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말기 친일문학의 내적논리와 회고의 전략 : 이광수, 김동인, 채만식을 중심으로
저자
발행사항
서울 : 고려대학교 대학원, 2019
학위논문사항
학위논문(박사)--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2019. 2
발행연도
2019
작성언어
한국어
주제어
발행국(도시)
서울
형태사항
vii, 226 p. ; 26 cm
일반주기명
지도교수: 강헌국
참고문헌: p. 211-226
UCI식별코드
I804:11009-000000083518
DOI식별코드
소장기관
본 논문에서는 일제말기(1937년~1945년) 친일문학과 해방기 회고의 전략적 성격을 문인들의 ‘자기규정’과 ‘식민지적 정체성’을 통해 살펴보았다. 일제말기 친일문인들은 대중적 지도자나 사상가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제국일본과 조선 사이의 ‘번역자’로 살아왔다. 그러나 일제의 외부적 압력과 문인의 내부적 혼란이 극대화된 시점에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해방은 이들을 순식간에 민족의 죄인이자 평범한 인민의 한 사람으로 끌어내렸다. 해방공간에서 친일문인들은 일제말기 제국일본의 식민지배이데올로기를 조선(인)에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 이상으로, ‘정치적’이고 ‘전략적’인 자기변호의 텍스트를 생산해낼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친일문인들의 해방기 ‘회고’는 문인의 내적 욕망과 외부적 압력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라는 점, 시대와 이데올로기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문학적, 사회적 생존을 모색하기 위한 행위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일제말기의 ‘친일문학’과 매우 닮아있다.
본 논문의 기본적인 시각은 제국주의와 주체의 관계성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탈식민주의적 담론의 자장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선행연구와 차별을 두기 위해 일제말기 친일문학에 영향을 미친 외부적 요인보다는 문인 개개인의 사상적 배경과 문학론, 그들의 식민지적 주체형성 과정에 주목함으로써, 친일문학이 그저 외압에 의한 몰개성한 선전문학이 아님을 규명하려 했다. 이를 위해 각기 다른 사상적 배경과 문학론, 식민지적 주체성을 형성하면서 일제하에서나 해방공간에서 활발히 작품 활동을 이광수, 김동인, 채만식을 연구대상으로 설정하였다. 이 세 명의 문인을 통해 친일문학이 일제의 식민지배이데올로기를 문인 각자의 맥락에서 내면화한 결과물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취하는 서술전략과 서술방식의 차이점에 주목하였다. 또한 친일의 범위와 의미를 일제강점기에 국한시키지 않고, 이를 해방 후 회고와 연결시킴으로써 친일의 시작과 완결을 철저히 작가 본인의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서론에서는 친일문학에 대한 기존 연구사가 갖고 있던 견고한 민족주의적 시각에 대해 정리하고, 이를 돌파하려는 최근 연구 성과에 대해 살펴보았다. 연구사 검토를 통해 최근 친일문학 연구에서 주목하는 ‘식민지적 주체’의 문제를 본 논문의 문제의식에 적극적으로 반영하였다. 또한 친일문학(연구)의 정치적 성격으로 인해 연구자들이 경직된 태도와 시각을 갖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며 친일문학 연구의 난점과 방법론의 문제를 정리하였다.
Ⅱ장에서는 일제말기 조선문단의 상황과 문인협회의 존재의의를 바탕으로, 세 문인의 ‘친일논리’가 구축되는 과정을 그들의 비평(적)텍스트를 통해 살펴보았다. 일제말기 조선의 문인들은 일본을 중심으로 한 ‘대아시아’ 개념 속에서 근대와 동양을 초극하고 서구에 대항할 가능성을 찾았다. 문인협회는 문인들의 친일행위를 집단화・조직화하고, 일본으로부터 ‘국민문학론’을 수용하는 등 새로운 문학의 방향을 모색했지만 문학론의 불명확성으로 인해 식민지적 주체의 사상적 균열과 분열을 만들어내는데 일조하였다. 식민지 조선의 독립을 위한 근간인 ‘민족주의’가 친일로 흐르게 되는 양상은 일견 아이러니로 보이지만, 이광수를 통해 보면 민족주의와 제국주의는 결코 상반된 개념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의 민족주의는 ‘자강론’, ‘실력양성론’ 등과 결합하면서 자연스럽게 동화주의(assimilation)로 이어지는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반면 김동인의 친일논리는 그의 민족의식의 부재를 잘 보여준다. 그는 일본이 내세우는 식민지배이데올로기에 현혹되지 않기 때문에 이를 내면화하거나 자기화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김동인은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조선문단의 대표적 친일문인으로 보이기를 원했다. 생존을 위해서는 일제하에서 문인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자, 일찍이 문학의 자율성에 대한 철저한 옹호자였던 김동인은 문학이 가장 중요한 ‘도구’일 수 있다는 자가당착적 결론에 다다른다. 그래서 일제말기 김동인에게는 주체성이 결여된 식민지 지식인의 수동적인 모습과 식민지배 체제 내에서 가치 있는 존재가 되고자하는 피식민자의 욕망이 동시에 발견된다. 반면 무력한 니힐리스트이자 체제순응자인 채만식의 사회주의는 ‘전체주의’라는 공통점으로 인해 일제하 신체제로 빨려 들어가는 양상을 보인다. 채만식의 친일논리는 이광수에 대한 모방으로, 친일소설의 구상은 히노 아시헤이의 영향 하에서 그 기반을 마련하지만, 이광수와 달리 채만식은 조선(인)을 초극하여 사고할 수 없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보인다. 조선과 조선문학, 그리고 조선인으로서 자신을 모두 미달된 존재로 규정했던 채만식은 현실적 제조건으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이기에 시대에 순응하는 것으로써 자신의 길을 정한다.
Ⅲ장에서는 일제말기 문인에게 내면화된 식민지배이데올로기의 결과물인 소설텍스트를 분석해보았다. 특히 이 장에서는 해방 후 삭제된 서사를 복원하고, 지금까지 연구대상이 되지 못했던 친일소설텍스트들을 새롭게 의미화 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세 문인의 ‘개성’은 문학작품의 제재(題材)와 장르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광수의 친일소설은 기본적으로 일상에서 제재를 취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는 조선인에게는 충(忠)을, 일본인에게는 성(誠)의 정신을 주입시키려 함으로써 계몽의 이중적 의도를 보인다. 완전한 내선일체의 완성은 한쪽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광수 특유의 도식적인 인물구도는 ‘내지인-조선인’ 사이에서 효과적으로 구현되어 ‘정신적 내선일체’를 완성하고, 원술을 동원한 군인정신의 강조는 징병제 실시를 통한 ‘실질적 내선일체’의 기획을 뒷받침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미완으로 남은 일군의 소설들에서 이광수는 내선일체론과 국민문학론의 허상을 스스로 폭로하고, 불완전한 내면을 드러내기도 한다. 김동인의 친일소설은 모두 백제, 일본, 중국을 배경으로 하는 ‘역사소설’이다. 김동인의 친일역사소설은 텍스트 자체만으로 볼 때에는 친일적 요소를 발견하기 어렵지만, 컨텍스트와 함께 읽으면 그 안에 숨겨진 식민사관과 텍스트의 진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고도의 전략적 글쓰기라 할 수 있다. 그는 서구를 통해 동양의 가치를 재인식하고, 일본중심의 대동아공영권 구상을 뒷받침한다. 아편전쟁을 제재로 삼은 두 편의 역사소설에서 김동인은 중국의 치욕적인 역사를 통해 反서구의 정서를 정당화하고, 친중적인 서술태도로 제국일본의 대동아공영권 구상을 뒷받침한다. 일본정신을 반영한 예술가소설에서는 국책문학 창작에 대한 일본인 문사의 고민을 담았지만, 그 함의는 조선 문인의 일본어 글쓰기에 대한 고민으로 읽는 것이 옳다. 일제의 고대사복원 계획과 발맞춘 친일역사소설에서는 일본역사관을 바탕으로 백제와 일본의 역사적 친연성을 강조하고, 과거 백제가 일본의 도움으로 당군을 물리친 것처럼 조선이 일본을 도와 중국에 대항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채만식의 친일소설은 르포문학의 형태를 띤 전쟁소설과 후방의 역할을 강조하는 총후문학으로 이루어져 있다. 직접 전쟁에 참여하는 용맹한 일본군, 후방에서 이를 적극 지원하는 이상적 ‘총후부인’과 ‘군국의 어머니’를 통해 채만식의 소설은 군국주의적 전체주의를 선전한다. 일제말기 채만식의 소설 가운데 장편 『아름다운 새벽』은 해방 후 단행본으로 엮이는 과정에서 친일적 요소가 의도적으로 삭제되면서 해석상의 혼란을 야기했다. 본고에서는 삭제된 서사를 복원하고, 채만식 친일논리와 해방기의 정치성을 보여주는 텍스트로 의미화 하였다.
Ⅳ장에서는 해방공간에서 쓰인 세 문인의 회고를 대상으로 친일문인들의 ‘자기규정’과 반성의 ‘전략’적 측면을 연관시켜 살펴보았다. 특히 복잡한 수사와 정치적 맥락 사이에 숨겨진 텍스트의 ‘진의’를 찾고자 했다. 이광수는 인생의 모든 기간을 대상으로 하는 ‘자서전’이 아님에도 친일협력의 기간을 ‘일제말기’에 한정하고, 그 의미를 희석시키기 위해 자서전 형식의 회고를 썼다. 자의적으로 서술시간을 조절함으로써 ‘민족주의자’의 순수성을 강조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반면 김동인은 이광수를 ‘민족주의를 내세워 자발적으로 친일한 민족적 지도자’로, 자신을 ‘일생 조선문 소설쓰기에만 몰두한 순수하고 무력한 소설가’로 규정함으로써 친일의 그림자를 이광수에게 덧씌우고 자신은 그 비판으로부터 벗어나려 한다. 특히 그는 자신의 문학적 공로를 과장되게 제시하고, 일제하와 미군정의 ‘지배/점령’을 동일하게 의미화 함으로써 자신을 철저한 피해자에 위치시킨다. 채만식은 스스로를 민족의 ‘죄인’으로 규정하지만, 그의 회고에는 죄의식과 억울함이 동시에 나타난다. 그의 회고에서는 반복적으로 죄에 대한 인정과 동기에 대한 부정이 중첩되어 서술된다. 자신의 친일을 인정하면서도, 본심에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려 하는 채만식의 회고는 본심과 양심 사이의 팽팽한 힘겨루기를 보여준다. 해방기 채만식의 인식은 ‘조선인 대부분이 민족의 죄인’이라는 것이다. 자기풍자와 자기폭로를 통해 죄의식을 드러내고는 있지만, 그런 면에서 채만식의 회고는 친일에 대한 반성적 텍스트가 아닌 자기변호의 텍스트임이 분명해진다.
문인들의 친일의 동기와 경로, 해방 후 보여준 자기비판과 반성까지 검토한 후 드러나는 것은 식민지적 주체의 모순과 분열의 복잡한 양상이다. 친일문학은 그 자체로 정치적인 텍스트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문학’이란 한 인간이 세계를 보는 관점이자, 그 자신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친일문학은 국책을 위한 전략적 글쓰기인 동시에 한 작가의 문학적 지향과 식민지적 정체성을 담고 있는 대상이다. 친일문인은 식민주의 내부의 구조적인 불균등성을 극복하는 것이 목표이지만 정작 자신들의 존재가 이 체제를 상징한다는 것, 나아가 체제를 더 공고히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이 논문은 세 문인의 일제말기와 해방기의 텍스트를 통해 식민지적 주체의 형성과 분열, 일제식민지배이데올로기의 환상과 모순, 친일문학에 내재된 피식민자의 욕망과 주체의 한계에 대해 살펴보았다. 또한 해방 후에도 여전히 세계의 비주체적 존재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그들에게서 ‘식민지 근대성’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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