귄터 그라스의 <넙치>에 나타난 반어적인 서술태도 = Ironsche Erza¨hlhaltung in Gu¨nter Grass' Roman >Der Butt<
저자
박병덕 (전북대학교 사범대학 독어교육과)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1995
작성언어
Korean
KDC
104.000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65-75(11쪽)
제공처
소장기관
그라스는 이미 초기작품부터 사실주의적 서술의 여러가지 제약, 즉 전통적인 심리묘사, 확립된 형식들의 단조로움, 그리고 다양하고 활력에 넘치는 풍부함을 억압하는 직선적 플롯을 사용 등에 대해 거부감을 부여 왔다. 그는 특히 <넙치>에서 기존의 서술 이론에서 논구된 모든 표현 가능성을 남김없이 사용하고 있다. 수많은 시가 삽입되어 있을 뿐 아니라, 르뽀르타쥬식 에세이, 연대기적 역사, 상상력에 의존하여 실제 자료를 변형시킨, 그럴 듯한 설득력을 지닌 갖가지 문학사, 민중동화의 전래신화,자서전적 요소, 심지어 상세한 요리법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이질적 요소들이 몽타쥬되어 있어서 낭만주의적 普遍文學의 이상을 구현하려 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 정도이다. 게다가 시각의 급격한 교체, 동시성의 기법이 자주 나타나 직선적 플롯 전개가 지양되고 있고, 사실적인 세부묘사가 초현실적 문장들과 번갈아 나타남으로써 현실적 요소와 환상적 요소가 상호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 침투하고 있으며, 엄청나게 방대한 서사적 폭 속에 무수한 에피소드가 삽입되어 있다.
<넙치>는 이처럼 잡다한 인상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의 분명한 서술질서를 지니며, 단일한 서술의식이 굴절되어 역사상 다양한 인물로 변형되어 등장하는 일인칭 서술자에 의해 작품 전체의 유기적 연관성이 유지되고 있다.
마치 프리즘을 통과하는 빛에 의해 투사된 스펙트럼처럼 다채로운 기능을 하는 "프리즘 같은 서술자" (the prismatic narrator)는 신석기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거의 4천년 동안을 살아온 동화적인 불멸의 존재로 등장한다. 일인칭 서술자는 자신의 전생과 미래의 변형들 조차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전통적인 주석적 서술자의 다양한 가능성을 거의 모두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넙치>의 서술자는 전통적인 주석적 서술자, 즉 신처럼 전능한 힘으로 모든 작중인물들을 움직이고 작중인물들의 모든 생각과 행동 포괄적으로 보고할 수 있는 그런 전지자적인 주석적 서술자와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일인칭 서술자-주인공은 자신이 체험적 자아로서 살아 온 내력을 역사상의 여자요리사들의 생애와 연관시켜 서술하는 안쪽 이야기 외에 그것에 거리를 취하면서 관찰하는 또 다른 視線들, 즉 자신이 살아 온 삶에 대한 종합적 평가와 반성의 역할을 수행하는 시선들을 바깥틀에 마련해 주고 있다. 이 바깥틀에서 서술적 자아의 역할을 하는 현재 차원의 '나', 여성해방법정의 구성원들, 그리고 그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 넙치 등이 서로 다른 다양한 시각을 통해, 안쪽틀에 진술된 내용을 의심하거나, 반성하거나, 평가하거나, 또는 그 내용에 주석을 가하고 있다. <넙치>에는 이처럼 다양한 시각이 동원됨으로써 안쪽틀에 이야기된 경험의 유형이 최종적인 진술로 확정되지 않고 거듭 회의적인 자세로 유보된다. 일회적 진술이나 경험에 대해서는 항상 의심하는 태도가 뒤따르며, 최종 판단이나 결론을 유보함으로써 결국 독자로 하여금 나름대로의 사고 과정을 거칠 수 있는 상상의 공간을 남겨둔다. 안쪽틀에서도 바깥틀에서도 어떤 탐구의 결론이 명백하게 드러나는 경우란 드물며, 앞 또는 안쪽에 진술된 내용이나 결론을 뒤 또는 바깥쪽에서 의심하거나 부인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넙치>의 서술자는 동일한 사건을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때마다 다양한 서술시각으로부터 앞에서 이야기한 것과는 다르게 이야기함으로써 결국 한 사건에 대한 단정적인 결론이 유보된다. 따라서 우리 독자가 서술자로부터 제공받는 것은 현실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 斷片的인 지식들, 相對化시키는 推測들뿐이다. 이 소설이 명백하게 제한된 초지일관하는 세계관을 요구하는 독자들의 분노를 야기시킨 것은 바로 이러한 특성 때문이다. 독자는 이제 예전처럼 작가가 해답을 명확하게 제시해 주는 허구적인 세계에서 안락하게 위안을 찾을 수가 없다. 번어적인 서술 태도를 사용하는 까닭은 불완전하고 불명확한 현실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을 표현하기 위하여, 그리고 동일한 생각이나 사건을 다른 각도에서 반복적으로 탐구하기 위해서이다.
"세번째 유방" 이야기, 소피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도로테아 폰 몬타우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러한 반어적 서술 태도가 어떻게 나타나고 있으며 그 의미와 효과는 무엇인가를 밝히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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