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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송광사의 불서간행과 불교계 동향 = Publishing Buddhist Scriptures in Songgwangsa and Trends of Buddhist Sector during the 16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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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16th century is known as the period of Buddhism abolished by the government as well as the dark age of Buddhist activities. But the latest research has found that the 16th century was the period of confusion and conflict in terms of the routes of policies on Buddhism. In the reign of Jungjong and Seonjo known as the period of suppression on Buddhism, seungjeong system -seongyoyangjong - was abolished while reformative policies on Buddhism was pursued, so the Buddhist sector were neglected and abandoned with no official support or control. The Buddhist sector were maintained through the royal family’s secret support and private economic grounds, and the Buddhist temples published Buddhist scriptures prevalently nationwide. Therefore, it is needed to examine through detailed case study what the Buddhist sector actually were like in the 16th century and how the history of Buddhism developed in Joseon. Songgwangsa is a Buddhist temple affiliated to seongyoyangjong, the seungjeong system in the 15th century. It is a Buddhist temple closely associated with the central Buddhist circles to maintain constant influence and tradition of thought. From the 16th century, seungjeong system was abolished, and the official relationship between the govern ment and Buddhist circles was disconnected. In that situation, the Buddhist sector both maintained and secured private economic grounds in each of the Buddhist temples and transmitted the tradition of thought selectively. This can be observed with the phenomenon that in the early 16th century, the publishing of Buddhist scriptures increased enormously. Songgwangsa published Incheonanmok in 1529 and Jonggyeongchwalyo, Simyobeopmun, and Daehyebogakseonsaseo in 1531. The publishing of Buddhist scriptures proves that Songgwangsa was sound also in the early 16th century thanks to consistent economic grounds, and also, the trends of publishing imply that it transmitted the tradition of thought diversely. It is one of the noticeable cases that Jingak Hyesim published Jonggyeongchwalyo in that period at Songgwangsa which was published in Suseonsa in 1213. In the late 16th century, the reign of Seonjo, Buddhist temples’ publishing of Buddhist scriptures increased tremendously nationwide once again, and this was so in Songgwangsa. In 1574, Suryukmuchapye ongdeungjaeuichwalyo and Cheonjimyeongyangsuryukjaeuichanyo were published, and in 1577, Chobalsimjagyeongmun, Mongsanhwasang beopeoyakrok were published, and in 1590, Gobonghwasangseonyo was published. Particularly, the three types of Buddhist scriptures published in 1577 were all Korean annotation, and it seems that they were published with the clear purpose of monk training and study. The publishing of Buddhist scriptures for training and study was a universal trend of Buddhist circles in the late 16th century, but in several Buddhist temples, the publishing of Seonwonjejeonjipdoseo and Beopjipbyeolhaengrokjeolyobyeongipsagi increased significantly in the reign of Seonjo, the 1570’s to 80’s, but in Songgwangsa, these two Buddhist scriptures were not published. These two Buddhist scriptures were the core subjects of iryeok-gwajeong in late Joseon, and along with the increased influence of Cheongheo Hyujeong and Buhyu Seonsu, the publishing became prevalent from the late 16th century, and in Songgwangsa, the two Buddhist scriptures were published in 1608 after Japanese Invasion. This implies that Songgwangsa was a Buddhist temple which was not influenced directly by Hyujeong and Seonsu in the late 16th century, but in the early 17th century, along with the advancement of Buhyu lineage, it came to be the head temple of Buhyu lineage gradually.
더보기16세기는 국가에 의한 폐불기이자 불교계의 암흑기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근래의 연구 성과에 의하면 16세기는 불교정책 노선의 혼선기이자 갈등기였다. 특히 불교 탄압기로 알려져온 중종대와 선조대에는 국가가 선교양종의 승정체제를 폐지한채 교화론적 불교정책을 지향함으로써 국가의 공식적인 지원이나 통제 없이 불교계가 방치 · 방임되었는데, 실제로 불교계는 왕실의 은밀한 지원과 사적 경제 기반을 통해 유지되었고, 전국의 사찰에서 불서의 간행이 크게 증대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따라서 구체적인 사례 연구를 통해 16세기 불교계의 실상과 조 선시대 불교사의 전개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송광사는 15세기에 국가 승정체제인 선교양종의 선종에 소속된 사찰이었다. 중앙 불교계와 긴밀한 관계의 사찰로서 일정한 사세와 사상 전통을 유지하고 있었다. 16세기에 이르러 선교양종의 승정체제가 폐지됨으로써 국가와 불교계의 공식적인 관계가 최초로 단절된 상황에서, 각 사찰들은 저마다 시납전, 사전, 시주 등의 사적 경제 기반을 유지 · 확보하는 한편 이를 토대로 사상 전통을 선별적으로 계승해 가고 있었다. 이는 16세기 전반에 불서 간행이 전국적으로 크게 증가한 현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송광사는 1529년에『인천안목』, 1531년에『종경촬요』, 『청량화상답순종심요법문』, 『대혜보각선사서』 등을 간행하였다. 이러한 불서의 간행은 송광사가 일정한 경제기반을 통해 16세기 전반에도 건재했다는 점에 대한 방증인 한편, 그 간행 경향을 통해 볼 때 기존의 사상 전통을 일정하게 계승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진각 혜심이 1213년 수선사에서 간행한 종경촬요 를 이 시기에 송광사에서 간행한 사실은 특히 주목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16세기 후반의 선조대에 전국 사찰의 불서 간행은 다시 한번 크게 증가하는데, 이는 송광사 또한 마찬가지였다. 1574년에 『수륙무차평등재의촬요』,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 등을, 1577년에 『초발심자경문』, 『몽산화상법어약록』 등을, 1590년에 『고봉화상선요』를 간행하였다. 특히 1577년에 간행된 불서는 모두 언해본이었는데, 승려 교육과 강학이라는 뚜렷한 목적하에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교육과 강학용 불서 간행은 16세기 후반 불교계의 보편적 경향이었으나, 선조 연간인 1570~80년에 여러 사찰에서 『선원제전집도서』와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의 간행이 크게 증가한 반면 송광사에서는 이 두 불서가 간행되지 않았다. 이 두 불서는 조선후기 이력과정의 핵심 교과로서 청허 휴정과 부휴 선수의 영향력 확대에 따라 16세기 후반부터 그 간행이 확산되었는데, 송광사에서는 임진왜란 이후인 1608년에 이르러서야 두 불서가 간행되었다. 이로써 볼 때 송광사는 16세기 후반에 청허 휴정과 부휴 선수의 직접적인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사찰이었으나, 17세기 초 부휴계 문도가 진출함에 따라 점차 부휴계 문파의 본산이 되어갔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16세기 이후의 불교계는 그 불서 간행 양상을 통해 사상 경향 및 재편 양상을 살펴볼 수 있으므로, 추후 『몽산화상법어약록』, 『선원제전집도서』,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 등의 간행 양상, 17세기 전반 송광사의 불서 간행 양상 등을 면밀히 검토한다면 이 시기 불교계의 변화에 대한 논의가 진전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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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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