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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의 완주 송광사 불사와 벽암 각성(碧巖覺性) = The Reconstruction of Songgwangsa Temple in Wanju in the 17th Century and Monk Byeogam Gaks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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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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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169(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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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17th century, Songgwangsa Temple in Wanju, Jeollabuk-do, was constructed on a large scale and it was almost an opening of new temple.
Most of the construction work of Songgwangsa Temple was carried out during the reign of King Injo (r. 1623~1649) and lasted until the reign of King Hyojong. It was a chaotic time when the Later Jin invasion of Joseon (1627) and the Qing invasion of Joseon (1636) broke out. King Injo designated the temple as a special place for praying for the welfare of the nation as well as for the safe return of his two sons [Crown Prince Sohyeon and Prince Bonglim] that had been taken hostage by the Qing Dynasty.
The project, which began in 1622, was almost completed in 1656 (7th year of King Hyojong) when the statues of Sakyamuni Buddha Triads, 16-Arhats (large in size) and 500-Arhats (smaller) were enshrined in the Nahanjeon Hall.
Monk Byeogam Gakseong played a major role in reconstruction of Songgwangsa Temple in Suncheon, Hwaeomsa Temple in Gurye, Ssanggyesa Temple in Hadong, Songgwangsa Temple in Wanju and Beopjusa Temple in Boeun. Many monks, known as a sect member of the monk Buhyu, resided in these temples.
According to the records of the document I first found in Kyujanggak Institute for Korean Studies, (Seoul National University) the loss of the Wonamsa Temple located in Mt. Cheongryangsan from the fire triggered the reconstruction of Songgwangsa Temple.
It is assumed that Crown Prince Sohyeon may have participated in the creation of the statues of Sakyamuni Buddha Triads in Daewoongjeon Hall as a sponsor.
Songgwangsa Temple in Wanju has clearly left the traces of a monk Byeogam Gakseong since the 17th century, and it is notable that it was a temple related to the royal family and that large clay Buddhist Statues have been created.
완주 송광사는 17세기에 현재의 사역에 개창(開創)에 가까운 대대적인 건축 불사(佛 事)를 진행하였다. 송광사의 17세기 불사는 정묘호란(1627년)과 병자호란(1636년)이발발한 혼란한 시기로 인조 때가 중심이었고 효종의 치세 때까지 지속되었다. 1622년에시작된 불사는 1656년 나한전의 석가여래삼존상과 16·500나한상이 조성되면서 일단락되었다. 완주 송광사 불사와 밀접한 관련을 맺은 승려는 벽암각성(碧巖覺性, 1575- 1660)인데 그는 임진왜란 때부터 의승군으로 활동했으며, 1624년(영조 2)에는 팔도도총섭의 지위에 있으면서 전쟁으로 소실된 사찰들의 중건에 앞장선 인물이다.
특히 그는 남승(南僧)으로 일컬어졌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순천 송광사, 구례 화엄사, 하동 쌍계사, 완주 송광사, 보은 법주사의 불사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들 사찰들은 17세기 2대 문파를 형성했던 부휴계 승려들이 머물었던 곳으로 부휴계 문파를 형성하는데 벽암각성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벽암각성의 문도는 1636년<송광사 개창비> 건립을 통해 부휴계 문파의 기초를 마련하기 시작했으며 벽암각성의제자 백곡처능(白谷處能, 1617-1680)에 의해 자리 잡게 되었다.
본 논문은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는 자료를 바탕으로 새로운논지를 전개할 수 있었다. 첫째는 1622년에 송광사 중창이 시작된 계기가 인근의 청량산 원암사의 화재 때문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송광사 대웅전의 석가여래삼불좌상의 조성에 소현세자가 시주자로 참여하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조 때 이루어진송광사 불사의 주체는 벽암각성 문도이고 왕실 인물들은 시주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왕실 인물 가운데 선조의 부마였던 신익성(申翊聖, 1588-1644)과인조의 아들인 소현세자(昭顯世子, 1612-1645)의 관련성을 다루었다. 따라서 완주 송광사는 17세기 이후 조선후기 불교사에 벽암각성의 발자취를 뚜렷하게 남기고 있으며왕실과 관련된 사찰이라는 점과 대형의 소조(塑造) 불교조각을 조성하고 있다는 점에서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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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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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기타) | KCI후보 |
2010-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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