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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별산대놀이 상좌·옴중춤의 전승양상 고찰 = A review on the transmission aspect of Sangjwa chum and Omjung chum in Yangju Byeolsandae N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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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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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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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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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5-320(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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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study aims to examine the processes of changes of the two main roles, Sangjwa(the young Buddist monk) chum and Omjung(the monk with a boil on his face) chum, performed in Yangju Byeolsandae Nori, on the basis of Chumsawi (dance- movement).
Above all, having studied many artistic remains performed by Jo jong sun, Jung han gyu, Park jun seup, Kim sung tae from 1929 to 1942, two main roles, in which Geodeureum chum is now an essential part in almost all performances, were then played only in Kkaekki chum to Taryong Jangdan without performances of Geodeureum chum.
In case of Sangjwa chum, players had performed ad libitum and without restraint only on the basis of five sorts of Kkaekki chum‘s movements. In Omjung chum, witty remarks along with the drama had become more important factors than dances. Let alone two main roles, other parts then also showed no big changes in dance performance. Performers just tried to maintain its slender existence within stifling atmosphere because of oppressions and restraints during the Japanese imperialism.
After the restoration of independence in 1945, Kim sung tae and his disciples made a great effort on the restoration of Talnori. During the Korean war, many players also endeavored to keep a good track of Talnori, teaching and training their young followers. Especially performers such as Park jun seup, Park sang hwan, Kim sung tae, and Lee jang sun put much more efforts on restoring Talnori. From that time, Geodeureum chum began to appear in two main roles' performances. In Sangjwa's performances, Byeogsa ritual dance, which was performed to Taryong Jangdan, changed into performances to Yeombul Jangdan, and Kkaekki chum -originally slow and ritual dance, became very fast and active one. Geodeureum chum, called Yongteulim, was added in Omjung chum, so that dance had more important role in performance. Even at this time, dance movements were not clearly and completely organized and arranged, because Geodeureum chum's performance was not clearly defined as orderly dance movements but was regarded as just a movement.
After Geodeureum chum being designated as a cultural treasure, Lee byeong kwon took over the task from Park sang hwan, Sangjwa chum's performer, so Geodeureum chum became much more well organzied, arranged and orderly. Geodeureum chum played by Sangjwa had almost the same order of scenes and movements as Geodeureum chum played by Yeonnip. Based on this performance, the order of dances and movements was consistently arranged and settled. Following Park jun seup's performances, Jangsam was more widely applied and used in Omjung chum than ever before, so Omjung chum became much more organized and arranged. Well-arranged Omjung chum had also almost the same dances and movements as Nojang chum's. Yeonnip and Nojang's performances were not directly and intentionally studied and applied to two main roles in Yangju Byeolsandae Nori. Players seemed to borrow those parts naturally through many times of performances.
Through their persistent efforts, Jangdan and dance movements have more clearly and completely been organized, establied, and improved through many years' performances. And dance movement can be performed exactly to Jangdan, so we have more complete and orderly types of dance movements. Thanks to many performers' efforts, Sangjwa chum has been established as one that only top performer can play, and Omjung chum has become an integral part in Yangju Byeolsandae Nori.
본고는 양주별산대놀이의 주요배역 중 하나인 상좌와 옴중의 ‘춤’을 중심으로 전승양상을 살펴본 연구이다. 먼저 1929년부터 1942년까지 조종순, 정한규, 박준섭, 김성태 연희자를 토대로 조사된 자료들을 살펴본 결과, 현재 거드름춤으로 유명한 두 배역 모두 타령장단의 깨끼춤만 연행하였다. 상좌의 경우 다섯 종류의 깨끼사위를 중심으로 연희자의 재량에 맞춰 자유롭게 연행되었다. 제2과장에서 연행된 옴중은 춤보다는 재담이 주가 되는 배역이었다. 일제강점기의 연행을 살펴본 결과 두 배역은 물론 다른 배역의 춤에도 큰 변화가 보이진 않았다. 이는 당시 일제의 억압으로 인해 제한된 환경 속에서 탈놀이의 명맥만을 유지해왔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해방이후부터는 김성대를 중심으로 탈놀이의 복원에 많은 힘을 쓰게 된다. 한국전쟁 중에도 연희자들은 탈놀이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연희자들을 길러내는 등의 노력을 해왔다. 종전 이후 살아남은 연희자는 박준섭, 박상환, 김성태, 이장순이었으며, 이들을 중심으로 탈놀이 복원을 꾸준히 이어갔다. 이시기부터 두 배역에 거드름춤의 연행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상좌는 그간 타령장단에 행하던 벽사의식무가 염불장단에 연행되었고, 의식무였던 깨끼춤은 매우 활발한 춤으로 변모된다. 옴중도 용트림이라 불리는 거드름춤의 연행이 추가되어, 춤의 비중이 매우 높아졌다. 이때까지 거드름춤의 연행을 사위로 구분하지 않고, 행위만을 서술한 것으로 미루어보아 춤사위가 완벽하게 정립되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 지정이후, 상좌춤의 연희자가 박상환에서 이병권으로 넘어가면서 이전의 연행을 중심으로 한층 더 정리된다. 당시 상좌가 연행한 거드름춤은 연잎이 연행하는 거드름춤의 구조와 같았으며, 본 구조를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춤의 순서를 정립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옴중춤은 박준섭 이후의 연행부터 기존에 비해 장삼을 쓰는 전개가 조금 더 순차적으로 정리되었다. 정리된 옴중춤의 연행구조도 노장춤의 연행구조와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였다. 두 배역 모두 연잎춤과 노장춤의 구조를 직접 분석하여 안무하였다기 보다는 연희자가 춤을 연행해오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 구조가 차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처럼 두 배역 모두 오랜 기간 보존해오는 과정에서 연행되는 장단과 춤사위가 늘어났으며, 사위가 장단에 맞게 정리가 이루어져 춤이 더욱 깔끔해졌다. 여러 연희자들의 노력 덕분에 상좌춤은 ‘상당한 경지에 오른 연희자만이 출 수 있는 춤’으로 옴중춤은 ‘양주별산대놀이를 대표하는 춤’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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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8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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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7-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6-04-10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미등록 -> The Society of Korean Performance Art and Culture | KCI후보 |
2006-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5-03-21 | 학술지명변경 | 외국어명 : 미등록 -> The Research of Performance Art and Culture | KCI후보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39 | 0.39 | 0.34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43 | 0.41 | 0.715 | 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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