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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기에르 주교와 포르투갈 선교사들의 갈등 = Discord of Mgr. Bruguière and Portuguese Missionaries of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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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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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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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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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215(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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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조선 대목구장에 임명된 바르텔레미 브뤼기에르 주교는 끝내 자신의 임지에 부임하지 못하고 도중에 사망하고 말았다. 그 이유에 대해서 상세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본다면 샤를르 달레가 자신의 저서에서 지적하였던 내용이 통설의 자리를 점하고 있다. 즉 당시 중국 교회의 교구 조직 전반을 관할하고 있던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브뤼기에르 주교의 조선 입국에 대해서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하였고, 이 일로 말미암아 브뤼기에르 주교는 대단히 어려운 여행을 할 수밖에 없었으며, 급기야 조선 입국을 목전에 두고 병사하는 사태가 벌어졌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다.
본고에서 주목하는 것은 브뤼기에르 주교와 포르투갈 선교사들 사이의 갈등에 관한 문제이다. 브뤼기에르 주교가 조선 대목구장에 임명될 당시에 조선 교회의 관할권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은 남경 교구장 겸 북경교구장 서리 피레스 페레이라 주교였다. 많은 교회사 서술들을 살펴보면 브뤼기에르 주교와 피레스 주교 사이에 모종의 불안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중국과 인접 국가들에서 활동하던 포르투갈 선교사들은 교황청이 포르투갈 국왕에게 부여한 특별한 권한, 즉 선교상의 보호권(patronatus)에 충실한 인물들이었다. 그러므로 로마에서 조선 지역을 독립된 대목구로 선포하고 프랑스 선교사를 파견한 것에 대해서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내심 달가워하지 않았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1773년 글레멘스 14세 교황이 예수회를 해산한 뒤에 아시아지역의 선교지 상황은 대단히 복잡한 모습으로 전개되었다. 이 때문에 통킹, 샴, 중국 사천 등지에서 활동하던 파리 외방전교회, 북경의 북당을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서만자로 근거지를 옮긴 프랑스 라자로회, 북경의 남당과 남경, 마카오 등지에서 활동하던 포르투갈 라자로회, 복건에서 활동하던 에스파냐 도미니코회, 산서에서 활동하던 이탈리아 프란치스코회 등 여러 선교 단체들 사이의 친소(親疎) 관계가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고 하겠다. 심지어 동일한 선교회에 소속된 선교사들 사이에서도 알력과 갈등이 있었다. 이런 이유로 브뤼기에르 주교에 대한 포르투갈 선교사들의 태도를 단지 보호권 수호를 위한 방해 책동이라고만 보아서는 안 된다.
The first Vicar Apostolic of Korea, Monseigneur Bruguiere travelled the mainland of China from 1832 to 1835. Despite being sick from exhaustion, heat and lack of food, he pressed forward with his plan to enter Korea. However, his plan was much complicated by the restriction placed on him by the Patronatus system. The Patronatus, an agreement between Portugal, Spain and the Holy See, meant that the administration of the local Church was to be delegated by the Pope to the respective kings. So Portuguese missionaries who worked in China never felt glad to hear the establishment of the Vicariate Apostolic of Korea independent from the Diocese of Pekin(1831). Unfortunately Mgr. Bruguiere died on October 20, 1835, in a Chinese Catholic village, Makiatze, on the doorstep of Korea.
Fr. Charles Dallet, the author of the history of Korean Catholic Church(1874), attributed the cause of the death of Mgr. Bruguiere to the unfriendly attitude of Portuguese missionaries, especially Mgr. Pires Pereira, Bishop of Nankin and the administrator of Pekin. We would not disagree with the opinion of Fr. Dallet. But There were many complicated situations about the difficulties of Mgr. Bruguiere and also to the part of Portuguese missionaries they were engaged in the reasonable circumstances.
From this point of view, we traced the missionary conditions after the abolition of the Society of Jesus in 1773. Many Catholic missionary congregations worked in China, e.g. the Society of Foreign Missions of Paris which worked in Tonkin, Siam, Sichuan ; the French and Portuguese Lazarists who lived in Pekin ; the Spanish Dominicans who worked in Fujian ; the Italian Franciscans in Shansi. They had very multiple layered and sometimes incompatible standpoints about the Korean mission. So we would insist that the confusion of the misunderstandings of Portuguese missionaries and the over excessive response of Mgr. Bruguiere resulted in his premature decease. But it was to be a crucial turning point to change the historical stream of the East Asian Catholic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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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48 | 0.48 | 0.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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