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경주김씨(慶州金氏) 학주공파(鶴洲公派)의 대두와 기호학계에서의 위상 = The Rise of the Hakjugong-pa of Gyeongju Kim Clan in 18th Century and its Status in Giho 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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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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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172(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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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서산 大橋[한다리]에서 세거했던 경주김씨 학주공파의 부상과 이를 가능하게 했던 動因을 遡及하여 분석한 것이다. 이들은 경주김씨 내에서 대안군파, 태사공파, 좌랑공파, 장단공파를 이어 학주공파로 분파되었다. 이들을 기록한 족보는 태사공파의 후손을 기록한 1685년(숙종 11)의 乙丑譜와 1784년(정조 8)의 甲辰譜가 있다. 족보 편수의 본래적 목적인 世系의 정비에 을축보가 김자수-김세필로 이어지는 사림 표방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라면, 갑진보는 왕실의 일원임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었다.
경주김씨 태사공파의 족보 간행을 둘러싼 수보 목적의 변화는 가문 내 중심축의 변화가 선행한 것이었고 동시에 정순왕후의 왕비 간택을 계기로 촉발된 학주공파의 대두가 존재했다. 하지만 단순히 왕후의 등장이 곧 그러한 변화를 가능케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정순왕후의 至親들은 정치적으로 南黨-僻派을 조직하고 학문적으로는 湖論의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남당이 자립할 수 있었던 까닭은 정순왕후의 후원 외에도 호론의 학문적 조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고, 여기에서 金漢祿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김한록은 호락논쟁이 격화되는 시기에 호론의 종장 韓元震에게 수학하였다. 김한록은 한원진에게 호론의 학문적 정체성을 물려받았고, 점차 호론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하는 위치로 나아갔다. 하지만 호론은 주요 학자들의 사후 학통의 전수를 지속하지 못하였고, 김한록이 사후 八字凶言으로 충역 시비에 휘말리면서 벽파에 속하던 경주김씨들이 연좌되었다. 이는 벽파와 호론이 역사적 흐름에서 단절된 사건이기도 하였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호론이 역사 속에 재등장한 것은 일제의 침략이 가시화되는 근대전환기에 이르러서였다. 1895~1896년 홍주에서는 홍주의병이라는 반개화·반침략 반일투쟁이 일어났는데, 이때 의병의 이념적 기반이 호론에 근거한 것이었다. 이때 의병을 주도한 金福漢, 金商悳, 李偰 등은 모두 호론을 계승했다는 의식을 담지하고 있었는데 학통에 있어서 호론의 적전으로 김한록을 지목하였다. 이는 내포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김한록의 호론 내의 위상이 비로소 추인된 것이라 할 수 있다.
This article analyzes the emergence of of Kim Hong-wook of Gyeongju Kim Clan, who lived in Daegyo, Seosan, and the key motivation that made it possible. They were divided into Hakjugong-pa following the Daeangun-pa, Taesagong-pa, Jwaranggong-pa, and Jangdangongpa within Gyeongju Kim Clan. Eulchukbo in 1685 (the 11th year of King Sukjong's reign), which recorded the descendants of Taesagong-pa, and Gapjinbo in 1784 (the 8th year of King Jeongjo's reign) are the genealogical records of Gyeongju Kim Clan. If Eulchukbo had an intention to emphasize the advocacy of Sarim leading to Kim Ja-su and Kim Se-pil in terms of the original purpose of organizing genealogy, the purpose of organizing Gapjinbo was to reveal that it was a part of the royal family.
The change in the purpose of organization surrounding the publication of genealogical records by Gyeongju Kim Clan’s Taesagong-pa was due to the change in the central force in the family, and simultaneously, the rise of Hakjugong-pa, triggered by selection of a spouse for the Royal family-the royal family’s selection Queen Jeongsun-had a great influence. However, simply the appearance of the Queen did not make such a change possible. At that time, Queen Jeongsun's close relatives politically organized Namdang-Byeokpa and academically, played a major role in Horon. The reason why the Namdang was able to stand on its own feet was because of the academic assistance of Horon in addition to the support of Queen Jeongsun, where Kim Han-rok's role stands out.
Kim Han-rok studied with Han Won-jin, the instructor of Horon, at a time when the Horak debate was intensifying. Kim Han-rok inherited the academic identity of Horon from Han Won-jin, and gradually moved to a position that plays a central role in Horon. However, Horon failed to continue the transfer of scholarship after the death of major scholars, and Gyeongju Kim Clan, who belonged to Byeokpa, was taken over as Kim Han-rok was embroiled in a dispute over the loyalty with the "Eight letters of curse[Palja Hyung-eon 八字凶言]" after his death. This was also an event in which Byeokpa and Horon were cut off from historical stream.
Horon, which had subsided below the surface, reappeared in history when the Japanese invasion became visible. From 1895 to 1896, an anti-Japanese struggle broke out in Hongju under the banner of anti-enlightment and anti-invasion called the Hongju Righteous Army. Kim Bok-han, Kim Sang-deok, and Lee Seol, who led the righteous army, all had a sense of inheriting Horon, and they pointed out Kim Han-rok as the heir of Horon in terms of academic background. This can be said that Kim Han-rok's status within the horon was formed around the Naepo area, and that status was finally confirm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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