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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말∼순조 초 金健淳의 행보와 辛酉邪獄 = A Study on Kim Geon Soon and the Shinyu-Saok During the End of the King Jeongjo’s Reign to the Beginning of the King Sunjo’s Re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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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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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1-319(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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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Geon Soon’s baptismal name was Josaphat and he was executed during Shinyu-Saok(1801). He is from Andong Kim’s family. Andong Kim’s was the most prestigious family in the late Joseon dynasty. During Byungja-Horan(1636-1637), Kim Sang Heon and Kim Sang Yong of the Andong Kim family dedicated loyalty to the Joseon Dynasty. Kim Geon Soon was a descendant(Bongsason) of Kim Sang Heon. Andong Kim’s family was Nohron and married a royal family in the 19th century and became maternal relatives. Kim Geon Soon was a Catholic. Kim became a Catholic after taking an interest in Western Studies(Seo-hak), and Andong Kim’s free and diverse traditions were one of the reasons why Kim became a Catholic. Also, Kim was talented and he had the curiosity about various things. He read Catholic books and wrote books from his youth. Kim was baptized by Father Zhou Wen-mo.
Although Kim Geon Soon was involved with the “Gang Yee Cheon incident,” but King Jeongjo forgave Kim. Because Kim was a Bongsason of Kim Sang Heon and Andong Kim’s family was loyal to the King. But King Soonjo did not forgive Kim. King Soonjo ascended the throne at the age of 11. Because the king was too young, Queen Jeongsoon conducted Sooryeomcheongjeong. In 1801, the execution of Catholics is Joseon Dynasty occurred, which is called the Shinyu-Saok. The incident killed many Catholics in Joseon. The circumstances changed from the time when it was King Jeongjo due to Sooryeomcheongjeong of Queen Jeongsoon. King Jeongjo cooperated with Si-pa of Nohron and Nam-in, but Queen Jeongsoon was from Byuk-pa of Nohron. So the Queen tried to eliminate those people who were active during Jeongjo’s reign. The Shinyu-Saok was the main incident because many Nam-in were Catholic. Though KimGeonSoon was Nohron he was executed and beheaded. Andong Kim was Si-pa of Nohron. The beheading of KimGeonSoon was too strict because he was the Yangbhan class. Nevertheless, Kim was executed because of Queen Jeongseon's intention to eliminate the Si-pa of Nohron. It was also the Queen's intention to warn the entire family of Andong Kim. In the end, Kim’s death was also influenced by political reason.
김건순은 안동 김문 출신으로 순조 원년(1801년) 신유사옥으로 처형된 인물이다. 안동 김문은 병자호란이 발생했을 때 김상헌과 김상용의 충절을 바탕으로 의리와 학문을 갖춘 조선후기 최고의 명문가이며, 김건순은 김상헌의 봉사손이었다. 안동 김문은 19세기에는 왕실과 국혼을 통해 외척가문으로 가세를 지속하였던 노론 가문이다. 김건순은 안동 김문 가풍에서 나오는 자유롭고 다양한 분위기와 개인의 재능과 호기심, 다양한 관심이 작용하여 그는 학문으로서 서학을 하였다. 또한 그는 청년시절부터 천주교 서적을 읽고 책을 썼으며, 천주교와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김건순은 정조대 ‘강이천 사건’에 연루되었지만, 산림 김양행의 손자이며, 김상헌의 봉사손이라는 가문적 배경, 그리고 정조의 안동 김문에 대한 신뢰 등으로 혼자 귀양에서 제외된바 있다.
순조 즉위후 정순왕후가 집권하면서 상당수 천주교 신자들이었던 남인들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 신유사옥이었다. 이 사건으로 정조대 입지가 강화되었던 남인들은 정치적으로 제거될 수밖에 없었다. 김건순은 주문모 신부의 심문 과정에서 언급되며 체포되어 천주교 신자인지, 세례를 받았는지, 강이천이 꾀한바 있는 사건을 통해 반역을 꾀했는지 집중 심문을 받았다. 김건순은 철저히 천주교인인 것을 부정하였고, 세례 받은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주문모신부만 만난 것을 인정하였다. 이러한 그의 행보는 배교로 볼 수 있고, 천주교회에서도 김건순을 순교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김건순은 안동 김문 명문세족 출신 양반사대부이지만 참수형을 당하였다. 김건순은 천주교를 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음에도 샤를르 달레나 황사영 등 당대인들은 그를 순교자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김건순에 대한 엄한 처분은 두 가지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진다. 하나는 안동 김문에 대한 정순왕후의 견제이며, 또 하나는 신유사옥이 남인을 처벌하는 정치적 숙청이라는 시각에 대한 반증으로 노론 김건순에 대한 엄한 처벌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며, 천주교 측에서는 노론도 천주교 신자라는 또 다른 이유가 필요했기 때문에 당대에는 김건순을 순교자로 인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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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9-05-02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A Laboratory of Korean Studies -> Institute of Korean Studies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12-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11-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2차) | KCI후보 |
2010-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8-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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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3 | 0.3 | 0.23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36 | 0.38 | 0.553 | 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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