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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초기 승려의 貢物 防納 = Buddhist Monks’ Bangnap in Early Joseon
저자
이병희 (한국교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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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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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연도
2023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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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5-50(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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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ddhist monks engaged in very active Bangnap activities amid the considerable withdrawal of the Buddhist temple economy in the first half of Joseon. This study focused its review on Bangnap granted by the government to Buddhist monks rather than Bangnap they personally did. One was entitled to Bangnap only when he had the ability to procure goods. Buddhist monks had the ability. As Buddhist temples were the subject of economic activities, Buddhist monks possessed considerable information about all kinds of goods, engaged in commerce themselves in many cases, and had substantial personal wealth.
Granted the Bangnap permit, Buddhist monks and organizations carried out different jobs including making and distributing roof tiles, building the Suryuksa, making the inner and outer coffins, taking out books, publishing Buddhist scriptures, and relieving starving people(the four major Wons: Hwalinwon, Itaewon, Bojeowon, and Hongjewon). These works held huge significance in society, and the government decided to offer Buddhist monks the Bangnap privilege and had them pay for the costs with profit. Buddhist monks accepted these duties based on the premise of technological power, labor force, and mercy. The list of their Bangnap goods included firewood, straw mats, charcoal, lumber, Saengchu, and iron. Many of the items were available in forests, and the list of the Bangnap items contained no goods related to animals.
Buddhist monks personally visited villages and collected high Bangnap prices after their Bangnap works were over. The prevalence of Bangnap was directly connected to the increased burden of the people, and it should not be neglected. The government tried to set reasonable Bangnap prices and forbade Buddhist monks to collect them themselves, reducing the Bangnap of Buddhist monks itself.
Byeolwayo was abolished in the second year of King Danjong’s reign, and the construction of Suryuksa in Jingwan Buddhist Temple was ended in the first year of his reign. Bangnap for roof tile production and the construction of Suryuksa was no longer during the reign of King Sejo. Guihuso and Gyoseogwan were reorganized in the ninth and twelfth year of King Sejo’s reign, respectively, thus excluding Buddhist monks. The four major Wons were all banned on Bangnap except for Hongjewon in the ninth year of King Sejo’s reign. The Bangnap of Buddhist monks reached its peak from the middle of King Sejong’s reign to the reign of King Munjong and weakened considerably during the reign of King Sejo. There was a total ban on Bangnap during the reign of King Yejong. Bangnap was implemented with Buddhist monks hardly participating in it during the reign of King Seongjong. The extinction of Buddhist monks’ Bangnap activities represented the decline of religious economy and the sharp rise of secular economy.
조선초기 寺院經濟가 크게 위축되는 속에서 승려의 방납 활동이 매우 활발했다. 이 글에서는 승려가 사사로이 행한 방납보다는 국가가 승려에게 허여한 방납을 중심으로 검토했다. 물품 조달 능력을 보유해야 방납을 할 수 있는데 승려는 그런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사원이 경제활동의 주체였으므로 승려들은 각종 물화에 대해 풍부한 정보를 소지했고, 승려 자신이 상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또한 상당한 개인 재산을 보유한 수도 있었다.
방납을 허여받은 승려와 기구는, 기와의 제작 보급(別瓦窯), 水陸社 조영(津寬寺), 棺槨 제작(歸厚所), 서적 印出(校書館), 佛經 간행(刊經都監), 飢民의 구휼(활인원·이태원·보제원·홍제원) 등을 수행했다. 이런 일은 사회적으로 큰 의미를 갖기 때문에 승려에게 방납의 특권을 부여해 이윤으로 그 경비를 조달토록 한 것이다. 승려는 기술력과 노동력, 그리고 자비심을 전제로 이런 소임을 담당했다. 승려가 방납하는 물품은 吐木, 草芚, 正炭, 成造木, 生芻, 鐵 등이었다. 山林에서 확보할 수 있는 것이 많았으며, 동물과 관련된 품목은 방납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승려들은 방납한 뒤 높은 防納價를 고을에 가서 직접 징수했다. 방납의 성행은 백성의 부담 증대와 직결되는 것이어서 방치할 수 없었다. 정부에서는 합리적인 방납가를 설정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고, 승려가 직접 징수하는 것을 금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승려의 방납 자체를 축소시켜 갔다.
별와요는 단종 2년에 혁파되고, 진관사 수륙사 조영은 단종 1년 경에 종료되었기 때문에, 기와 생산이나 수륙사 조영을 위한 방납은 세조대에는 사라졌다. 귀후소는 세조 9년에, 교서관은 세조 12년에 개편되면서 승려를 배제하였으며, 4대원은 세조 9년 홍제원을 제외하고 모두 방납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승려의 방납은 세종 중반에서 문종대를 걸쳐 熾盛하고 세조대를 거치면서 크게 약화되어 갔다. 예종대에 이르러 방납에 대한 전면 금지 조치가 취해졌다. 성종대에 가면 방납이 행해지기는 했지만 승려가 그것에 참여하는 일은 거의 보이지 않게 되었다. 승려 방납 활동의 소멸은 종교 경제가 퇴조하고 세속 경제가 크게 부상함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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