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후반 영남 조각승 승호(勝湖) 작 나한상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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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연도
2012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KDC
609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87-118(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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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부터 신봉되기 시작한 나한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도 여전히 신앙의 대상으로 받들어졌다. 고려시대 베풀어진 나한재는 가뭄 해소를 위해 비가 오기를 기원하거나 적을 섬멸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되었다. 조선시대에도 나한은 왕실을 중심으로 꾸준히 신봉되었다. 1400년 정종이 화장사에 오백나한상을 새로이 조성한 것을 비롯하여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나한에 대한 기록은 1554년 명종까지 이어지지만 억불정책이 날로 심해지면서 나한신앙도 소원해졌다.
16세기 말과 17세기 초반에 걸쳐 있었던 국가적인 어려움은 불교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전란 중에 불교의 위상이 높아지게 되었고, 더불어 사찰 재건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나한전 불상 조성은 대부분이 17세기 중반부터 18세기 초반에 걸쳐 이루어졌다. 전라도를 비롯한 남해안 지역에서는 색난(色難)과 그의 계보가 활발하게 움직였고, 경상도와 남해안 일대에서는 승호와 그의 계보 조각승들이 주도적으로 활동하였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 승호는 1678년 경남 청도 천주사(天柱寺) 불상(현 청도 덕사 봉안)을 시작으로 1688년 경북 군위 인각사 불상까지 7건의 불사에 수화승으로 활약하였다. 그는 천주사와 부산 기장 장안사(1684년) 그리고 인각사에서 석조석가삼존불좌상과 십육나한상을 제작하였다. 그가 조성한 7건의 불상 중에 천주사와 장안사, 경남 창원 성주사(1681년) 등 3건의 명부전 존상이 있으며, 1685년에 경북 청송 대전사에 석조삼존불좌상이 있다. 승호가 수화승으로 활동하면서 남긴 작품은 나한상과 시왕상을 모시는 전각에서, 돌을 주재료로 하여 조성되었다.
승호가 제작한 1678년 청도 덕사와 1684년 기장 장안사 나한상은 조선후기 나한상 의습에서 발견되지 않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왼쪽 가슴 가사 매듭부분에서 늘어진 두 가닥의 끈 처리, 둘째 왼팔에서 좌우 입연을 사각형의 고리로 처리 한 것, 셋째 가사의 첩을 양각으로 처리한 것이다. 그리고 복두나한이나 항용나한이 없으며, 서수를 다리 위에서 양손으로 받쳐들고 있는 모습도 승호의 작품에서만 보인다. 이러한 모습들은 같은 시기에 전라도에서 활동한 색난계의 나한상과는 전혀 다르고, 그 외의 조선후기 나한상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승호계보 나한상의 특징적인 양식이 보이는 경주 불국사, 청도 용천사, 운문사, 군산 상주사의 나한상도 승호와 그의 계보에 의해 만들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Since Three Kingdoms period, the arahat was widely worshiped, and through following dynasties, The Goryeo and The Joseon dynasty, we could find various written and visual representations for this faith. In The Goryeo dynasty, the arahat rituals were performed to resolve severe drought or to repulse foreign enemies. The Joseon dynasty’s royal family members also were enthusiastic patrons for the arahat belief. From 1400 to 1554, many written records about practicing the arahat belief were presented in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However, various repressing Buddhism policies, initiated by literati class, made the arahat belief wane.
From the late 16th C.E. to the beginning of17th C.E, a catastrophic disaster, triggered by Japanese invasion, also brought a huge damage to the Buddhist circles. However, monks’ volunteer military campaigns against Japanese army played a significant role to enhance the status of Buddhist circles in Joseon dynasty. The elevated status of Buddhism also helped to regain royal family’s patronages to reconstruct damaged temples and monasteries.
The records of rendering Buddhist sculptures in Arahat hall are usually shown from the middle 17th C.E. and the beginning of18th C.E., the Seaknan’s sculptor school seemed to participate in production of Buddhist sculptures in Jeolla province temples. Seungho’s arahat sculptures are mainly shown in Gyeongsang province as well as South Sea cost area. Seven votive inscriptions, testifying the Seungho monk sculptor school’s activities, have been found. They primarily used stone to carve Buddhist sculptures. If we consider that other sculptors mainly used woods, the Seungho’s monk sculptor school seems to specialize in stone carving.
Seungho’s arahat sculptures, both produced in 1678 at Deoksa and in 1684 at Jangansa, have special features, which well present the idiosyncratic style of Seungho’s monk sculptor school. The first is the way to carve falling two drapery shapes from arahat outer garment’s left knot, and the second is square-shape hooks to fasten arahats’ outer garments in the left arm. The third is the design of a letter, embossed on the edge of outer garment. The fourth is that Seungho’s monk sculptor school carves neither an arahat with a hood nor an arahat with a dragon. These features help to assume artists of buddhist sculptures with no votive inscription as well as written documents. Several arahat sculptures with features mentioned above are found at Bulguksa, Yeongcheonsa, and Sangjusa. All of these arahat sculptures in those temples have similar characteristics of Seungho’s arahats, so I assume that the artist of these sculptures is Seungho himself or a member of his monk sculptor 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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