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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度寺 靈山殿의 『釋氏源流應化事蹟』벽화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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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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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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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PUS,KCI우수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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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285(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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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전은 석가모니불이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했다는 전설을 기념하기 위한 공간으로 〈영산회상도〉와 〈팔상도〉가 봉안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통도사 영산전은 18세기 초에 중창되고 1734년 〈영산회상도〉가, 1775년 〈팔상도〉가 봉안되었다는 점 외에 중창 당시의 모습을 추정할 수 있는 어떠한 단서도 남아 있지 않다.
18세기 이후에 제작된 팔상도의 도상들이 『석씨원류응화사적』에서 연유되었다는 점에 착안하여 먼저 상벽에 그려진 25장면의 불전 설화와 내용을 비교, 양자 간에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 규명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양자의 도상들은 전혀 중복되지 않았으며, 25장면의 벽화 중에 ‘천인헌초’ 외에는 모두 성도 이후의 사적임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천인헌초’는 다른 팔상도들에는 표현되지만 통도사 팔상도에서는 표현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누락된 것을 보완하기 위해 추가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았다. 나머지들도 성도 이후 열반까지의 석가모니불의 사적이 3-5장면밖에 표현되지 않는 우리나라 팔상도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한다는 성격이 강한 것으로 보고 이 벽화들이 제작될 당시에 화가가 현재 팔상도의 내용을 참조하였을 것으로 추정하였으며, 『석씨원류응화사적』벽화들은 팔상도가 봉안된 이후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파악하였다.
상벽에 그려진 불전 벽화들의 내용은 석가모니불이 신이를 보여 중생을 제도하거나 자식, 며느리의 도리를 일깨우는 교화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신심을 갖고 불교에 귀의하거나 보시를 하면 신분에 관계없이 복을 받을 수 있다는 주제들로 불교를 대중들에게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포벽의 승려들과 관련된 벽화들도 석가모니불이 설법한 내용이 후대에 어떻게 수호, 전파되는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전각 내부를 화려하게 장엄할 목적으로 제작된 것으로 파악하였다. 이처럼 석가모니불과 여러 승려들의 행적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데는 『석씨원류응화사적』이라는 판화집이 대단히 유용했을 것이며 그 유통이 이러한 다양한 벽화를 제작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이들 벽화의 제작 시기에 대해서는 1912년 사내에 전하는 기존 기록들을 모아 정리한 「각법당초중창기념」에 언급된 간략한 기록과 「영산전중수겸단확기」라는 현판 기록을 통해 1792년에 指演이 직접 참여했거나 그의 감독하에 영산전 중수단청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하였다. 지연이 18세기 말 통도사에서 제작되는 대규모 불화 제작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화원이라는 점에서 좁은 의미의 단청이 아니라 벽화 제작까지 포함하는 불사의 책임자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석씨원류응화사적』 관련 포벽화들은 팔상도와의 비교를 통해 팔상도가 봉안된 1775년 이후에 그려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다시 1734년, 1775년, 1792년이라는 영산전과 관련된 절대연대들을 기준으로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불화들과의 양식 비교를 통하여 「영산전중수겸단확기」의 기록대로 1792년 指演에 의하여 그려졌을 것으로 파악하였다.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는 불보사찰 통도사에서 석가모니불의 위상은 다른 어떤 부처보다도 의미 있는 존재였을 것이다. 이러한 위상이 석가모니불이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했다는 전설을 구현한 영산전의 규모와 내부 장식을 다른 사찰의 그것과 차별되게 만들게 된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측벽인 동벽에 불단을 마련하고 입구인 남벽 외에 북벽에도 작은 출입문을 낸 구조는 넓은 공간을 활용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1775년 당시의 건축 구조와 무관하게 팔상도가 제작, 북벽의 출입문 위로 봉안됨에 따라 법당으로서의 기능은 축소되었고, 다시 1792년 중창불사시 벽화가 그려지면서 현재와 같은 구조로 완성된 것으로 생각한다. 대부분의 다른 사찰에서처럼 대웅전을 보완해 주는 부속 전각이 아니라 석가모니불의 상주처이자 『법화경』을 설하는 영산회상의 장소인 독립된 공간으로 한층 발전되었다고 볼 수 있다. 18세기 경제적인 안정에 힘입어 양난으로 인해 파괴된 전각들이 중창될 때 불교의 교조인 석가모니불의 다양한 행적을 알리고 고통 받는 이들을 영산회상에 참여케 한다는 염원의 발현이며, 그 결과물이 현재의 영산전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통도사 영산전이 갖는 불교 신앙적ㆍ미술사적 의의라 할 것이다.
Yeongsanjeon (靈山殿) is the hall for Sakyamuni Buddha in memory of preaching the Lotus Sutra on Mt. Grdhrakuta (the Vulture Peak) at Rajagrha in India. The hall in Tongdosa was rebuilt in the early eighteenth century. And in 1734 and 1775 were enshrined two hanging screens that are common in other Yeongsanjeons in Korea. The one is a screen of Sakyamuni preaching on Mt. Grdhrakuta (靈山會上圖), the other palsangdo: eight scenes of Buddha's life (八相圖).
Besides these two pictures, two kinds of mural painting were drawn at the Yeongsanjeon in Tongdosa Temple. On the western wall was painted the appearance of Buddha Prahutaratna's jewelled stupa derived from the Lotus Sutra (見寶塔品變相圖). The scenes of Sakyamuni Buddha's life and narratives of many monks' were described on the narrow panels between two brackets of the upper and middle wall. These are most representative differences from other Yeongsanjeons in Korea. However it is not known when and by whom these mural paintings were projected.
Forty-five narratives of Buddha's life from Maya's dream to Nirvana were drawn on palsangdo of Tongdosa. And those iconographies were derived from the book of woodblock prints: Seokssiwonlyueunghwasajeok (釋氏源流應化事蹟). Only five episodes correspond to the life for forty-five years from Buddha's Enlightenment to Nirvana. They were not enough, I think, to show the glorious and brilliant achievements of Buddha's. The scenes of Sakyamuni Buddha's life painted on the rectangle panels of upper wall just under the roof, above mentioned, were projected to supplement the shortage of palsangdo. They are total twenty-four narratives for forty-five years of Buddha's propagation except one, meeting with grass-cutter which has been left off the palsangdo. It may be noted in conclusion that the palsangdo had been enshrined when the painter projected and painted the mural painting.
On the panels of the middle wall were painted narratives of twenty-one monks who had shown miracles to propagate Buddhism as an Indian monk Bodhidharma crossed the river on a reed. These iconographies were also deprived from the above mentioned book of woodblock prints.
A hanging board (靈山殿重修?記) made in 1792 provided a clue for solving when and by whom the mural paintings were projected. It shows monk painter Jiyeon (指演) and his assistant with two carpenters played an important role in completing remodeling and painting the hall in 1792. But nobody can know what was painted then. In spite of this ambiguity. it is possible to infer that Jiyeon had painted the mural painting concerning Buddha's life and twenty-one monks. Because he is a master led to the Renaissance of Tongdosa in the late eighteenth century. Who can believe that a master painted colorfully only the wall and roof? And the expression of human gesture, costume. color tone and colorful clouds are very similar to those of other pictures by Jiyeon as The First King of Hell (秦廣大王, 1775) and Ksitigarbba Bodbisattva (地藏幀, 1792), etc. Furthermore, the narratives of Buddha's life on upper wall, above mentioned, were projected to supplement the shortage of palsangdo which was drawn in 1775.
Tongdosa temple has been well known for having Buddha's relic until the period of Three Kingdoms. It therefore is natural that Yeongsanjeon should be planned magnificendy different from that of other temples. When it was remodeled and painted in 1792. twenty-five narratives of Buddha's life and twenty-one of famous monks were painted on the wall to ornament the interior and to make them known to people easily. Then Yeongsanjeon has been completed for the memorial hall where Sakyamuni Buddha had preached the Lotus Sutra in the past and He is preaching it for us now.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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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 평가예정 | 계속평가 신청대상 (등재유지) | |
2018-01-01 | 평가 | 우수등재학술지 선정 (계속평가) | |
201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4-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3-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2-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0-07-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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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1.02 | 1.02 | 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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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 1.04 | 1.591 | 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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