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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연변지역 韓人 ‘集團部落'의 설치와 통제적 생활상 = The establishment and regimental circumstances of the Korean collective village in Yanbian area in 193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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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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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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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C
911.06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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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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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374(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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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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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집단부락’은 일제가 1930년대에 연변지역에서 ‘강제적 수단’을 통해 형성한 한인 집거구였다. 이는 일제가 대륙침략정책을 강화해 가는 과정에서 비롯된 산물이다. 일제는 재만한인들의 ‘비적들로부터의 신변안전’과 ‘자작농창정이라고 하는 경제적 자립’을 명목으로 집단부락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결국 그것은 일제의 침략 논리 속에서 재만한인을 강제로 토지에 묶고, 항일무장투쟁세력과의 연계를 끊고자 하는 것이었다. 연변지역은 일찍이 한인사회가 발달한 곳이었다. 이로 인해 항일무장투쟁이 왕성하였고 이를 탄압하기 위해 군사적 목적이 강화된 특징을 지닌 집단부락이 설치되었다. 이같은 점에서 ‘안전농촌’과 차별성이 드러난다.
집단부락은 1933년부터 1935년까지 매년 세 차례에 걸쳐 모두 28개소에 설치되었다. 이는 조선총독부가 주관하고 조선인민회를 하층 단위로 하여 자위단을 설치하는 등 ‘자작자위’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집단부락은 조선총독부가 제시한 입지조건과 수용인원 선별과정을 거쳐 동양척식회사에 의해서 설치되었다. 3차에 걸쳐 설치된 집단부락은 제1 · 2차 설치기에 비교적 대규모로 추진된 반면, 제3차 설치기에 이르러 규모가 점차 작아지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하지만 1936년 만선척식회사의 설립을 기점으로 다시 본격화된 집단부락의 설치는 해방시기까지 계속된 집단이민으로 이어졌고, 연변지역 한인을 통제하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으로서 작용하였다.
각현에 설치된 집단부락은 각기 비슷한 구조와 운영상태를 보이고 있었으나, 각현의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었다. 가장 친일적인 민회조직을 바탕으로 연길 · 훈춘현 집단부락은 ‘조선총독부 부락’으로 불렸다. 화룡현은 항일무장투쟁세력과의 치열한 교전, 왕청현은 1937년 이후부터의 강제이주, 안도현은 계획적으로 추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가혹한 폭력을 당했던 집단부락으로 특징지을 수 있겠다. 이러한 집단부락 정책의 폭력성과 침략성은 집단부락에 수용되었던 사람들의 구술자료를 통해 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The Korean collective village in Yanbian area was formed compulsorily in Yanbian area in 1930s by Japanese imperialism. It was the product formed in the course of strengthening the continent invasion policy of Japanese imperialism. Japanese imperialism promoted the policy of the collective village under the pretext of the protection of the Koreans in Manchuria from bandits and their economical independence, what is called “a policy to change a tenant farmer into an independent farmer”. But its aim was to bind the Koreans in Yanbian to land and to sever their connection with anti-Japanese militants under Japanese aggression logic. Yanbian area was the place where formerly Korean communities developed. Therefore the anti-Japanese armed struggle briskly spread in Yanbian area and Japanese imperialism founded the collective village with a special feature of military aim to oppress the anti-Japanese armed militants. In this point the Korean collective village is different from “a safe farm village”.
The Korean collective villages were founded in 28 places by 3 times a year from 1933 through 1935. As the village established a body for self-defense with its lower unit, Joseoninminhoi (Korean people’s council) under the supervision of the colonial Japanese government in Korea, it had a special feature of self-defense by itself. The collective village was founded by the Oriental colonization company and its conditions of location and selection process of the persons to be admitted passed through the proposal of the colonial Japanese government in Korea. The villages were founded 3 times. The villages at the 1st and 2nd period were founded comparatively on a large scale, however, the scale of the village at the 3rd period diminished gradually. But the foundation of the collective village which was fully accelerated again starting from the establishment of Manseon colonization company brought about continuous mass emigration till Korea’s liberation from Japanese colonial rule. It played the most effective role to control the Korean people in Yanbian area.
The collective villages founded in each local administrative district (hyeon) were alike in their structure and operation condition, however, according to the condition of the local administrative district, they had different peculiarities. The villages in Yanji and Hunchun hyeon were called the village of the colonial Japanese government in Korea because they had the most pro-Japanese people’s council among the collective villages. As there was a intense battle between the Japanese army and anti-Japanese militants in Hwaryong hyeon and deportation to Wangcheong hyeon was performed after 1937, the Korean people in these areas suffered severe violence. In spite that the collective village in Ando hyeon was founded as planned, the Korean people suffered such violence. The violence and aggressiveness of the collective village policy is revealed straightforwardly in the oral statement of the people who were taken to the collective village.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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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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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7-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6-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FAIL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5-05-20 | 학술지등록 | 한글명 : 한국독립운동사연구외국어명 : JOURNAL OF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STUDIES | KCI후보 |
2005-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3-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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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59 | 0.59 | 0.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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