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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太宗과 河崙의 天譴論을 빙자한 정국 운영 양상 = The Pocess of King Taejong and Ha, Ryun’s Political Situation Management via Cheon-gyeon(Heaven’s Rebuke) Theory in early Joseon Dynasty
저자
류창규 (남부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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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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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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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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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97(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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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대 정국 운영의 향방은 왕권의 안정과 강화로 귀결된다고 하겠다. 태종대 정치체제의 개편과 정치세력의 부침에 대한 연구가 그러한 점을 뒷받침한다. 특히 왕권 강화를 위한 여정이 6조의 기능 강화를 비롯한 통치체제의 변화와 공신이나 외척 등 특정 정치세력의 제거로 나타났다고 하겠다. 여기에는태종의 신하 간의 견제와 균형을 통한, 곧 왕권에 위협이 될 만한 세력을 용인하지 않은 정치적 술책이 작용하였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태종의왕위 계승에서 비정통성, 도덕성의 결여가 작용하였다고 한다. 태종대 정국에대한 이러한 일반적인 견해는 큰 틀에서 어긋나지 않지만, 태종의 정국 운영방식과 특정 정치세력 제거 과정의 의미는 다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태종과 그의 최측근 신하였던 하륜의 정치적 행보를 통해 정국 운영의 양태를 다시 살펴보았다. 특히 재이에 따른 천견론을 내세워 태종이 선위 파동을 일으킬 때나, 천견론에 따른 하륜의 사직 사건이 이어졌을 때정치적 변화가 심하였다. 나아가 태종의 선위 파동과 하륜의 사직은 서로 연관되어 나타난다. 이러한 점에 주목함으로서 태종의 정국 운영 방향과 하륜의역할을 파악할 수 있었다. 태종 즉위 후 왕위의 정통성과 도덕성 문제로 왕위가 위약할 수밖에 없었다. 제도 개편을 통한 왕권 안정 추구 노력에 하륜이앞장섰다. 이러한 노력에 가장 위협이 될 만한 인물들은 태조를 따르던 이들가운데서도 병권을 장악하고 있던 이들이었다. 태조의 인척이자 좌명공신이었던 이거이가 본보기다. 하륜의 천견론을 빙자한 사직은 바로 이거이의 제거를노린 것이었다. 태종과 하륜의 천견론을 매개로 한 정국 변화 모색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사사전 혁파나 동북면 양전 등을 둘러싸고 이에 반대하는 이들이 태조를 등에 업고 천견론을 매개로 태종과 하륜에게 압박을 가함으로써 상황은 반전되었다. 태조를 배경으로 하는 친 태조 성향 세력은 태종 왕위의 안정에 걸림돌이었다.
태종 2년, 태조를 등에 업고 일어났던 동북면의 조사위 난을 평정하고 이어서 명 영락제로부터 왕위를 인정받은 이후 태종의 왕위는 안정되었다. 그런데 태종 6년 천견론에 따라 하륜이 사직을 요청하고, 얼마 후 태종이 선위 파동을 일으킨다. 하륜의 사직과 태종의 선위 파동에는 무관 세력들의 불만이작용하였다. 사사전 혁파와 토지 지급에 불만을 품은 무관층이 하륜을 비방하였으며, 태종의 외척이었던 민무구 등이 병권과 관련하여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 태종으로 하여금 천견론을 빌어 선위 파동을 일으키게 하였던 것이다. 이로 인해 결국은 민씨 외척 세력의 제거의 단서가 열리게 되었다. 태종9년, 다시 천견론을 빌어 하륜의 사직과 태종의 선위 파동이 일어난다. 태종의 선위 파동은 외척 민씨 일파와 가까웠으며 태종의 즉위에 공로가 컸던 이무를 겨냥한 것이었다. 이무 역시 오랜 동안 병권을 장악하고 있었으며, 그를따르는 무인 세력이 포진되어 있었다. 민씨 일파를 두둔하였다는 점 등 여러죄목으로 태종이 이무를 죽였지만, 결정적인 요인은 이무를 중심으로 무인 세력이 형성되었다는 점이었을 것이다. 태종은 이무와 친밀한 관계였던 하륜을사직하도록 함으로써 그 사건에 비켜서도록 하였다.
천견론을 매개로 한 태종의 선위 표명과 하륜의 사직은 병권을 장악하고있는 이들 가운데 왕위에 위협이 될 만한 ...
Stabilizing and reinforcing king’s power was critical in managing political situations in King Taejong era. Studies of revision of political system and fluctuation of political parties in Taejong era support the aspect.
Especially, the process of reinforcing king’s power was a form of changing political system such as fortifying the six department’s(6曹)functions or removing specific political parties such as retainer’s or Min(queen’s family)’s. Taejong’s political strategy of taking advantage of mutual containment and according equilibrium, which is also a zerotolerance policy toward political parties that could be a possible threat to his power seemed to work in the process. And the lack of linear descent of royalty and the lack of morality affected the strategy in the background. The aforementioned perspective regarding to the political situation in Taejong era is general, and reasonable in the large scale.
However, it is needed to re-consider the meaning of Taejong’s way of managing political situation and removing specific political parties.
This paper re-investigates the figure of political situation management through political stance of Taejong and Ha, Ryun(河崙) who was a close retainer of Taejong. Especially, political fluctuation was extreme in Taejong’s trial of abdication and Ha, Ryun’s trial of resignation according to Cheon-gyeon theory when natural disaster occurred. Moreover, both trials seem to be related to each other. By focusing this fact, it is able to understand Taejong’s way of political situation management and Ha,Ryun’s role in it. After Taejong’s enthronement, Weakness of the king’s power was inevitable because of its lack of orthodoxy and morality. Ha,Ryun actively pursued stabilizing king’s regime via revising system.
Possible threats especially came from those following King Taejo with military power. I, Geo-i(李居易) who was Taejo’s cousin and Jwamyeong -Gongsin(retainer) is the case. Ha, Ryun’s resignation according to the Cheon-gyeon theory aimed to remove I, Geo-i. It’s was the start of Taejong and Ha, Ryun’s pursuing political system change via Cheon-gyeon theory. However, the phase was upside-down when those opposing the demolition of Sasa-jeon(寺社田) and revision of Dongbukmeon pressed Taejong and Ha, Ryun via Cheon-gyeon theory, backed by Taejo. Pro Taejo party backed by Taejo was obstacle toward stabilization of Taejong’s regime.
In the second year of Taejong’s regime, his regime was stabilized after putting down Jo, Sa-eui’s revolution in Dongbukmeon area and getting approval of emperor Yeongrak of Ming dynasty. Suddenly, in the sixth year of Taejong’s regime, Ha, Ryun requested resignation according to the Cheon-gyeon theory and Taejong consequently tried to abdicate his throne. Dissatisfaction of military officers was the background of the request and trial. Taejong tried to abdicate because of the fact that Military officers dissatisfying to the demolition of Sasa-jeon and distribution of land criticized Ha, Ryun and Min, Mu-gu(閔無咎) who was Taejong’s cousin had a discontent regarding to the distribution of military power. Taejong used Cheon-gyeon theory as an excuse. The trial of abdication finally made a way to remove Min’s party. In the ninth year of Taejong’s era, Ha, Ryun’s trial of resignation and Taejong’s trial of abdication via Cheon-gyeon theory recurred. This time Taejong aimed to remove I, Mu(李茂) who was close to Min’s party and took a big role in Taejong’s enthronement. I, Mu had military power under his control for a long time and there was military party following him. Though Taejong removed I, Mu apparently for the reason of taking Min’s side, the main reason of his removal was the fact that I, Mu was the leader of a military party. Taejong accepted Ha, Ryun’s resignation request so as to make Ha, Ryun who was close to I, Mu irrelevant to the I, Mu’s removal.
Taejong’s announce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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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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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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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 1차 FAIL (등재유지)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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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10 | 학술지명변경 | 한글명 : 전남사학 -> 역사학연구 | KCI등재 |
2006-03-21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전남사학회 -> 호남사학회영문명 : Chonnam Historical Association -> Honam Historical Association | KCI등재 |
200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3-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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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68 | 0.68 | 0.68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63 | 0.6 | 1.183 | 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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