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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lcolm C. Fenwick의 토착화 선교에 관한 평가 : Henry Venn의 삼자 원리를 중심으로 = An Appraisal on Malcolm C. Fenwick’s Indigenous Mission : Focusing on Henry Venn’s Three-Self Princip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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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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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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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1-317(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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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 2019 is the year of blessing and appreciation for the 130th anniversary of Malcolm C. Fenwick’s mission work in Korea.
When Fenwick came to Korea in December 1889, he had a strong desire to preach the gospel to the gentiles due to premillennial eschatology. Thus he planted 200 churches and produced 250 ministries without any denominational support. Unlike other missionaries, Fenwick was accomplished for forty six years because it succeeded in indigenous mission. Therefore, Dr. Min, Kyongbae called Fenwick, “a great man of indigenization.” Indigenous mission means that the indigenous church itself is able to be self supporting, self-governing, and self-propagating without outside help. It took thirteen years that Fenwick was succeed in indigenous mission. In fact, Fenwick was hooked on ethnocentrim for a long time. However, after he met an indigenous leader, Shin Myunggyun, Fenwick’s idea was completely changed. After Fenwick had sent Shin Myeong-gyun as the head of Chungcheong-do mission in December 1901, Fenwick recognized the significance of the indigenous leader because Mr. Shin had planted twelve churches for two years. Eventually Fenwick appointed Shin Myeong-gyun as the chief director of Gongju Bible School on February 10, 1903.
After that, the indigenous leader was able to directly teach and preach, and then the church grew explosively.
This led to the establishment of the Church of Christ in Corea, a beginning of Korea Baptist Church, in 1906. At last Fenwick was able to bloom in faith mission, region-beyond mission, and the missionary work in Northeastern Asia. This paper aims to reevaluate Fenwick’s self-supporting, self-governing, and selfpropagating mission in view of Henry Venn’s three-self principles, and to study what strengths, vulnerabilities, makes up for the weakness while Fenwick worked. Furthermore, the writer wishes that Korean Church will take a step forward by discovering the right direction. In fact, Fenwick was opposed to the Nevius mission policy(comity) because he opposed it vigorously by heart although he accepted comity outwardly. In Chapter 1, the writer looks at the background of Fenwick’s indigenous mission. In Chapter 2, the researcher studies the characteristics of Fenwick’s indigenous mission, and in Chapter 3, the writer deals with why Fenwick could succeed in indigenous mission. In Chapter 4, the researcher evaluates Fenwick’s indigenous mission. This writer wishes that Korean Church, under the stagnant period of Korean mission, will awaken the eye once again and make a new leap forward with the assistance of this research.
2019년은 말콤 펜윅(Malcolm C. Fenwick, 1863-1935) 한국선교 130주년을 맞이하는 축복과 감사의 해이다. 펜윅은 1889년 12월에 내한하였을 당시 전천년주의 종말론에 이끌려 하루라도 빨리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사상이 강하여 생전에 200개의교회개척과 250명의 사역자를 배출하였다. 그가 46년간 다른 선교사들과 달리 후원 교단도 없이 이런 과업을 달성한 것에는 토착화선교에 성공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경배 박사는 펜윅을 “토착화의 거보(巨步)”라 불렀다. 토착화 선교란 외부의 도움 없이 토착인 교회 스스로가 자립(self-supporting), 자치(self-governing), 자전(self-propagating)하는 것을 말한다. 펜윅이 토착화 선교에 성공하기 까지는 무려 13년의 세월이 걸렸다. 자문화우월주의에 빠져 있던 펜윅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게 된 것은 토착인 지도자 신명균을 만나면서 부터였다. 펜윅은 1901년 12월 신명균을 충청도 선교 책임자로 파송한 이후 그가 2년 동안 무려 12개의 교회를 개척한것을 보고 토착인 지도자의 중요성을 깨달아 그를 1903년 2월 10일공주성경학교 원장으로 임명한 뒤 토착인이 직접 가르치고 설교하면서 교회는 폭발적으로 성장하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펜윅은 1906년에 한국침례교회의 전신인대한기독교회를 설립하고 신앙선교, 오지선교, 북방선교에 꽃을피우게 되었다. 본 논문은 토착화 원리인 자립, 자치, 자전을 소개한 헨리 벤(Henry Venn)의 삼자원리를 중심으로 펜윅의 자립, 자치, 자전의 토착화 선교를 재평가해서 어떤 면이 강점인지, 취약점인지, 보완해야할 것인지 살펴보아 오늘날 한국교회에 올바른 선교방향을 제시하여 다시 한 번 도약코자 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다만 펜윅은 네비우스 선교정책에는 반대하는 입장이었음을밝힌다. 왜냐하면 펜윅은 선교지분할협정(comity)을 겉으로는 수용했지만 속마음은 반대했던 자이기 때문이다. 연구자는 1장에서는 펜윅이 토착화 선교를 하게 된 배경을 살펴볼 것이고, 2장에서는 삼자원리를 통해서 본 펜윅의 토착화 선교 특징을 연구할 것이며, 3장에서는 펜윅이 토착화 선교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아보며, 4장에서는 삼자원리의 관점에서 펜윅의 토착화 선교를 평가하려고 한다. 본 논문을 통하여 한국선교 정체기를 맞이한 한국교회가 다시 한 번 선교의 눈을 뜨며 도약하길 소망해 본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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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유지) | KCI등재 |
2012-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11-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9-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8 | 0.8 | 0.81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77 | 0.71 | 0.448 | 0.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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