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倭國의 第3次 遣唐使와 百濟・新羅 = The third Gyeondangsa of Wae and Baekje-Shilla
저자
나행주 (대진대학교)
발행기관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PAEKCHE RESEARCH INSTITUTE CHUNGNAM NATIONAL UNIVERSITY)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3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27-51(25쪽)
KCI 피인용횟수
3
제공처
This article considered the background, the purpose and the effect of the third Gyeondangsa(第3次遣唐使) based on total understanding about international and domestic situation of Wae(倭). Especially, concentrating the movement of Baekje(뷨?), this examined how the policy toward Shilla(新羅) had been changed.
The result is as in the following.
First of all, international factor that decided the third Gyeondangsa directly,was that Baekje was tried to strengthen ties between Baekje and Wae from June to August 653. Because it was clear that Dang(唐) had strong foreign policy toward Baekje, granting Shilla's request, as sending a directive, with the royal seal of Dang Emperor, that ordered Baekje to stop attacking Shilla. So taking close link with Wae was quite important to Baekje.
Secondly February 654, when international situation in East Asia was rapidly changed, the third Gyeondangsa was suddenly sent. It stayed in Shilla for a long time, and succeeded in getting diplomatic negotiation with Shilla. Then it left for Dang. But they got an unexpected order, that is, the dispatch of Wae's troops to Baekje to help Shilla.
The third Gyeondangsa returned to Wae August 655 and it reported the order, it became one of decisive factors, which made Wae change the foreign policy toward Shilla. (with regard to the breakdown of Shilla 'Jill(質)' system)Because the unexpected order had Wae fundamentally reconsider existing diplomatic policy (thus ideology of it) that Taika reform regime sticked to. To conclude, Was had to choose its own diplomatic alliance between one of Baekj e갋Goguryeo(高句麗) and one of Shilla・Dang. Surely Wae had no choice but to join one of Baekje・Goguryeo.
Thirdly, change of regime in Wae, along with the international factor, had a strong influence on the breakdown of Shilla 'Jill' system. On the other words,after the death of Kotoku Tenno(孝德天皇), who built and maintained the system, the government power was dominated by Tenji Tenno(天智天皇 Prince Nakanoooe 中大兄皇子) and Saimei Tenno(齊明天皇). And this political change accelerated the breakdown of the system.
왜국의 견당사 역사에 있어서 654년 2월에 출발, 655년 8월에 귀국하는 제3차 견당사는 전후의 견당사와 비교해 두드러진 특징이 있다. 첫째, 사절의 성격이 전후의 견당사에 공통적인 정치문화사절이 아닌 순수한 정치외교사절이라는 점, 둘째, 653년 5월에 앞서 출발한 제2차 견당사의 귀국(654년 7월) 전에 긴급히 파견되었다는 점, 셋째, 파견의 직접적인 이유가 국내적 요인에 의해서라기보다는 국제적・외적요인에 의해 비롯되었다는 점, 넷째, 그 결과가 왜국의 대외정책, 특히 대신라정책상에 있어서 커다란 전환을 초래했다는 점 등이다.
본고는 이처럼 특이한 경우에 해당하는 제3차 견당사 문제에 주목해 파견의 배경 및 목적, 그리고 그 결과를 해명하기 위해 백제・신라의 움직임 및 당의 대응 등 국제적 요인과 왜국내의 권력주체의 변동이라는 국내적 요인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검토해 보았다. 무엇보다도 제3차견당사의 제 문제를 특히 653년의 백제의 움직임에 주의하면서 왜국 내의 대(對)신라정책의 변화과정(=신라 「질」체제의 파탄과정)과 관련해 살펴보았다.
그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제3차 견당사 파견의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외적 요인은 653년 6~8월에 걸친 백제의 대왜외교 강화이며, 이러한 백제의 대왜외교를 촉진시킨 중요한 계기는 (1)650년 신라 법민의 입당과 대백제원군요청, (2)이를 수용한 당의 백제에 대한 강경한 태도 표명, 즉 종래의 백제의 신라침공에 대한 최후통첩이라 할 수 있는 651년에 있어서의 당 황제의 璽書 전달이라 할 수 있다.
둘째, 동아시아의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654년 2월에 갑자기 파견된 제3차 견당사는 신라에서 상당 기간 체재하면서 원만하게 신라와의 외교절충을 걸친 후 입당하게 되는데 당에서 기다리고 있는 결과는 高向을 비롯한 견당사 일행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즉, 그것은 당황제가 왜국왕에게 내린 청천벽력과도 같은 신라 구원, 대백제 출병이라는 출병명령이었다.
655년 8월에 귀국한 견당사 일행이 왜왕권에 전한 당의 명령은 왜국의 신라정책의 전환(신라 「질」 체제의 파탄)에 결정적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 왜국에 전해진 백제를 공격하라는 전혀 예기치 못한 당의 출병명령은 왜국으로 하여금 지금까지 개신정권이 추구해 온 외교정책 노선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개신정권 성립에 의해 수립된 새로운 대신라정책의 핵심은 직접적인 대신라출병(=대백제 원군파견)을 자제한다는 전제 하에서 맺은 백제의 「질」 체제에 대신하는 신라의 .질. 도입책에 다름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국 왜국은 백제・고구려 라인과 신라・당 라인이라는 대립구도 속에서 양자택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왜국이 전자에 가담하지 않을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셋째, 왜국 내에 있어서의 정치권력의 교체도 또한 앞서 언급한 국제적 요인과 함께 상호 작용을 하여 신라 「질」 체제의 파탄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즉 신라의 「질」 체제를 성립.유지시켜 왔던 당사자인 효덕(孝德)천황의 죽음, 그리고 그에 대신하는 새로운 권력주체의 등장인 중대형(中大兄)황자 및 제명(齊明)천황에 의한 권력 장악이다.
분석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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