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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東의 關王廟를 통해 본 지역사회의 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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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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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104(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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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官의 안동 관왕묘의 건립에 대한 지역사회의 담론과 관왕묘 건립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어떠한 전략을 펼치는지를 중심으로 하여 안동 관왕묘의 존속 양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임진왜란 이후 관왕묘의 건립에서부터 현재에 이르는 통시대적인 관점으로 신앙형태는 어떠한 변화와 지속을 거듭하였는지도 함께 논의하였다.
먼저. 선조 31년( 1598) 국가의 공적 廟로써 안동 관왕묘를 건립하게 된 시대적 배경을 검토했다. 다음에는 선조 39년(1606)에 안동 유림의 반발로 西嶽의 東臺 현 위치로 移安한 시기, 이어 숙종 37년(1711)에 이르러 명나라 군대의 철수 이후 황폐한 상태에 놓여진 관왕묘를 국가차원에서 정비를 하는 시기로 크게 나누어 지속과 변화의 양상을 짚어 보았다. 그 결과 안동의 관왕묘는 보편성과 함께 지역적 특수성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1598년 명나라의 眞定營都司 薛虎臣에 의해 城內 北山頂에 처음 세워진 국가차원의 안동 관왕묘가 건립된 후 8년만인 1606년에 안동향교와 대치되어 있다는 이유로 유림에서 관왕묘의 철수를 요구하게 되었다. 이에 官에서 현재의 위치인 西岳 東臺로 관왕묘를 이전할 수밖에 없었던 일련의 사건은 관왕묘에 대한 안동지역사회의 여론과 동향을 여실히 반영하고 있다.
관에서는 관왕묘를 이전하는 구실 즉, 정당성을 관왕의 현몽과 서악의 풍수지리적 형국에서 찾게 된다. 지역사회와 관 차원에서 풍수지리적 형국을 어떻게 자신에게 유리한 관점으로 해석하며, 이용하는가를 통해 관왕묘를 둘러싼 지역사회에서 야기되는 문제와 민간신앙으로 정착된 양상을 보다 정치(精緻)하게 살필 수 있었다. 요컨대 관왕묘를 이전하기 전, 관왕이 고을 원에게 좋은 자리로 옮겨달라는 설화가 동원되고, 다음으로는 서악산의 풍수지리적 형국이 虎頭穴이어서 虎食을 많이 당하기 때문에 軍神인 관왕의 氣로써 호두혈을 눌러야 한다는 풍수지리적 정당성이 동원된 것이다. 이처럼 국가차원의 관왕묘 건립과 안동 지역사회의 대응양상을 통해 볼 때 안동 관왕묘는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관왕묘가 국가 차원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는 것은 관왕묘의 보편성이라 할 수 있지만 유림의 반대에 의해 관왕묘의 자리를 옮기는 것은 안동 관왕묘의 지역적 특수성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관왕묘를 이전하는 구실을 관왕의 현몽과 풍수지리적 형국으로 해석하는 것 역시 특수성에 해당된다.
신앙대상으로서의 관우는 관성제군을 신으로 모시는 무속인들과 미륵불을 섬기며 관우를 협시보살로 모시는 관성교 등에 의해 신앙되어 왔다. 안동의 관왕묘 역시 후전도 미륵종불을 섬기는 이에 의해 현재 관리되고 있다. 관우의 財神ㆍ治病ㆍ祈福의 기능은 지속되고 있으나 실상 안동지역에서 관왕에 대한 신앙적 인식은 그리 강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This study gives an over view of a local community concerned with the establishment of Gwanwangmyo, an ancestral shrine worshiping Gwanu in the era of Three States, China, under the government in Andong and the existence legitimacy of Gwanwnagmyo in Andong, based on the strategy that was used to get legitimacy for its establishment. This study also shows how the form of a faith has changed and been sustained from the establishment of Gwanwangmyo after Imjin-waeran to the present.
First, we looked into the historical background by which Gwanwangmyo was established as the public ancestral shrine in Seonjo 31, 1598. Next, we looked into the durability and the nature of the change, by dividing into two parts, Firstly, the time of moving an ancestral tablet or the scroll of a portrait to Dong-dae, Seo-ak because of the opposition of the Confucians at Andong in Seonjo 39, 1606. Secondly, the time of maintenance of the ruined Gwanwangmyo by the government after the withdrawal of the army of the Ming dynasty in Sukjeong 37, 1711. As the result, we found that Gwanwangmyo in Andong had a localized view as well as a general view.
The Confucians demanded the withdrawal of Gwanwangmyo because it stood up against Andong Hyanggyo in 1606, eight years after Gwanwangmyo under the government was established at Buksanjeong by Seol Hosin who managed Jinjeong-yeong in the Ming dynasty, 1598. Accordingly the series of events by which people felt the need to move Gwanwangmyo to Dong-dae, Seo-ak showed the public opinion of Andong community about Gwangwangmyo clearly.
The government set down the reasons for moving Gwangwangmyo according to Gwanwang’s dream and the theory of divination based on the topography of Seoak. We were able to ascertain the problems caused by Gwangwangmyo in the local community and how it took root as a folk belief in detail, that is, understanding how the theory of divination based on topography was viewed favorably and had an influence on the condition of the community and the government. In other words, people brought something into play as following: the tale, by which Gwanwang asked a country magistrate to move it into a good place, and the reasons on the theory of divination based on topography, according to which people suggested the need to control Hoduhyeol, the hole with the shape of a tiger, using Gwanwang’s strength because the appearance of Seoak-san was the shape of Hoduhyeol and had caused a tiger's attack. As a result, we could be sure that Gwanwangmyo in Andong held an important status as suggested above.
We can consider it as a general view of Gwanwangmyo that it held an important status in the national situation, while we can also consider it as a localised view of Gwanwangmyo that it moved its place because of the opposition of the Confucians and the cause of its movement was considered as a result of Gwanwang’s dream and the geographical position.
Gwanu was considered as the being like a faith by the person following the shamanist custom, who served Gwanseong-jegun as a god, and Gwanseonggyo, which served Maitraye and considered Gwanu as Hyeopsi-bosal. Gwanwangmyo in Andong was also managed by persons serving Maitraye of Hwucheondo. We found that Gwanu’s ability of being like a god, healing illnesses and granting wishes was sustained but the belief in considering Gwanwang a faith was po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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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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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52 | 0.52 | 0.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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