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후보
15~16C 前半 全州圈 士族社會의 形成과 活動 = The formation and the activities of the society of Sajok, influential local families, in the Jeonju Area between fifteenth and early sixteenth
저자
오경택 (전주성심여자고등학교)
발행기관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1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후보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141-221(81쪽)
KCI 피인용횟수
9
제공처
소장기관
全羅道라는 행정 구역명이 등장한 이래 그 중심지 역할을 수행한 지역은 全州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전라도 혹은 호남의 역사와 문화를 언급하는 데있어 전주를 중심으로 한 전북 지역은 오랫동안 그 논의에서 소외되어 왔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을 찾을 수 있지만 일차적으로 이 지역 역사 연구자의 관심 부족과 그로 인한 자료의 조사 및 정리 부족에 기인한바가 크다. 이에 본고에서는 조선시대 전주를 중심으로 한 全州圈을 설정하고, 이들 지역을 주도해 간 士族들의 제 모습을 고찰하고자 한다. 다만 조선왕조 전 시기를 다루기보다는 우선 16세기까지로 한정하여 그 구체적 실상에 情致하게 접근해 보고자 하였다.
먼저 2장 1절에서는 全州崔氏ㆍ全州李氏ㆍ全州柳氏등의 3가문이 선초 전주권의 有力士族으로 활동하였음을 살펴보았다. 이들 3가문은 이미 여말 上京從士하였고, 조선왕조 개창 이후에도 다소간의 시기 차이를 두긴 하지만 계속해서 文科및蔭仕를 통해 정계에 진출하여 훈구계 사족으로 활동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들 유력사족들은 상호간의 중첩된 혼인을 통해 여타의 전주권 사족들에 비해 확실한 우위를 마련하면서 가문의 성세를 이어가고자 노력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2절에서는 먼저 15세기 중반 무렵 烟村崔德之와 佔畢齋金宗直ㆍ不憂軒丁克仁등이전주권의 성리학 전파와 확산에 기여하였음을 살펴보았다. 전주최씨는 최덕지의강학활동과 후손들의 사림계 인사와의 교유활동으로 인해 선초의 勳舊系사족에서士林系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한편 김종직은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전라도 관찰사로 재직하면서 전주권의 성리학적 가치관의 확산과 학풍진작을위해 의미있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정극인 역시 고현동약 제정과 향음주례의 실시를 통해 이 지역에 성리학적 교화 분위기를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엄격한 學令을 통한 學堂의 운영을 주도하여 괄목할만한 교육적 성과를 얻어내는 등전주권의 학풍 진작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이어서 邑誌類와 實錄, 族譜등을 분석하여 전주권 사림의 범주를 표로 작성하였다. 대체로 보아 土姓보다는 여말선초를 전후하여 새롭게 전주권으로 移居해 오는 성씨 즉 全義李氏ㆍ晉州蘇氏ㆍ文化柳氏ㆍ道康金氏등이 해당 지역의 사족사회를 주도하였으며, 이는 이 시기 다른 지역의 사정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3장 1절에서는 16세기 전주권 사족의 정계 진출 배경으로 경제적 기반ㆍ유력사족간의 重疊된 혼인관계ㆍ강학활동 등이 있었음을 살펴보았다. 특히 각 道別총면적 대비 토지결수를 비교해 보았을 때 전라도 지역은 가장 많은 農地를 보유하고있었으며, 선초 開墾을 통한 토지 결수의 증가라는 점에서도 괄목할만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나아가 전주권 각 지역의 水田農業비율 또한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하게 높다는 점에서 이 지역이 풍부한 경제적 여건을 가지고 있었음을 확인하였다.
마지막으로 전주권 출신의 사림계 인사 중 15-16C 전반의 정국 하에 사림 정치의확산과 관련하여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는 李繼孟ㆍ蘇世讓ㆍ宋世珩등의上京從士활동과 그것이 갖는 의미 등을 살펴보았다. 먼저 이계맹은 연산군대의戊午士禍에서 김종직의 문인이라 하여 곤장을 맞고 영광으로 유배되었지만 온건한정치적 입장을 견지하였기에 곧바로 ...
It has been Jeonju that has played a central role in Jeolla-do since the names of the administrative districts in Korea were decided. Jeonju,nevertheless, has been disregarded for a long time when it comes to dealing with the history and culture in Jeolla-do. Several reasons explaining this trend have been suggested, one of which is considered primary or fundamental. It is said that this phenomenon attributes to the lack of data research and collection resulting from the local historians’ lack of interest. The present study attempts to investigate the influential families who formed the Jeonju Area centering Jeonju and then led this region in the era of Joseon Dynasty. This study,however, will confine its range only to the early Joseon, until 16th century, to take a closer look at this phenomenon.
In the first part of the chapter 2, at first, it was looked into whether three families, Jeonju Choi, Jeonju Yi, and Jeonju You, played active roles as influential families in the early period of the Jeonju Area. These three families,who had already taken office at the end of Goryu, the dynasty ahead of Joseon,continued coming into office during early Joseon, though Moongwa, the national civil service examination, or Eumsa, depending upon the degree of the ancestors’ achievement in establishing the new dynasty without taking the examination. They started belonging to Hoongoo, radical and revolutionary political party, even though there were more or less time differences in holding office. It has been evidenced that these families made efforts to maintain this era of prosperity and hold a dominant position over other families in the Jeonju Area through marriage within these families. In the second part, it was investigated whether the scholars such as Choi Dukji, Kim Jongjik, and Jeong Geukin contributed the diffusion or the spread of Seongri-hak, one of the theories based on Confucianism studying human nature and natural laws, in the mid-fifteenth century. Jeonju Choi family obtained an opportunity to change its color from Hoongoo into Sarim, moderate political party, owing to Choi Dukji’s educating local people and his descendants’ efforts to form a relationship with important figures in Sarim. Kim Jongjik, meanwhile, developed meaningful programs to spread the values based on Seongri-hak and boost the academic tradition while he was working as a Gwanchal-sa, provinicial governor, in Jeolla-do for around one year. Jeong Geukin also made a great contribution in stirring up academic atmosphere in the Jeonju Area by leading an educational movement based on Seonri-hak by establishing Gohyundongyak and implementing Hyangeumjoorye. He achieved remarkable educational results by running hakdong, village school, and setting strict school regulations. This section also includes a table showing the range of Sarim, which analyzed Eupjiryu (geography book based on Eup), Silrok (authentic record), and Jokbo (genealogy). It was found out that new families, take Jeoneui Yi, Jinju So,Moonhwa You, and Dogang Kim, moving to the Jeonju Area during the period between late Goryu and early Joseon took control and led the society of influential local families, which was not that different from other regions in this period.
In the first part of the chapter 3, it was examined whether the influential families in the Jeonju Area entered the political world in 16th century based on economic bases, marital relationship between these families, and educating local people. Jeolla-do possessed the most farmland, available for farming and it was a noticeable in that the increase of this farmland in this period was triggered by the reclamation work led by the government in the early Joseon.
Furthermore, it was proved that this area was abundant with opportunities for stable economic condition in terms of high rate of paddy field compared to other provinces. At last, some scholars’ holding office and its effects on the spread of Sarim between fifteenth an...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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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9-05-02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A Laboratory of Korean Studies -> Institute of Korean Studies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12-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11-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2차) | KCI후보 |
2010-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8-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3 | 0.3 | 0.23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36 | 0.38 | 0.553 | 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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