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읍취헌 박은의 「영후정자(營後亭子)」 시제(詩題)와 관련된 영보정 창건내력 검토 = A Study on Park Eun’s Poems with Title of “Yeonghujeongja” and the Concealment Establishment of Yeongbojeong in Boryeong
저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20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469-501(33쪽)
KCI 피인용횟수
0
DOI식별코드
제공처
소장기관
Yeongbogjeong is a pavilion located in Chungcheong Sooyeong Castle, Soseong‒ri, Ocheon‒myeon, Boryeong‒si, and Eubchwiheon Park Eun‒eun, the most respected poet of the Joseon Dynasty, wrote 5 poems in the “Yeonghujeongja” in 1503.
As an Eubchwiheon’s representative work, the poem was honored as a role model of the poem in Yeongbojeong for the next four hundred years, with this poem’s popularity, Yeongbojeong became to join the ranks of nationwide famous pavilions while Chungcheong Sooyeong became the most popular destination in the world.
As the poems of Yeongbojeong and “YeonghuJeongja” are inseparable like this, they are subjects of attention from that time to the present, but it was not discussed why the title of the poem was so decided.
So, in this study, it is to be revealed that the reason why Park Eun was unable to proudly present the pavilion and he had to put on a falsehood, not a real one even though “Yeonghujeonja” was a poem about a pavilion, and the political factors at the time.
In Joseon Dynasty society, the destruction of a family in a massacre of scholars or a serious crime of political strife and the brutal execution to death made people shudder at the bare thought of it by maximizing their fear, and it seemed that the case of Sahwa (damage caused by historical records) made the writers hold their brush when writing after carefully considering and thinking over and over.
The answer to why he titled the poem “Yeonghujeongja” came from a paper on the establishment of Yeongbojeong by Kim Myung‒rae (2019) that ‘Yeongbojeong was not first built by Lee Ryang in 1504, but it was established by Kang Soon in 1468.’ When Park Eun wrote “Yeonghujeongja”, he knew that Yeongbojeongja was built by Kang Soon 36 years ago. The writers who later wrote poems about Yeongbojeon after Park Eun also knew this, but they didn’t mention anything, probably because it was the unwritten rule of the time. Kang Soon was a high‒treason criminal who was executed because he was related to Namyee’s conspiracy, then how they could write Yeongbojeong, which he established, as the title of a poem.
So far, writers have doubts as to why the title of the poem “Yeonghujeongja” should be, but have not identified its cause‒and‒effect relationship and traced its reasons in studies related to Park Eun’s poems or Yeongbojeong.
Therefore, it is considered that revealing inside story is an achievement of this study.
영보정(永保亭)은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 충청수영성에 소재하는 정자이며, 읍취헌 박은(揖翠軒 朴誾)은 조선최고 시인으로 추앙받는 인물로써 1503년에 「영후정자(營後亭子)」 5수를 이 영보정에서 지었다.
이 시는 읍취헌의 대표작으로써 이후 사백년 동안 영보정 제영시의 전범으로 존숭되었으며, 이 시의 유명세에 따라 영보정은 전국적인 명정자의 반열에 오르게 되고 충청수영은 천하의 명승지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이렇게 영보정과 「영후정자」 시는 불가분의 관계로써 당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주목대상이지만 그 시제(詩題)가 왜 그렇게 작정(酌定)되었는지 그 원인에 대해서는 논의되지 아니하였다.
이에 따라 박은은 어찌하여 「영후정자」 시가 어떤 정자의 제영시(題詠詩)임에도 그 정자를 당당하게 내세우지 못하고, 실체가 아닌 허상(虛像)을 내세워야 했는지에 대한 이유와 당시에 정치적 요인에 대하여 밝혀보고자 한다.
조선 시대 사회에서 사화(士禍)나 정쟁의 옥사(獄事)에서의 멸문(滅門)과 참혹한 극형 집행은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극대화시켜 주어 생각만 해도 치를 떨게 하였고, 사화(史禍)의 사례는 문인들에게 있어 글을 쓸 때에는 신중하게 앞뒤로 재보고 또 생각해 본 후에 붓을 잡도록 생활화되어 있었다고 본다.
왜 「영후정자(營後亭子)」라고 시제를 붙였을까 라는 과제는 ‘영보정은 1504년 이량(李良)이 처음 지은 것이 아니라, 1468년 강순(康純)이 창건했다’는 김명래(2019)의 영보정 강순 창건에 관한 주장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박은은 「영후정자」를 지을 때 영보정이 36년 전에 강순이 창건했던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박은 이후에 영보정 제영시를 지은 문인들도 이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았던 것은 그 시대의 불문율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강순은 남이(南怡)의 옥사에 연류 되어 사형당한 대역 죄인인데, 그가 창건한 영보정을 시의 제목으로 어떻게 쓸 수 있겠는가.
지금까지 문인들은 박은의 시에 관련된 연구나 영보정에 관련된 연구에서, 「영후정자」라는 시제가 왜 그래야 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겠지만, 그 인과 관계를 파악하고 그 원인을 추적하지는 아니하였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27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9-03-01 | 학술지명변경 | 한글명 : 정신문화연구 -> 한국학 | KCI등재 |
201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7-03-07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The Academy of Korean -> The Academy of Korean Studies | KCI등재 |
201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5-07-07 | 학술지등록 | 한글명 : 정신문화연구외국어명 : Korean Studies Quarterly | KCI등재 |
2004-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3-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1-07-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71 | 0.71 | 0.71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79 | 0.82 | 1.267 | 0.22 |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학술연구정보서비스(이하 RISS)는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대학학술본부 장금연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