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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初揚州의 재건과 문인공동체의 상관성 연구 ― 王士禛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Relationship of Yangzhou’s Reconstruction and Literary Men’s Community in the Early Qing Dynasty - Focusing on Wangshizhen’s Liter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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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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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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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8(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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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ngzhou揚州 was a city experienced genocide by Manchurian, in the Early Qing dynasty. But A hundred years later the city was described as an open and dynamic center of economy and art culture in 揚州畫舫錄 written by 李斗. Because Wangshizhen王士禛(1634-1711) took an active part in Yangzhou as 揚州推官 from 順治17(1660) to 康熙4(1665), the city together with Suzhou蘇州, Nanjing南京 could restored the splendor of the Late Ming Dynasty and jumped up to be a big city in Jiangnan江南.
In order to promote a local sense of solidarity in Yangzhou, he traveled throughout the various places, including 紅橋, 平山堂, 南京 etc, and 紅橋, and he took part in the cultural events of the city, sometimes planned it for himself. He led the culture of Yangzhou by writing poems and Ci as a group and making a collection of poems to celebrate the event. As a result, he worked hard to communicate with the local people. Based on this, he argued for a new theory and led to cultural revival. The main contents are as follows.
First, focusing on 詩 and 詞, he practiced his own independent theory and activated traditional literary Men’s culture, influenced the formation of literary Men’s communities, the formation of intellectuals, and the growth of individual identity. Second, He specialized in local culture by actively utilizing the landscape and culture of Yangzhou and its surrounding areas as sanctions for his work. Also, he increased his social affinity through travel. Third, Wangshizhen went to Yangzhou and surrounding cities and participated in seasonal festivals and private forest 詩會, and revived Yangzhou’ culture by holding 紅橋修禊. It was highly anti-political and involved diverse people beyond their status and age. Fourth, He used various textures to maintain or expand close relationships with participants. He influenced the formation of intellectuals by playing the role of a supporter to publicize the talents of the common people. The literary community centered on him would have been an important base for restoring Yangzhou.
淸初에 揚州는 만주족의 학살을 겪은 상흔의 도시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100년 후 李斗의 揚州畫舫錄 속에 나타난 모습은 개방적이고 역동적인 경제와 예술문화의 중심지였다. 양주가 蘇州, 南京과 함께 나란히 晩明 시기의 화려함을 회복하고 더 나아가 강남의 대도시로 도약할 수 있었던 데에는 順治17년(1660)에서 康熙4년(1665) 동안 揚州推官을 지냈던 王士禛(1634-1711)의 활약이 컸다.
왕사진은 양주 혹은 양주 주변인들과의 연대감을 조성하기 위해 절기에 따라 紅橋, 平山堂 및 南京 등지를 두루 다니며 다채로운 도시의 문화행사에 참여하고 때때로 스스로 기획하기도 하였다. 詩와 詞로써 집단적 唱和를 유도하고 시집을 엮어 기념하며 강남의 풍류문화를 주도함과 동시에 문화적 의사소통을 위해 힘썼다. 여기서 만난 강남의 유민문인, 지역인사, 각 지역별 문단의 영수 및 대다수의 布衣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였고 이를 기반으로 신운설이라는 독자적 영역을 구축하며 문화적 부흥을 이끌었다. 그 주요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詩, 詞에 주력하며 자신만의 독자적인 이론을 실천하고 전통적인 문인문화를 활성화시켜 공동체를 형성하고 지식인 형성과 개인 주체성의 성장에 영향을 끼쳤다. 둘째, 왕사진은 양주와 주변지역의 산수와 문물을 작품의 제재로 적극 활용하여 지역문화를 특성화시켰다. 또한 여행을 통해 사회적 친화력을 높였다. 셋째, 揚州 및 주변 도시를 다니며 절기별 축제, 개인 원림의 詩會에 참여하고 스스로 홍교 수계를 마련하여 풍류문화를 부흥시켰는데 탈정치적인 성향이 높았으며 신분, 나이를 뛰어넘은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였다. 넷째, 다양한 텍스를 활용하여 참여자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거나 확대시켰다. 布衣 출신들의 세상에 알리는 후원자의 역할을 맡아 지식인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이로써 왕사진을 중심으로 한 문인공동체는 양주를 다시 예전의 풍류 도시로 회복시키는 데 중요한 저변이 되었을 것이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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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5-06-08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The Society For Chinese Cultural Research -> The Society For Chinese Cultural Studies | KCI등재 |
2015-05-01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The Journal of Chinese Cultural Research -> The Journal of Chinese Cultural Studies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12-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11-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2차)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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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5-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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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32 | 0.32 | 0.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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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5 | 0.23 | 0.549 | 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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