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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영남유림의 사상적 동향 = Ideological Trends in Confucian Scholars of Yeungnam of the 19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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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19th century of the Yeongnam Academia, researches and academic activities of Confucian scholars were animated. In the first half of the 19th century, Yoo Bum-Hew(柳範休), Yoo Chi-Myoung(柳致明) and others stood firmly to the Ihak(理學), developed by Lee Hwang(李滉), and held large-scale lectures at the Gosansungsa(高山精舍) and the Hogaesuwon (虎溪書院) to discuss about the Ihak. In addition, the Ohsandang(吾山堂) meeting led by Lee Han-Ong (李漢膺) in the first half of the 19th century also helped strengthening of the solidarity of Confucian scholars of Yeungnam through lectures and sermons about the Ihak. Through these types of gatherings and lectures, even till the first half of the 19th century, Confucian scholars of Yeungnam considered the theory of Igisimsungron(理氣心性論) by Lee Hwang(李滉) as their ideological foundation and develop academic discussions on various subjects upon it.
From the oriental orientation of Confucian scholars of Yenognam in the 19th century, 1860s is a period of time to be noted. Choi Jae-Woo(崔濟愚) commenced the Donghak in 1860 and Lee Jin-Sang(李震相) announced the theory of Simjeukri(心卽理說) in 1861. The fact that Donghak was strongly advocated by Confucian scholars of Yeungnam Academia in the 19th century is truly interesting. Above all, the most remarkable ideological events in Confucian scolars of Yeungnam Academia was that the Lee Hwang’s Ihak was newly interpreted in the theory of Simjeukri. Of course, there were several academic lines, of Yoo Chi-Myoung and Kimg Hong-Rak, who were trying to preserve Lee Hwang’s theory of Igihobalsul as it was, but amid the time of crisis, they could no longer hold fast only to Lee Hwang’s academic theories. Lee Jin-Sang’s theory of Simjeukri was devised in hopes of fighting off of critiques of scholars of Seohak(西學, western learning) on the theory of Simjeukgi of the semiotics school. However, the theory of Simjeukri was stigmatized as heresy from the end of the 19th century to the beginning of the 20th century since it was claimed that this theory run counter to Lee Hwang’s theory, but in 1916, Dosanseowon Confucian Academy acknowledge its contribution to the development of Lee Hwang’s Ihak.
In the 19th century, in Yeungnam, realist school of confucianism and enlightenment did gain almost no popularity. Rather, two academic traditions of preserving of Lee Hwang’s Ihak and newly interpreting of it were existed together. On the other hand, Ki Jung-Jin’s Ihak fromo Honam was introduced and compared with the theory of Simjeukri to confirm their similarities, and such similarities were acted as the theoretical background for the common front for the Chucksaundong(斥邪運動).
In the Yeungnam academia of the 19th century, Realist School of Confucianism and School of Courtesy(禮學) developed by Heo Jun(許傳) succeeded with Realist School of Confucianism in Gyeonggi were transmitted to confucian scholars in Yeungnam and Woodo. With his teachings, Kim Jin-Ho(金鎭祜)⦁Noh Sang-Jik(盧相稷)⦁Lee Ik-Gu(李翊九)⦁Lee Hong-Suk(李洪錫) and many other scholars initiated the trends of Realist School of Confucianism and School of Courtesy in Yeungnam after the later-half of the 19th century. As the 19th century dwindled and the 20th century began, Confucian scholars of Yeungnam rather moved forward to the patriot enlightenment movement, independence movement, or even socialism rather than cling to Lee Hwang’s Ihak.
19세기 영남학계는 유림(儒林)의 강학(講學) 활동이 활발하였다. 19세기 전반에 유범휴(柳範休)와 유치명(柳致明) 등은 이황(李滉)의 이학(理學)를 철저히 고수하면서 고산정사(高山精舍)와 호계서원(虎溪書院)에서 대규모 강회를 열고 그 이학을 강론하였다. 또한 19세기 전반에 이한응(李漢膺)이 주도한 오산당(吾山堂) 강회 역시 이학의 강론을 통해 영남유림의 결속을 다지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강회를 통하여 영남유림은 19세기 전반기까지도 이황의 이기심성론(理氣心性論)을 사상적 기반으로 삼고, 그러한 학문적 토대 위에서 다양한 주제에 대해 학술토론을 전개하였다.
19세기 영남유림의 사상적 지향에서 1860년대는 매우 주목해야할 시기이다. 최제우(崔濟愚)가 1860년(철종 11)에 동학(東學)을 창도하고, 이진상(李震相)은 1861년에 심즉리설(心卽理說)을 발표하였다. 특히 19세기 영남의 이학가(理學家)에서 동학(東學)이 제창되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무엇보다 영남유림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사상적 사건은 이진상에 의해 심즉리설이 제창되어 이황 이학(理學)을 새롭게 해석한 사실이다. 물론 이황의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완고하게 지키려는 유치명-김흥락(金興洛)의 학맥(學脈)이 있었지만, 이제 이황의 이학도 위기의 시대를 맞아 그 학설을 고수할 수만은 없었다. 이진상의 심즉리설은 기호학계의 심즉기설(心卽氣說)을 비판하고 밀려오는 서학(西學)의 도전을 극복하기 위해 제창된 것이었다. 그런데 심즉리설은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이황의 학설에 배치된다고 하여 이단(異端)으로 낙인이 찍혔으나 1916년에 도산서원(陶山書院)에서 이황의 이학을 발전시킨 것으로 인정이 되었다.
19세기 영남지역은 실학(實學)이나 개화(開化)의 풍조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황의 이학을 굳게 지키려는 학맥과 새롭게 해석하려는 두 학풍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런 반면 호남의 기정진(奇正鎭)의 이학이 들어와 이진상의 심즉리설과 같음을 확인하고 척사운동(斥邪運動)의 공동전선을 구축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19세기 영남 학계에는 경기지역의 실학을 계승한 허전(許傳)의 실학과 예학(禮學)이 영남 우도의 학자들에게 전해졌다. 허전의 문하에서 김진호(金鎭祜)⦁노상직(盧相稷)⦁이익구(李翊九)⦁이홍석(李洪錫) 등 학자가 배출되어 19세기 후반 이후 영남에도 실학적 학풍과 예학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19세기가 저물어가고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영남유림은 이황의 이학을 지키기 보다는 이학에서 애국계몽사상이나 독립운동으로 나아가기도 하고 사회주의노선을 걷는 학자도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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