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玉溪 盧禛의 삶으로 읽는 정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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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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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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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143(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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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2020년 경상남도 함양문화원이 주관하여 ‘함양 정신’을 찾아가는 장기 기획 의 하나로 집필되었다. 이는 함양과 연관성이 깊은 조선시대 문인을 선별해 그들의 학문 및 정신세계를 살펴 오늘날 지역민이 삶의 지표로 삼을 만한 지역 정신을 찾아내는 것이 목적이었다. 본고는 함양이 배출한 名臣인 노진의 삶에서 아래 세 가지 국면을 통해 그의 정신세계를 살펴보았다. 첫째, 노진은 인생의 절반을 함양에서 수학기를 보냈고, 나머지 절반은 출사하여 관료 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의 문집에는 고향을 노래한 직접적 언급이 많지 않는데, 그 중에 서도 지우산 장수사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은 특히 남달랐다. 예컨대 「遊長水寺記」에서 는 빼어난 경관에도 불구하고 지리적으로 치우쳐 있어 전혀 이름나지 않았던 장수사를 함양의 대표 선현인 一蠹 鄭汝昌과 만나게 함으로써, 궁벽한 시골 경관에 불과했던 함양 을 역사에 남을 名勝으로 만들었다. 이후 수많은 名人이 찾아와 함양을 노래하고 역사에 남기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는데, 이는 노진이 고향을 사랑하는 방법이었다.둘째, 노진은 29세에 출사하여 61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관직에 있던 관료문인이 다. 그의 관직생활에서의 성취는 후대까지 함양지역 지식인의 긍지로 인식되었다. 늘 충효의 사이에서 갈등하면서도 실무에서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여 인정을 받았고, 때문 에 벼슬을 사양할수록 높아지는 희귀한 상황이 관료생활 내내 반복되었다. 사실 해당 지역의 인사가 벼슬이 이조판서에 이르고, 지역에서 행해지는 주요 사업에 인적·물적으 로 아낌없는 지원이 이뤄진다면 지역의 자랑이라 할 수 있다. 노진이 바로 그러한 인물인 데, 1578년 그의 사후 李珥(1536~1584)가 ‘정2품 자리에 다시는 적당한 인물이 없겠 다’고 한 탄식이 이를 증빙하고 있다. 함양 출신 문인 중에서 노진 이후 이조판서까지 오른 이는 없었다. 셋째, 노진의 삶에서 찾을 수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은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이다. 당대 를 풍미한 큰 학자들과의 폭넓은 교유가 있었는데, 이들은 대개 영·호남의 지식인이었 다. 江右지식인으로는 鄭希輔 문하의 吳健·姜翼·林希茂 등 노진 당대에 함양을 대표하 는 여러 학자와 曺植 문하의 남명학파 인물이 있었다. 호남지식인으로는 湖南五賢으로 불리는 柳希春·奇大升·朴淳·李恒을 비롯해 金麟厚·宋純·盧守愼 등과의 교유가 대표적 이다. 뿐만 아니라 20살 전후의 나이차가 있던 조식·이항·李滉·林薰 등이 진정한 교유 를 허여할 만큼 각별한 사귐이 있었다. 이는 단순히 많은 인물과의 교유를 칭송하기 위함이 아니라, 인간 ‘옥계 노진’의 진면목을 살필 수 있는 주요한 부분이라 하겠다.
더보기This paper was written as part of a long-term project to find the “Spirit of Hamyang” under the supervision of the Hamyang Cultural Center in Gyeongsangnam Province in 2020. Its goal is to find the local spirit of Hamyang that can serve as a life index for local residents today by identifying literary figures of Joseon closely related to Hamyang and examining their academic and spiritual worlds. The present study examined the spiritual orientation of Noh Jin, the most illustrious subject from Hamyang, in three aspects of his life as follows: First, Okgye spent a half of his life on studying in Hamyang and the other half on serving the nation as a government official. He did not mention his hometown directly in his collection of works a lot, but his affection and pride in the Jangsu Buddhist Temple in Mt. Jiwoo seemed unusual. After taking a tour to the Jangsu Buddhist Temple, which was not famous at all due to its inferior geographic conditions despite its outstanding scenery, he wrote a travel essay, which introduced Ildu Jeong Yeo-chang, one of the greatest ages of Hamyang, to his readers and made Hamyang that used to be a remote countryside scenic beauty one of scenic spots that would last long in history. Since then, a lot of masters visited Hamyang and sang about it, which placed the town in history. This was a way that Okgye showed his love for his hometown. Secondly, Okgye went into government service at 29 and held a government job as a government official and literary person until his death at 61. The achievements he made in his office became the source of pride for Hamyang intellectuals among later generations. While having conflicts between loyalty and filial piety all the time, he exerted his superb abilities in the field and was recognized. The more government positions he declined, higher positions were offered to him, and this rare situation was repeated throughout his life in the government. When a hometown produces a public figure whose position reaches Ijo Panseo and who lavishes human and physical supports on its major projects, he or she will be a source of pride among its people. Okgye was such a case. When he passed away in 1578, Lee Yi (1536-1584) sighed and said, "Hamyang will never produce another fit person for a position of Jeong 2 Pum". No literary figures from Hamyang climbed up the ladder to Ijo Panseo after Okgye. Finally, another characteristic of Okgye's life is his broad human network. He engaged in expansive social intercourse with great scholars that dominated the times, and they were mostly intellectuals from Yeongnam and Honam. He had friendly relationships with intellectuals of Gangwoo including many scholars representing Hamyang during his days such as Oh Geon, Kang Ik, and Im Hee-mu under Jeong Hee-bo and figures of Nammyeong School under Jo Sik. He also enjoyed the companionship of Honam intellectuals including the five ages of Honam including Yu Hee-jun, Gi Dae-seung, Park Sun, and Lee Hang in addition to Kim In-hu, Song Sun, and Noh Su-shin. Furthermore, he formed so special relationships with Jo Sik, Lee Hang, Lee Hwang, and Im Hun that were about 20 years senior to him that they were willing to share true companionship with him. This is an important part of his life to examine the true character of “Okgye Noh Jin” as a human being rather than a simple praise of his friendship with many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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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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