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帶方郡의 설치 의도와 長期 存續의 배경 = A Study on the Establishment of Daebang commandery(帶方郡) and its Long-Term Mainten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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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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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wanghae-do area, where Jinbeon Commandery(眞番郡) was established around 108 BC, was under the rule of Lo-rang commandery(樂浪郡) from around 82 BC. However, since it is a remote border area from Pyongyang, there was a limit to the small number of residents and the concentration of county residents decreased. As a result, it reached the point where it became impossible to rule the county and prefectures at the end of the latter half.
However, in the early 3rd century, Gongsun's Regime(公孫氏政權) established Daebang commandery(帶方郡) in this area, and it was greatly changed. The primary purpose of Gongsun Kang's establishment of Daebang commandery(帶方郡) was to restore the county and prefectural systems in Hwanghae-do and to make the area his firm base of power. In addition, it was to expand its external influence by targeting Han(韓) and Wae(倭) outside the military area based in this area.
Daebang commandery(帶方郡) continued to travel with the royal court until the last days of Seojin(西晉), and it is believed that it was operated relatively normally. In particular, there are records supporting the frequent traffic between Daebang commandery(帶方郡) and Seojin(西晉) Central Government from 291 to 300. This shows that despite the chaos of Seojin(西晉) and the intrusion of the surrounding Han(韓) and Ye(濊) forces, Daebang commandery(帶方郡) still maintained the internal command system and normally communicated with the central government.
As such, the Hwanghae-do area was an area where it was virtually impossible to govern Gunhyeon until the last days of Han(漢), but after the establishment of Daebang commandery(帶方郡), it operated stably over a long period of time until the end of the 3rd century. In addition, this change is thought to be deeply related to the fact that the new ruling class, which was introduced and settled by Gongsun's Regime(公孫氏政權) in the process of establishing the military, faithfully performed their role while operating the military stably for a long time.
황해도 지역은 기원전 108년경 漢의 眞番郡이 설치되었으나 前漢 昭帝 始元 5년(기원전 82)경부터는 낙랑군의 치하에 들어갔다. 그러나 郡治에서 멀리 떨어진 邊地로서 주민수가 적고 군현민의 결집성이 떨어지는 한계가 있었고, 이에 후한말(桓靈之末)에는 군현 통치가 붕괴되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그러나 3세기 초반에 공손씨 세력이 이 지역에 대방군을 分置하면서 큰 변화를 맞았다. 공손강이 대방군을 설치한 목적은 1차적으로 황해도 일대에 군현체제를 복구하여 그 지역을 확고한 세력 기반으로 삼는 것이었고, 더 나아가 이를 거점으로 郡域 밖의 韓ㆍ倭를 대상으로 한 교섭 업무를 수행하여 대외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이었다. 그는 군현의 장기적인 안정과 효과적인 기능 수행을 위해서는 기존의 군현 주민에게만 운영을 맡기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他地 출신의 漢人 이주민을 새롭게 대방군에 이주시킴으로써 그 운영 주체를 새롭게 구성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대방군은 서진말까지 조정과의 왕래를 지속하면서 비교적 정상적으로 운영되었다고 판단된다. 특히 『晉書』 등에는 291년부터 300년경까지 대방군과 서진 중앙조정과의 잦은 왕래를 뒷받침하는 기록들이 보인다. 이를 통해 대방군이 서진의 쇠퇴와 주변 한ㆍ예 세력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부 지휘체계를 유지하고 중앙 조정과의 연락을 정상적으로 이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황해도 일대는 후한말에 군현 통치가 사실상 불가능했던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대방군의 설치 이후부터 3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상당 기간에 걸쳐 안정적으로 운영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군 설치 과정에서 공손씨 세력이 유입ㆍ정착시켰던 새로운 지배층이 군을 장기간 안정적으로 운영하면서 그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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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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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1-02-18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단군학회 -> 고조선단군학회영문명 : Dangun Studies Association -> Gojoseon & Dangun Studies Association | KCI등재 |
2021-02-18 | 학술지명변경 | 한글명 : 단군학연구 -> 고조선단군학외국어명 : Journal of Dangun Studies -> The Journal of Gojoseon & Dangun Studies | KCI등재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8-04-03 | 학술지명변경 | 한글명 : 고조선단군학 -> 단군학연구외국어명 : The Journal of Gojoseon & Dangun Studies -> Journal of Dangun Studies | KCI등재 |
2017-06-27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고조선단군학회 -> 단군학회영문명 : Gojoseon & Dangun Studies Association -> Dangun Studies Association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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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11 | 학술지명변경 | 한글명 : 단군학연구 -> 고조선단군학외국어명 : Journal of Dangun Studies -> The Journal of Gojoseon & Dangun Studies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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