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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이후 공후 제작 및 활용에 대한 고찰 = The Making and Use of Gonghu “Harps” since the 193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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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명
국악원논문집(Journal of the National Center for Korean Traditional Performing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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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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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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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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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352(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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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paper examines the recognition, production, and utilization of gonghu “harps” in Korea since the 1930’s. Gonghu, first mentioned in written texts during the Chinese Spring and Autumn period (770–476 BC), were musical instruments used in Korea constantly from the Old Joseon era (Unknown–108 BC) to the Goryeo era (918–1392). In particular, gonghu were important to the music of the Baekje kingdom (18 BCE–660 CE) and were spread to Japan under the name “Baekje geum,” (kudara koto) or “stringed instrument of Baekje.” Although gonghu disappeared during the Goryeo era, interest in gonghu has been constant. After the 1930s, mentions of gonghu were published by the well-known scholars An Hwak, Choi Nam-Seon(1890–1957), and Ham Hwan-Jin, who actually bought a gonghu.
In 1930, An Hwak recorded documents and drawings of gonghu in Joseon , which he quoted selectively on the basis of Hanseo and Akseo, to which he added his own opinion. In 1936-37, Ham Hwa-Jin purchased three kinds of gonghu in China and played them publicly. However, their names and forms were wrong.
In 1941, Choi Nam-Seon wrote in his “Joseon's Common Knowledge: Continued Questions and Answers” (朝鮮常識問答續編 Joseon Sangsik Mundap Sokpyeon) very precisely and accurately about the influx and transmission processes of the gonghu and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Baekje geum (and its form) and the gonghu in Kyoto’s Shosoin museum. Since then, efforts have been made to remake gonghu in Korea. The process and results are as follows. The production of Korean gonghu was modeled on the gonghu in the National Korean Traditional Music Center (now called the National Gugak Center) in the early 1960s. The National High School of Traditional Korean Arts made three kinds of gonghu, all similar to the one at the National Center for Korean Traditional Performing Arts. Among them, the Su-gonghu (the name of the gonghu at the National Korean Traditional Music Center) was made using the famous haegeum and sinawi player Ji Young-Hee’s idea and was later used in a performance by his wife, the famous gayageum player Seong Gum-Yeon, with orchestra. The Su-gonghu was used from 1962 to 1978.
At the National Center for Korean Traditional Performing Arts, both the Su-gonghu and the Wa-gonghu were produced in 1967, based on the three kinds of gonghu. The newly produced Su-gonghu and Wa-gonghu both exhibited new forms, but they could not be played. In 2002, the Institute for Ancient Musical Instrument Studies (The Go akki yeonguhoe) began to study and produce Su-gonghu. The gonghu that was produced based on the Baekje geum and the icons inscribed on the Sangwon Temple Bell is still played.
이 논문은 1930년 이후 한국에서 공후에 관한 인식과 제작과 활용에 관하여 고찰한 글이다. 공후는 고조선부터 고려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에서 끊임없이 사용된 악기이다. 특히 백제악에서는 중심악기로 존재하였으며 일본에 ‘백제금’을 전파하기도 하였다. 비록 고려시대 이후 공후는 맥이 끊어졌으나 공후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은 이어졌다. 1930년 이후 공후에 대한 글이 발표되었는데 대표적인 인물로 안확과 최남선을 들 수 있으며, 실제 공후를 사들인 함화진을 꼽을 수 있다.
1930년 안확은 『조선』에 공후에 대한 기록과 그림을 기록해놓았다. 『한서』와 『악서』를 중심으로 선별적으로 인용하였고 거기에 자신의 견해를 덧붙였다. 1936~7년경 함화진은 3종류의 공후를 중국으로부터 구입하여 연주와 전시를 하였으나 그 명칭과 형태가 잘못된 공후였다. 최남선은 1941년 『조선상식문답속편』에 공후의 유입과 전파과정, 그리고 백제악기로서의 ‘백제금’의 존재와 쇼소인과의 관계, 백제금의 형태까지 매우 상세하고 정확하게 기록해 놓았다.
이후 국내에서 공후를 제작하려는 노력이 있었으며 그 과정과 결과는 다음과 같다.
공후 제작은 1960년대 초반 국립국악원 소장 공후를 모델로 하여 국악예술학교에 의해 유사한 형태의 3종류 공후가 처음으로 제작되었다. 이 중 지영희의 시안으로 만들어진 틀을 가진 형태를 가진 수공후(국립국악원 명칭)가 성금연의 연주로 관현악단에서 활용되었다. 학생들에게 부전공으로 연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며 1962년 연주를 시작으로 1978년까지 사용되었다.
국립국악원에서는 1967년 기존에 소장하고 있던 3종류의 공후를 토대로 수공후와 와공후를 제작하였다. 제작 수공후는 양면으로 현을 배치하여 48현으로 늘였고, 제작 와공후는 C자형 형태로 변모하였다. 제작 와공후와 제작 수공후는 새로운 형태의 공후를 보여줬다는 의미를 가졌으나 안타깝게도 연주되지는 못했다.
공후 제작과 관련해서는 2002년 사단법인 고악기연구회가 공후 연구를 시작으로 L자 형태수공후 제작을 시작하였다. 백제금과 상원사 범종의 도상을 토대로 제작된 공후는 현재까지 연주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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