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견종법(?種法) 보급론의 확대 = The Historical Study of the Discussions on the Dissemination of Kyunjong-beop in th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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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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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C
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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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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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0(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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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종법(?種法, 골재배법)은 중국에서 유래한 대전법(代田法)이 조선에서 새롭게 해석된 밭 농법으로, 한 이랑에 고랑 셋과 두둑 셋을 조성하여 고랑에 작물을 재배하는 농법이다. 이 글은 조선에서 대전법을 수용하면서 견종법으로 해석했고 이 견종법을 보급하려는 논의가 확대되는 과정을 역사적으로 검토한다. 조선전기에는 이 대전법에 대한 표피적 정보만 유통되는 실정이었다. 대전법을 조선에 본격적으로 소개한 이는 유형원인데,그는 중국 요동의 대전법을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박세당은 중국 농서를 요약함으로써 농서에 최초로 대전법을 소개했다. 박지원은 요동의 대전법을 목도하고서 대전법 도입을 본격적으로 권장했다. 그는 작묘법(作畝法, 밭이랑 만드는 법)이나 재배법의 측면에서 대전법의 우수성을 강조하면서, 대전법 시스템 전체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제가는 중국 농법을 배워야 한다는 ``북학(北學)``이라는 관점에서 대전법 도입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들은 도입의 당위성만 주장했을 뿐 대전법의 구체적 내용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상의 대전법 논의를 집대성하고 대전법 연구를 심화했으며, 그 보급론을 가장 적극적으로 펼친 이는 서유구였다. 그는 대전법 보급을 조선 농정의 주요 과제로 삼았는데, 그가 해석한 대전법이 바로 ``견종법``이었다. 견종법은 밭갈이법, 이랑 조성법 등에 새로운 해석을 가미한 서유구 식 대전법이었다. 그는 견종법을 실험하면서 상세히 분석한 뒤, 견종법이 생산성이 가장 좋은 농법이라 결론짓고 이를 전국적으로 확대 시행하려했다. 견종법을 이해하고 보급하려 했던 그의 노력은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서유구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당시에 성행했던 농법의 관행을 깨트리지 못해 견종법은 실제로 거의 보급되지 않았다. 결국 조선시대 견종법 보급론은 확대되었으나, 그 논의가 농가를 설득시켜 농지에서 실행될 여건을 조성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더보기Kyunjong-beop (?種法, Furrow-cultivating agricultural techniques of Joseon dynasty) is an agricultural technique to grow crops in furrows while building three ridges and three furrows in a unit field. The development of this technique was initiated from the introduction of Daejeon-beop (代田法, furrow-cultivating agricultural techniques), which was a kind of an agricultural technique from China, but compiled into the unique adaptation of Daejeon-beop. In this context, the goal of this study was to examine the historical contexts of adaptation of Daejeon-beop into Kyunjong-beop, highlighting the discussion on dissemination of Kyunjong-beop in the late Joseon dynasty. In the early period of Joseon dynasty, there was little information discussed about Daejeon-beop. It was Yu Hyung-won (1622-1673) that initially introduced Daejeon-beop in the Joseon dynasty. He proclaimed the need of Daejeon-beop, informing the innovative agricultural method executed in Liaodong (遼東), northeastern China in the era of the Qing dynasty. Park Se-dang (1629-1703) was the fist scholar to describe Daejeon-beop in agricultural books published in Joseon by summarizing a Chinese agricultural book including Daejeon-beop into his book. Furthermore, Park Ji-won (1737~1805) actively encouraged farmers to incorporate Daejeon-beop after he observed how to successfully grow crops in Liaodong area. Particularly, he argued the systemic adaptation of this technique due to the excellent quality of building a field with furrows and ridges as well as a method of cultivation. As well, Park Je-ga (1750~1805) also emphasized the need of Daejeon-beop in favor of ``Thoughts for learning Qing Culture``(北學). Interestingly, however, no one was yet interested in investigating its substantial knowledge. In the pursuit of substantial knowledge for Daejeon-beop, Seo Yu-goo (1764~1845) compiled of theoretical discussion of Daejeon-beop of the late Joseon period into his book and did dry-field farming by himself. As a result of incessant experimentations and thorough analysis, he can gain the empirical data regarding listing and drilling, which was actually lacking in the introduction of Daejeon-beop. In this reason, his way of faming was distinguished from Daejeon-beop and re-named as Kyunjong-beop. Because he strongly believed that Kyunjong-beop was the most productive agricultural technique in the late Joseon, he committed himself to disseminate Kyunjong-beop all over the country. Despite his painful efforts and life-long commitment, however, Kyunjong-beop was neither disseminated extensively nor executed, because most farmers still stick to the long-held convention of farming. In other words, the information about Kyunjong-beop was disseminated a little bit but there was little encouragement to incorporate it or systemic supervision from agricultural officials, thereby farmers dared not try it into their farm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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