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의 피란학교 연구 - 학교경영방침, 교육과정, 학교일상을 중심으로 - = A Study on the Refugee School in Busan, Provisional Capital During the Korean War - Focused on School Management Policy, Curriculum and Daily Life -
저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21
작성언어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41-74(34쪽)
DOI식별코드
제공처
한국전쟁기 부산은 피란수도이자 교육수도였다. 부산의 피란학교 교육은 당시의 한국교육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의미가 있다. 이 논문에서는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의 피란학교의 교육을 두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하나는 학교의 경영방침과 그를 구현할 교육과정의 측면에서, 다른 하나는 과외활동으로서 학교의 일상을 고찰하였다. 피란학교 개설 초기인 1950년 9월의 학교경영방침은 전력(戰力) 증강과 같이 전쟁을 위한 교육이었고, 교육과정 편성은 임시적이었다. 부산을 비롯한 전국에 피란학교가 개설된 1951년 초부터의 피란학교의 경영방침도 전쟁 승리를 위한 교육 등으로 정해졌다. 이를 위해 당시 문교부에서는 전시교재를 제작, 배포하기도 하였다. 1951년 하반기부터는 점차 정규적이고, 교과중심의 피란학교 운영이 가능해졌다. 그러나 교재, 교실이 부족하여 신문, 잡지 등을 교재로 활용하였고, 이를 광복 후 새교육운동에서 강조하던 생활중심교육이라고 명명하였다. 1952년부터는 미국 교육사절단이 부산 등지에서 생활중심교육과정과 수업법에 대해 연수를 하면서 생활중심교육과 민주주의 교육의 이념을 일선학교에 전파하려 노력했다.
초등피란학교가 개설되던 초기의 학교의 과외활동은 위문편지 쓰기, 나무하기, 빨래하기 등이었다. 점차 피란학교가 안정되면서 자치회, 문예부, 소풍, 운동회 등의 과외활동이 행해졌지만 전쟁의 분위기가 크게 반영되어 있었다. 중등피란학교도 초기에는 교사(校舍)가 없어 교과 활동보다는 교사 건설을 위한 노력봉사 등의 과외활동이 많았다. 중등학교에서는 1951년 하반기부터 정부의 정책에 따라 특별교육으로 ‘1인1기’ 교육을 실시하였고, 이는 정규 교육과정의 운영에 차질을 초래하였다. 중등학교의 과외 활동으로는 군인 위문 행사 참여가 많았고, 이는 당시 학생의 일상이었다. 1952년 이른바 ‘부산정치파동’ 등 정치에 많은 문제가 있어 고등학생들도 데모 활동에 참여했다. 이에 정부는 학생들의 정치참여는 금지시키면서도 여전히 관제 데모에는 동원했다. 데모 참여는 학생들의 일상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광복 이후 민주주의 교육 운동이 시작되었지만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정부는 전쟁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민주주의교육, 생활중심교육의 이념을 지속시켜 가려 했다. 그러나 정치가 독재로 나아가고 있었고, 교육 역시 집권자의 정치적 도구가 되어 가는 상황에서 민주주의 교육의 진전은 한계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In the 1950's, Busan was a representative refugee shelter and center of Korean education. The situation of refugee school in Busan is a representative example of Korean education at the time. This thesis examines the education of refugee school in Busan from two aspects. First, I studied the refugee school management policy and the curriculum. Second, I studied the daily life of the refugee school as extracurricular activities. The management policy of the refugee school in September 1950 was related to the reinforcement of combat power. At this time, the curriculum of the refugee school was organized irregularly. The management policy of the refugee school in early 1951 was related to education for victory in the war. At that time, the Ministry of Education produced textbooks called 『War Time Life』 and 『War Time Reader』. From the second half of 1951, it was possible to operate a regular refugee school. However, due to the lack of textbooks and classrooms, newspapers and magazines were used as textbooks, and this was called life-oriented education. Originally, life-oriented education was emphasized in the 'new education movement' after Korean liberation. From 1952, U.S educational missions such as the U.S.C (Unitarians Service Committee) taught life-oriented curriculum and teaching methods in Busan. This was an effort to disseminate democratic education. Elementary school students daily activities include writing consolation letters, gathering firewood, and doing laundry. Secondary school students also tried to build a new classroom rather than studying. From the second half of 1951, the government emphasized technical education, and 'One Person One Talent' education movement was emphasized in secondary schools. The extracurricular activities of the secondary school student at that time were mainly to participate in events to consolation of soldiers. Since 1951 there have been many changes in politic situations, and high school students have become political critic force. The democratic education movement began after Korean liberation, but it was forced to be stopped due to the Korean War. The government tried to sustain the idea of life-oriented education despite the war situation. However, politics was moving toward dictatorship, education also became a political tool for the incumbent, and democratic education during the Korean War faced a limit.
더보기분석정보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학술연구정보서비스(이하 RISS)는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대학학술본부 장금연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