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사회 통합 이념의 상징, 효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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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연도
2015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KDC
380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96-121(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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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은 조선시대의 효孝는 조선사회를 유지하는 사상적 기둥이고, 국가통치의 가장 기본적인 윤리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감계鑑戒적인 목적으로 제작되고 소비된 고사인물화故事人物畫중 하나가 효행孝行을 행하는 효자孝子 이야기를 그린 효자도孝子圖이다. 본고에서는 조선 사회를 유교로 통합하기 위해 효 사상을 널리 알리고자 국가적으로 판화 효자도가 수록된 행실도行實圖를 편찬하고 보급하는 과정과 효행고사의 확산 사례를 문헌 기록으로 살펴보고, 현존하는 일반 회화 효자도를 대상으로 궁중에서부터 일반 백성까지 효자도의 제작 목적을 알아보며, 효자도 수요가 이어진 19세기의 효자도 수요층을 추측해 보았다.
조선시대 풍속 교화를 위한 해결책으로 행실도를 반포하는 정책은 19세기까지 지속적으로 유효했다. 이 중 가장 많이 반포된 책은 세종대 처음 편찬한 『삼강행실도』이다. 16세기부터는 수록 항목을 1/3로 축소하고 한글 설명을 넣은 『삼강행실도』 산정언해본刪定諺解本을 제작하여 보급에 용이하도록 하였다. 정조대에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를 합해서 발간한 『오륜행실도』는 19세기 철종대까지도 간행이 이어졌다. 이러한 지속적인 행실도 보급 정책으로 행실도에 수록된 효행고사에 대한 이해가 일반 백성들까지도 펴져나갈 수 있었다. 가장 널리 알려진 효행고사로는 「왕상부빙王祥剖氷」과 「맹종읍죽孟宗泣竹」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미 고려 12-14세기 문인들은 시와 글에 효행의 상징으로 인용한 고사였음을 본고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비현실적이고 기이한 효행과 유사한 효행을 나라에 보고하고, 국가에서 포상을 받는 사례가 많아지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기록이 18세기부터 등장하는데, 이는 효행고사의 인지도가 높아졌고, 효자도를 수록한 행실도가 실효성을 거두어 유교국가의 통치의 기초적인 이념으로 효가 자리를 잡았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행실도의 효자도외에도 일반 회화 형식의 효자도가 제작되었다. 궁중에서는 세자가 배우고 익히는 서화첩의 일부로 효자도를 제작하기도 하고, 사대부 계층에서는 자신의 부모를 정성껏 봉양하는 효행을 기존의 효자도에서 도상을 차용하여 효자도로 남기면서 후손들이 효행을 계승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제작되었다. 이렇듯 효자도의 수요가 이어져서 19세기에는 병풍 형식의 다양한 수준의 효자도가 전한다. 19세기 효자도 수요층을 구분하여 추측하여 보았는데, 보수적인 유림과 양반문화를 흡수하고자 하는 중인 및 신분이동 계층으로 제시해 보았다. 안타깝게도 현재로서는 이러한 구분을 증빙할 만한 자료를 찾을 수 없지만, 당시 길상적인 병풍과는 다른 성격의 효자도병풍의 사용 계층을 고민해 보았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Filial piety (孝 hyo) was regarded as an ideological standard and fundamental ethics that support the Joseon Dynasty (朝鮮, 1392-1897) where established Confucianism as the state ideology. Under such ideological climate, hyojado (孝子圖 painting of filial piety), which illustrates stories of filial piety, was produced and consumed for the purpose of discipline. This article explores historical records about the distribution of Haengsildo (行實圖 Illustrated Guide to the Ethics) that includes printings of hyojado and stories of filial piety. It also investigates the production purpose of surviving examples of hyojado and speculates the major consumers up to the nineteenth century.
In the Joseon dynasty, the policy for the distribution of Haengsildo to edify customs was valid until the nineteenth century. Among those publications, Samgang haengsildo (三綱行實圖 Illustrated Guide to the Three Bonds), primarily published in the Sejong period (世宗, r. 1418-50), was the most widely distributed. From the sixteenth century, Samgang haengsildo sanjeong eonhaebon (刪定諺解本 abridged edition with commentaries), which was reduced down to 1/3 scale of the original version, was produced to ease the distribution. Oryun haengsildo (五倫行實圖 Illustrated Guide to the Five Basic Human Relations) combined with Samgang haengsildo and Yiryun haengsildo (二倫行實圖 Illustrated Guide to the Binary Ethics) in the Jeongjo period (正祖, r. 1776-1800) continued being published during the Cheoljong period (哲宗, r. 1849-64) in the nineteenth century. The continuous distribution of Haengsildo enabled the widespread understanding of old tales of filial piety. Of those stories of filial duty, Wang Xiang Splitting the Ice (王祥剖氷) and Meng Zong Sobbing toward Bamboo (孟宗泣竹) were the most famous tales. This paper confirms that literati of the Goryeo Dynasty (高麗, 918-1392) from the twelfth to fourteenth centuries cited the stories as the symbol of filial piety. Written records that concerned excessive rewards for reporting unrealistic and bizarre stories of filial duty appeared in the eighteenth century. It evidences that awareness of tales of filial piety increased and Haengsildo with hyojado was effective to establish hyo as the fundamental ideology of the Confucian state.
In addition to hyojado published in Haengsildo, hyojado in a general painting format was also produced. The court commissioned hyojado to discipline a crown prince while the gentry-class hoped that their descendants succeed the moral duties when citing the traditional iconography of filial piety. Various versions of hyojado formatted in the folding screen have survived due to the constant increase of the demand. This paper suggests that both the conservative gentry-class and middle-men who were willing to absorb the aristocratic culture could be the major consumers of hyojado in the nineteenth century. Although written evidence for this conjecture is scarce, this paper has its significance in concerning potential consumers of hyojado scree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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