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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메이지 시대 양명학과 근대화 = Youmeigaku and Modernization in the Meiji Period in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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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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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Japan, Youmeigaku is generally talked about as an idea that supported the Meiji Restoration, that is, in connection with ‘modernization’. In that understanding, the perception that it is ‘Japanese’ thought rather than Confucianism is clearly revealed.
Modern Japanese intellectuals such as Miyake Setsurei and inoue tetsujiro positioned Confucianism as ‘philosophy’, especially discussed the relationship between Youmeigaku and Western philosophy. They also tried to utilize Youmeigaku to improve national morality. Therefore, that Confucianism was denied as a feudal ideology, but it was ‘rediscovered’ to foster national consciousness. The Imperial Rescript on Education had a great effect on that. In addition, such as Uchimura Kanzo and Nitobe Inazo, connected Christianity with Youmeigaku, or insisted on the revival of Youmeigaku as being friendly to Bushido as a Japanese ideology. We should pay attention that in such context, obedience and loyalty to the emperor, the great monarch, tended to be accepted consistently.
Higashi Keiji founded the Yangming Society and published the Youmeigaku, which lead the boom of Youmeigaku in the latter half of the Meiji era. In the magazine, the purpose of the revival of Youmeigaku in the recognition of the era of empire Japan, which is the lord of Asia after the victory of the Russo-Japanese War in 1905 and is comparable to the Western powers, could be clearly seen. The main direction of the Youmeigaku award was developed by the logic that Japan had a Yangmingist background rather than China or Korea.
At the same time, we can see the transformation of the logic that connects the Confucian characteristics of Japan and Youmeigaku by regarding ‘practice’ as the racial characteristics of the Japanese. Moreover, such ‘execution’ of Youmeigaku leaded to the legitimacy that it must be expanded to Korea and China.
The perception that links Japan’s Youmeigaku and modernization once appeared in Korea. Even though such perceptions were created in Japan’s modern nationalism, the process those perceptions were derived to China and Korea inform us of the fact that it is a separate subject of research. In that respect, the fact that Park Eun-sik and Choe Nam-seon visited the Yangming Society of Japan should be noted as a big ‘incident’ in the history of Yangmingism in Korea.
일본에서 양명학은 일반적으로 메이지유신을 지탱한 사상으로서 즉 ‘근대화’와 연관지어 회자되며, 그러한 이해 속에는 유학사상이라기 보다 ‘일본적인 것’이라는 인식이 명확하게 드러난다고 하겠다. 본고는 일본의 근대 양명학이 일본적인 것으로서 자리매김되는 과정을 추적하기 위해, 근대화 담론의 흐름 속에서 메이지기 지식인들의 양명학 논의와 현창의 양상을 고찰하고자 한다. 미야케 세쓰레이, 이노우에 데쓰지로를 비롯한 일본의 근대 지식인은 ‘철학’으로서 유학을 자리매김하면서 특히 양명학과 서양철학의 관련을 논하면서 이른바 문명개화 풍조의 폐해를 극복할 국민도덕의 향상에 양명학을 활용하고자 하였다. 봉건적 이데올로기로서 부정되었던 유학이 국민의식 함양을 위해 ‘재발견’되는 데에는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근대 국가의 성립과정에 등장한 교육칙어의 영향이 지대하였다. 아울러 우치무라 간조나 니토베 이나조 같은 이들은 기독교와 양명학을 연결하거나, 일본적인 사상으로서 무사도와 친화적인 것으로서 양명학 부흥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러한 문맥에서는 천황이라는 절대 군주에게 복종과 충성을 모순 없이 받아들이게 할 수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할 것이다.
한편, 히가시 게이지는 양명학회를 창설하고 기관지 『양명학』을 발간하여 메이지 후반의 양명학 붐을 형성하였다. 거기에는 1905년 러일전쟁 승리 후 서양 열강에 비견되는 제국 일본이란 시대인식에서 양명학 부흥의 목적이 뚜렷하게 보인다. 양명학을 서양의 근대학술뿐 아니라, 일본 고유의 전통과의 관련성을 부각시킴으로써 중국이나 조선보다 일본이 양명학적 소양을 가진다는 논리를 전개한다. 아울러 ‘실천’을 일본인의 인종적 특성으로 간주하고, 일본의 유학적 특징과 양명학을 연결하는 논리의 전화가 보인다. 또 이러한 일본적인 것으로서의 양명학의 ‘실행’은 조선과 중국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정당성으로 이어진다.
일본의 양명학과 근대화를 관련시키는 인식은 일찍이 조선에서도 보인다. 이것은 그런 인식이 일본의 근대 내셔널리즘 속에서 작위된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중국과 조선으로 파생되어 가는 과정이 별개의 연구대상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런 점에서 박은식과 최남선이 양명학회를 방문한 사실은 한국 양명학사의 커다란 ‘사건’으로서 주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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