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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40년대 연변지역 한인 ‘集團部落’의 성격 = The character of the Korean collective village in Yanbian area in 1930~194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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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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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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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408(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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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부락’은 일제가 1930~40년대 만주를 침략하고, 대륙침략정책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연변지역에 ‘강제적 수단’을 동원하여 형성한 한인중심의 집거구였다. 집단부락은 일제에 의한 강제적 이주 형태와 수탈을 내세운 침략기지정책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일제 지배층의 주도면밀한 장기적인 계획 속에서 추진된 집단부락정책은 일제의 대륙침략정책의 운영과 맞물려 있었다. 만주경영은 조선경영과 불가분의 관계라는 일본 지배층의 인식 하에서, 정착실패 또는 미미한 성과에 그친 일본인 농업이민대신, 수전경작능력을 통해 자생력을 갖춘 한인들이 대거 만주경영에 투입되었다.
유랑하던 한인을 중심으로한 만주국 초기(1933~1936) 집단부락정책이 실효를 거두었다고 판단한 일제는 중일전쟁기(1937~1941) 들어 조선 내의 한인들을 이주시키는 쪽으로 범위를 확장하면서 집단부락정책을 강화하였다. 성격과 특성에 따라 이를 각각 전반기 집단부락의 설치와 그 후속 시기로서 후반기 집단부락의 설치로 구분하여 살펴볼 수 있다. 이렇듯 집단부락 설치를 두 시기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이 두 시기에 집단부락 설치의 목적이 ‘治安安定性’에서 ‘收奪强化性’으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전반기 집단부락의 설치와 후반기 집단부락 설치의 연결고리는 1935년의 전반기 집단부락 설치 중 제3차 설치, 그리고 1936년 9월의 滿鮮拓植株式會社와 鮮滿拓植株式會社의 설립에서 찾을 수 있다. 이를 통해 보다 유기적인 체계를 정립하는 모습은 1937년 이후 대규모 한인 강제이주와 본격적인 수탈체제의 출범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재만한인들은 물적ㆍ인적으로 항일무장투쟁세력을 지원하였다. 이에 일제는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 인적ㆍ물적자원을 포함한 모든 자원을 통제하고 수탈하였다. 1938년 말부터는 곡물 ‘출하’와 양곡배급정책이 실시되었다. 또한 일제는 ‘사상적 건전’을 강조하면서 집단부락의 한인들을 제국주의 논리에 세뇌시키고자 했다.
연변지역 집단부락은 1930년대 초반 만주국의 지배력 확대을 위해 항일무장투쟁세력을 탄압하는 ‘전초기지’로, 30년대 중반에는 항일무장투쟁세력과의 전투 ‘최전선’으로, 그리고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의 발발을 즈음해서는 ‘후방기지’로서의 역할을 달리하였다. 또한 전기간을 통해 항일무장투쟁세력을 ‘驅逐’하고자 하는 근거지로서 집단부락이 활용되었다. 1941년 6월, 만선척이 만주척식회사와 병합되면서 집단부락은 어떠한 지원도 기대할 수 없을 만큼 철저하게 소외되었고, 역설적으로 수탈은 점점 더 강화되었다.
The Korean collective village(集團部落) was formed compulsorily in Yanbian(延邊) area in 1930~1940s by Japanese imperialism. It was the product formed in the course of strengthening the continent invasion policy of Japanese imperialism. The Korean collective village was symbolized invasion base policy that compulsory deportation and exploitation by Japanese imperialism.
The Korean collective village policy was promoted to close and long plans that continent invasion policy of Japanese imperialism chief executives. Recognized from both are inseparably related Manchuria(滿洲) and Chosun(朝鮮) of Japanese imperialism chief executives.
Wandered Korean-centric collective village policy(The early age of Manchuria, 1933~1936) was succeed. Japanese imperialism was changed Korean from colonial Chosun-centric collective village policy(The Sino-Japanese war, 1937~1941). This was classified the first half year and the latter half year establishment of collective village. Thus, classified two times that establishment of collective village was changed purpose of collective village establishment from public security stability to exploitation strengthening. Chaining of The first half year and the latter half year collective village establishment was 3rd establishment under the first half year collective village establishment 1935, and establishment of Manseon colonial company(滿鮮拓植會社) and Seonman colonial company(鮮滿拓植會社) September. 1936. This change previewed Korean deportation after 1937 and foundation of regular exploitation formation.
The Koreans in Yanbian was supportted to the body of Anti-Japanese armed struggle with material and personal help. After outbreak of The Sino-Japanese war and the Pacific war, Japanese imperialism was controlled material and personal resources, exploitated its. Until the end of 1938, put in operation grain ‘shipment’ and grain distribution policy.
Collective village in Yanbian was ‘Advance base’ to suppressed the body of Anti-Japanese armed struggle in the opening part of 1930, ‘The front line’ to battled with the body of Anti-Japanese armed struggle, ‘The rear base’ to outbreak of The Sino-Japanese war and the Pacific war. Also, Collective village was expulsion base of the body of Anti-Japanese armed struggle in 1930~40s. Manseon colonial company was amalgamated to Manjoo colonial company(滿洲拓植會社) July. 1941. Collective village was alienated and exploitation was strengthe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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