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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제철수공업의 운영형태와 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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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학술지명
한국중세고고학(Journal of the Korea Middle Ages Archaeological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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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연도
2021
작성언어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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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5-31(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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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이다. 철을 생산함으로서 농기구와 철제무기를 만들어 농업 생산량이 급격히 발전하고 외국이나 국내에서의 전쟁이나 정변에도 우세한 위치를 확보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철 산업 운영은 고구려 보장왕 때에 서울에 쇳가루가 비처럼 떨어졌다고 하여 수도 주변에 많은 제철공장을 운영했음을 알 수 있다. 충북 진천군 석장리에서는 상자모양이나 원통형의 대형 제철로가 있는 4세기 백제의 제철유적이 발견되었으며, 신라는 鐵鍮典을 운영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또한 신라는 경주 황성동에서 발굴된 제철유적을 통해 점차 제철수공업의 모습이 밝혀지고 있다. 발해의 경우, 지부 아래 융부가 있어 병기를 담당하였다고 한다.
이로서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철 산업을 국가관리 대상으로 삼아 운영했음을 보여주는데 고려 또한 마찬가지였다. 고려왕조는 중앙에 군기감을 두어 전국적으로 공납해온 철을 가지고 무기를 생산하는, 국가차원의 제철산업공장이 운영되고 있었으며 지방 또한 주로 소에서 수취한 철로 무기를 생산하는 설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므로 철소는 고려사회에서 특산물을 생산하는 소 중 가장 중요한 곳이었다. 철소는 철을 채광할 뿐 아니라 제련하여 정철을 만들어 군기감 등 중앙관청과 지방관청에 공납하는 일 뿐 아니라 국가의 요구에 따라 무기도 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 중 고려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철 생산지는 충주 다인철소였다. 이곳은 철 채굴 뿐 아니라 제련, 그리고 무기를 만드는 일까지 행해졌음을 보여주는데 정부는 그 중요성을 감안하여 관원을 파견하여 철과 무기생산 등을 관리하였다.
이같은 상황은 몽골과의 전쟁이후 소 제도가 무너지면서 철소도 함께 무너졌다. 그 구체적인 예가 몽골군을 방어하는데 공이 컸다는 이유로 다인철소를 익안현으로 승격시킨 점이다. 그러나 현으로 승격시켰음에도 감무나 현령을 파견하지 않고 계속 충주속현으로 둔 것은 충주목사의 관리 하에 철을 계속 생산하게 하려는 정부의 정책으로 보인다.
철소의 해체는 국가의 주요 기간산업이 무너짐을 의미하지만 한편으로는 소의 장인들이 각지로 흩어져 수공업에 종사하게 됨으로서 민영수공업의 수준을 한단계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철소가 무너짐에 따라 조선시대에 들어가서는 농민에게 공철을 부과하는 염철법과 각 읍에 철장관을 파견하여 광산을 경영하는 철장제를 실시하였다.
고려는 중앙은 군기감, 지방은 양계 주요지역과 양광도의 남경과 광주목, 충주, 청주, 경상도의 경주, 진주, 상주, 전라도는 전주, 나주, 서해도는 해주와 황주목 등이 주로 지역의 철공과 무기생산에 책임을 지고 관리했으리라 추정된다.
이같이 고려시대는 군기시를 중심으로 필요한 무기를 생산하기는 했으나 소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데에 비해 조선왕조는 철산업의 운영이 중앙의 군기시에 주력하고 지방은 자율적으로 운영하게 함으로서 지방의 철 산업은 민간인 비율이 점차 높아져 가고 있었다.
Iron was the most important mineral resources in human history. Iron increased agricultural production with farming tools and allowed rulers superior positions in wars or political conflicts. The iron-making has been a state business since the Era of Three Kingdoms. The iron-making existed as early as the King Bojangwang of Goguryo Kingdom as the history syas that the rain of iron powder poured over the capitol city. Iron-making in Baekje was proved by the large cylindrical or box-shape iron-making furnaces in Seokjangri in 4th century. Silla also operated Cheolyujeon and showed the early iron-making manufacture in the excavated site at Hwangseongdong, Gyeonju. Balhae had the Office of Yungbu under the Ministry of Jibu which produced iron weapons.
Goryo managed its iron-industry as a state business. Goryo established the Gungigam and it operated iron-making factories to make iron weapons throughout the country using collected raw irons. At local level, many Cheolsos also collected raw iron and supplied them to the Gungigam, and more importantly they produced iron weapons by themselves. Recognizing their importance, the central government dispatched officials to supervise the Cheolsos. The most important Cheolso was Dainchelso in Chungju.
The centralized system collapsed as the Cheolso system collapsed after the Mongol invasion. One of the examples is that the government promoted the status of the Daincheolso to a higher level district office, Ikanhyeon, as the Daincheolso greatly contributed to the defense against the Mongols, The central government did not dispatch a magistrate to the District Office of Ikanhyeon as it wanted to control the district continuously directly through Chungju Governor. The disintegration of Cheolsos means the collapse of a main state industry and scattering of the skilled workers to various fields of manufacturing throughout the country. But it contributed to improve the non-official iron manufactures. As the Cheolso system collapsed, Joseon dynasty introduced the Yeomcheolbup systems which gave burden of production of iron on peasants. It also established the Cheoljangje systems dispatching iron officials to each counties to operate the iron mines.
In Goryo, Gungigam took charge of central operation of iron manufacture and the government depended heavily on many local Cheolsos which produced irons and iron weapons. On the other hand, Joseon dynasty focused on the central office, the Gungisi, to operate the iron manufacture at a national level, and let the local non-official manufacturers operate their own iron manufac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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