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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栗谷碑銘」의 찬술과 개찬 논란 검토 = The study on a discussion for Yulgok-epitaphs(栗谷碑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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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문 (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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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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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gye(沙溪) Kim Jangsaeng(金長生) who was the best pupil of Yulgok(栗谷) composed a history of Yulgok's life. He intended to succeed and diffuse the political ideas of his master through the records. Especially, Kim thought that it was very important the politic function of a history of the deceased or an epitaph. So he asked Lee Jeongkwi(李廷龜) who was one of an influential group at that time to write Yulgok's life history and Lee Hangbok(李恒福) who was an elder statesman to compile an epitaph.
Both people, Kim Jangsaeng and Lee Jeongkwi, belonged to the Seoin(西人). Which means they had the same position politically. However, Lee was not a pupil of Yulgok. So there was reflected their different situation in the life history and the other records of Yulgok written by both.
To examine the rocords by both, there was the biggest difference in the description that Yulgok's criticism of Donggo(東皐) Lee Jun-gyeong(李浚慶) and his endeavors to arbitrate between Dongin(東人) and Seoin. Kim had made many efforts to expatiate on the points in comparison with Lee. Because Kim was in position to succeed to Yulgok's political belief as his best pupil, Lee gave practical consideration to the records as a high-ranking official.
Baeksa(白沙) Lee Hangbok composed the epitaph of Yulgok based on Kim's records in 1615. But this was responsible for a great controversy in people comprehended Yulgok's pupils. Most of them were in Seoin poltically. The contents of the controversy were very multifarious, but it could be summarized next main topics. Above all, people demanded to express the politic position of Yulgok showed his criticism of Lee Jun-gyeong and Gyemisamchan(癸未三竄) obviously. Secondly, it was discussed that Yulgok had the different a scholastic mantle with Toegye(退溪) Lee Hwang(李滉). Finally, it could be accepted the eulogy of Yulgok in Confucian way only. That is to say, they intended to establish their own politic identity and academic orthodoxy, besides, tried to make clear them in position of Yulgok's disciples through the writing of Yulgok's epitaph.
Lee Jeongkwi took the lead on one side in this controversy, the initiative on the other side was in Yulgok's disciples. The organization of Yulgok's disciples. was very various. Namely, there were Yulgok's direct pupils like Kim Jangsaeng, people like Oh Yun-gyeom(吳允謙) learned Woogye(牛溪) Seong Hon(成渾) first and related to Yulgok next, people like Jeong Yeop(鄭曄) learned Yulgok and Woogye both etc. Although its organization was various like that, this controversy never had developed into the disruption, different scholastic mantles or groups within a political party, in themselves. Instead of the disruption, that is very important that there was the collecting process of public opinion through constant compromises and mediation.
This could be possible that the controversy was constituted centering around the capital. It was able to gey unified the multiplicity of controversialists based local on openness. Also became a politic characteristic of Seoin, understood softness, centering around Yulgok's disciples. It could be a background that Yulgok's disciples got unification into Seoin without any disruption of scholastic mantle in comparison with Toegye's disciples and Nammyeong(南冥)'s.
율곡 문도의 首長인 사계 金長生은 율곡의 家狀을 찬술하였다. 가장의 찬술을 통해 율곡의 정치의식을 계승하고, 그것을 확산 시키려 하였다. 김장생은 전기자료인 행장이나 비명이 가지는 정치적 기능을 주목하였다. 당시 문장가이자 행정관료로서 정치적 영향력이 높았던 李廷龜에게 행장의 찬술을 부탁하였고, 정치원로인 李恒福에게 비명을 부탁하였다.
김장생과 이정귀는 모두 서인이다. 따라서 정치적 입장을 동일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김장생은 율곡에게 직접 수학한 제자였으나, 이정귀는 율곡과 학문적 연결이 없었다. 당연히 그들이 찬술한 행장과 시장에는 서로 다른 관점이 내포되어있다.
행장과 시장의 찬술태도를 살펴보면 정치적인 문제와 관련된 東皐 李俊慶의 비판문제와 동서분당의 책임을 밝히는 문제에 대하여 가장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김장생에 비하여 이정귀는 이 부분의 서술에 있어 분량은 물론이고 내용도 많이 약화시켰다. 이는 둘의 입장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즉 김장생은 율곡의 문도로서 율곡의 정치이념을 충실하게 계승하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고, 이정귀는 현실정치에 참여하고 있는 행정관료로서의 입장을 고려된 것이다.
김장생의 행장을 가지고 白沙 李恒福은 1615년 비명을 찬술하였다. 그런데 이 비명을 둘러싸고 율곡문도를 포함한 범서인적인 논쟁이 발생했다. 논쟁의 내용은 매우 다양하였지만 크게 몇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이준경의 비판이나 癸未三竄에서 나타나는 율곡 이이의 정치적 입장이 명료하게 표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李珥의 학문적 연원이 退溪 李滉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이의 학문의 형용을 非儒家的 방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율곡문도들은 율곡의 비명의 찬술을 통해서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과 학문적 정통성을 확립하고 공표하려 하였던 것이다.
율곡의 행장 및 비명과 관련하여 진행된 이 논쟁의 한편은 정치 관료인 이정귀가 담당하고 있으며, 그 반대편에는 율곡의 문도가 있었다. 특히 율곡의 문도는 김장생과 같이 율곡에게서 직접 수학한 제자들은 물론, 우계에게서 수학하고 율곡의 문하의 출입한 吳允謙이나, 양문에서 고루 배운 鄭曄 등 매우 다양하였다. 이런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이 논쟁이 학문집단이나 政派의 分岐로 귀결되지 않고, 일정한 타협과 조정을 통해서 수렴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된다.
이는 논쟁이 주로 서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즉 지역적 개방성이 논쟁 참여자의 다양성을 하나로 묶는 구실을 하였고, 그것은 곧 율곡문도를 중심으로 하는 서인들의 유연성으로 특징되었다. 이 때문에 퇴계문도가 서애문파와 월천문파로 분기되고, 남명문도가 내암문파와 한강문파로 분기되는 것과는 달리 일정한 문도의 분기 없이 서인으로 통합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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