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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한(在韓) 중국인 교회 설립과 발전에 관한 역사적 고찰 = A Historical Study on the Chinese Church Planting and Growth in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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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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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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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2(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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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의 연구 목적은 한국 교회로 하여금 재한 중국인 교회의 역사를 이해하도록 돕고, 오늘날 증가하는 재한 중국인들을 위한 적합한 중국인 교회 설립과 발전을 위한 선교 전략 수립에 도움을 주려는데 있다. 과거에 재한 서구 선교사들은 중국인 교회 설립을 위해 서로 연합하였으며 자립적인 중국인 교회 설립을 목표로 삼았다. 재한 서구 선교사들은 한반도에 산재한 중국인들이 복음화 되기를 희망했고 주요 도시마다 중국인 교회를 설립하려고 했다. 서울 지역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은 위한 선교 활동은 1912년에 시작되었다. 1913년에 중국으로부터 목회자가 초빙되었으며 그는 문서 행상인의 사역을 병행하면서 성서공회로부터 필요한 비용 일부를 공급받을 수 있었다. 원산 지방 전도자는 Yu Psin-ming이었고 그는 1917년 2월에 도착하여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중요한 활동은 중국인들을 위해 일하는 것으로 그들이 거주하는 숙소들을 방문하고 기독교 책자를 배포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제물포 전도는 1917년 6월 1일에 예배당으로 사용될 임대 건물을 봉헌하면서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 중국인 전도자 손래장은 1920년에 제물포 교회를 사임했으며 중국 남경에 있는 신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1923년에 조선으로 다시 와서 평양에 중국인 교회를 설립했다. 부산 중국인 교회는 1928년 봄에 데밍 여사에 의해 문을 열게 되는데 이는 중국 복음전도단의 부산 방문 결과로 이루어졌으며, 그들은 단원 1명을 부산에 남겨서 전도의 결과로 얻은 중국인들을 돌보도록 하였다. 일제의 한반도 강점 시기에 수행된 재한 중국인 선교는 연합 선교 사역으로 진행되었다. 1913년부터 재한 장로교 공의회와 감리교 공의회는 매년 100옌을 기부하였다. 재한 서구 선교사들은 처음부터 연합적으로 중국인 사역이 진행되기를 갈망하였고 중국인 교회 역시 자치 기반위에 모든 책임을 저들에게 위임하였다. 선교사들은 재한 중국인 교회가 자립, 자양, 자전하는 교회로 발전하기를 희망하였으나 그 목표를 달성하는데 있어서 여러 가지 장애물이 있었다. 재한 중국인 교회가 독립적인 교회로 성장하는데 가장 큰 어려움은 중국인들의 잦은 이주 습관으로 그들은 더 나은 돈벌이를 위해 계속 이동하였다. 1937년에 F. T. YAP이 작성한 통계표에 의하면 경성 중국인 교회는 재정적으로 독립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 있는 전도기관들을 위해 지원할 수 있는 교회였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오늘날 재한 중국인 선교에 참여하는 한국교회는 복음주의적인 선교 연합 정신을 회복해야 하며 여한중화기독교회 연합회와 연합하여 자립, 자양, 자전하는 중국인 교회 설립에 좋은 동반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더보기The propose of this study is to help the Korean church to understand the History of Chinese Church of Korea and to develop a appropriate Mission strategy for Overseas Chinese Church Planting and Growth in Korea. Western missionaries in Korea as they planning to establish Chinese Church has worked together and aimed to establish a independent Chinese Church. They have longed to see the evangelization of the Chinese all over The Korean peninsula, and try to open the churches in all the large centers. Mission work among the Chinese in Korea was started in Seoul in the summer of 1912. 1913 a paster was secured from China, who at first did part work as a colporteur, and received part of his support from the Bible Society. The evangelist at Wonsan was Mr. Yu Psin-ming. He came in February 1917. He was appointed to work among the Chinese in Wonsan and the Chinese emigrants who were constantly passing through that place. An important of Mr.Yu`s work is to meet these parties of Chinese emigrants, visit them in the inns, distribute Christian literature among them, and preach the Gospel to them. Work in Chemulpo was formally inaugurated on June 1st., 1917, by the dedication of the rented building used as a church. In 1920 Suen resigned and entered the Theological Seminary in Nanking. He returned to Korea in 1923 to open a church in Pyenyang. Fusan station was opened by Mrs. Deming in the spring of 1928, as a result of the visit of the Evangelistic Band from China, they leaving one of their member behind to care for the results of their campaign. Christian work among the Chinese in Korea was carried as Union Mission work. From 1913 on, the Presbyterian Council and Methodist Council have each contributed 100 yen a year toward the work. It has been their desire to have the work a Union one, and to have it on a self-supporting basis fron the first throwing the whole responsibility on the Chinese themselves. They aimed to establish a self-supporting Chinese Churches but there were many obstacles to hinder their goal. One of the greatest difficulties in becoming self-supporting is the migratory habits of the Chinese. They are continually moving. According to the table by F. T. YAP in 1937, The Chinese Church in Seoul is not only fiancially indepenfent but is able to secure a considerable amount towards the support of its sister institutions in other parts of the country. Korean church must learn from the History of Chinese Church Planting and it`s spirit. We have to work together and to develops cooperative spi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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