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혜의 땅 의연한 삶,가일마을
이 책은 안동권씨 동성마을인 가일마을에 대한 연구서이다. 철학,문학,민속학 등의 전공자들이 현지조사와 문헌기록을 바탕으로 학제간 연구를 수행한 결과물이다. 따라서 가일마을의 총체적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다고 생각된다.
가일마을에는 “안씨 터전에 권씨 문중”이라는 말이 전해오는데, 이 말은 이 곳에서 순흥안씨가 터를 잡았고, 안동 권씨가 번창했다는 뜻이다. 안동 권씨 문중의 가일마을 입향조인 권항이 마을에 정착하게 된 계기는 마을의 터주대감이라고 할 수 있는 풍산류씨 류서의 사위가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류서의 장손자가 아들이 없는 상황에서 순흥 안씨를 사위로 맞이하였기에 순흥 안씨도 줄곧 가일마을에 터를 잡고 안동 권씨와 함께 살아 왔다. 이렇게 가일마을에는 풍산류씨, 안동권씨, 순흥안씨가 차례로 들어와 살고 있지만, 외부에는 대체로 안동 권씨의 동성마을로 알려져 있는 것이 현실인데, 이는 가일 마을에서 안동 권씨 문중에서서 가장 많은 인재를 배출 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가일마을의 안동 권씨는 조선 초기에 화산 권주라는 걸출한 인물을 배출함으로써 명문가의 기틀을 닦게 된다. 그러다가 권주와 그 자손들은 갑자사화와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처형당하거나 귀양을 가게 되어 가문이 유지되기 힘들 정도로 심대한 타격을 입게 된다. 이런 위기상황에서도 예안으로 귀양갔던 권주의 장남 권질이 퇴계 이황을 사위로 맞아들임으로써 벼슬이 아닌 학문으로 가문을 유지해 나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다. 성리학과 예학이 사회 전반을 지배하게 되는 조선 후기에 가일마을은 병곡 권구라는 대학자를 배출하여 마을의 명성이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다. 그런데 벼슬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했던 병곡이건만 노론과 소론간의 격렬한 당쟁의 여파가 병곡과 가일마을에 큰 시련을 안겨주게 된다. 영조의 왕위 계승권을 부정하며 반란을 일으킨 소론의 이인좌 일파는 병곡을 가장 중요한 포섭 대상자로 지명하고 반란에 가담하기를 강요했던 것이다. 긴급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된 병곡을 친국했던 영조의 결단으로 역적의 누명은 벗었지만 가일마을의 선비들은 벼슬을 단념하고 학문에만 전념하는 가풍을 더욱 확고하게 다져 나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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