남 유생들은 금산사에 회합하여 문묘 배향을 논의하였던 사실이 찾아지며, 임진 난이 발발하면서 금산사는 의승군의 중심 도량이 되었다. 금산사에서 출가한 청허 휴정의 문도 뇌묵처영과, 최초의 의승군 봉기를 하였던 기허영규와도 조우하여 금산사를 중심으로 의승군 전투에 참여하였다. 영규와 조헌의 금산전투와 영규의 행주 대첩 등은 왜군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게 되어 정유재란시 왜군의 보복으로 금산사는 금강문, 노주 등을 제외한 전각이 전소 되었다.
전란이 끝난 지 3년이 지난 직후 금산사의 고승 수문과 천택 등에 의하여 무려 35년간의 중창불사가 이루어 졌으나 대사구만 복원하는 수준에서 그쳤다. 하지만 금산사는 호남 일대의 명찰로서 미륵전과 장육존상은 조선후기에도 국중의 으뜸이었다고 회자되었다. 임란후 금산사를 이끌어간 주요고승은 청허휴정과 부휴선수의 문도였는데 그 가운데 백곡처능을 제외하고는 청허휴정의 문손, 특히 편양파의 법손인 소요태능이나 중관해안, 환성지안, 남악태우 등이었다.
따라서 금산사는 조선초 이래 선종계 사찰이었지만 지안을 통해 볼 수 있는 바와같이 선종과 더불어 화엄이 아우러진 종풍을 지니면서 본래의 유가의 전통이 기저에 잠재되어 왔으며, 일제강점기 금강문에 편액에 미륵본부 도량이라고 했듯이 유가종풍이 강한 도량이었다. 그러한 가운데 금산사는 미륵의 장육존상의 도량이라는 자부심은 더욱 강조되어 조선말기에 한국의 삼보사찰 가운데 불보사찰이라는 설도 제기되기도 하였다.
This dissertation is for the study to look over Geumsan Temples history in the Joseon Dynasty. So I tried to restore its story and define the temples historical flow by tracing the history of Geumsan Temple of Joseon Dynasty. In this study, the result is like the below. Around the time of King Taejo, the top officer who managed monks lists, Jongrim was the elder of Geumsan Temple. At the time of Taejong in the Joseon Dynasty, the abbot of Geumsan Temple, Dojing was laid on criminal sin, so he was repressed. At the time of Sejo, it was done for the re-establishment of a five-story stone pagoda at Geumsan Temple under the protection of the world of Buddhism in the Joseon Dynasty, at the time of Seongjong, a child of concubine, Deokwon-gun, Lee Seo reconstructed pagodas with the monks in the nearby area.
After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Geumsan Temple came to the center for the military of monks to fight against Japanese. Noemuk Cheoyoung, a disciple of Cheongheo Hyujeong, who became a monk at Gemsan Temple, and Giheo Younggyu who rose up the first military of monks also joined together and participated into the combat by the monks military with this temple as the center. Geumsan Combat with Younggyu and Joheon, Seige of Haengju by Younggyu etc gave a big blow to Japanese military, so they revenged Koreans in Jeongyujaeran, all the houses, except for Geumgangmun, Noju, were fired in Geumsan Temple. Passing 3 years after finishing the war, the re-establishment of temple had been done for over 35 years by the high priests, Sumun and Cheontaek, at Geumsa Temple, but only the reconstruction of Daesagu was accomplished. However, it still kept its fame as the most famous temple in the region of Honam, it has been said that Mitreya Hall and Maitreyas big statue were the best national treasures also in the late Joseon Dynasty. After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the high priests who led Geumsan Temple were disciples of Cheongheo Hyujeong and Buhyu Seonsu, among those, except for Baekgok Cheoneung, most of them were disciples of Cheongheo Hyujeong, especially the dharma disciples of Pyeonyang faction. For example, Soyo Taeneung or Junggwan Haean, Hwanseong Jian, Namyak Taewoo etc, they were representative high priests of Geumsan Temple in the late Joseon Dynasty. So Geumsan Temple had been a temple in the sect of Dhyana school since the early Joseon Dynasty, but for the example of Jian, it had a strong tendency of the Yuga“ca”ra as the writing on the framed picture on Geumgangmun in the period of Japanese occupation, with the harmony of Dhyana school and Hwayeom based on the original tradition of the Yuga“ca”ra. In this aspect, Geumsan Temple more emphasized its proud as the house of Maitreyas big statue, in the late Joseon Dynasty, some people said that it was the temple of Buddhist treasure among the Koreas three treasure temples.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28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2-09-16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Institute for Buddhist Culture -> Buddhist Culture Research Institute | KCI등재 |
202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3-01-23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The Korean Buddhist Research Institute -> Institute for Buddhist Culture | KCI등재 |
201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8-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7-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2차) | KCI후보 |
2006-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73 | 0.73 | 0.69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63 | 0.55 | 1.313 | 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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