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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사대부의 시문에 보이는 영규대사(靈圭大師)의 정체성과 형상 = The Identity and Shape of the Buddhist Monk Yeong-gyu in the Poems and Prose of Confucian Intellectuals in the Late Joseon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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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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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규(靈圭, ?-1592)는 조선후기 역사서에 불승(佛僧)이며, 임진왜란 때 승장(僧將)으로 활약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는 의병장 조헌(趙憲)과 연합하여 청주성을 탈환하였고, 금산전투에서 일본군과 싸우다가 전사했다. 영규의 이러한 행적은 세월이 흐르면서 사대부들의 시문에 ‘순국(殉國)의 승장’으로 칭송되거나 ‘충렬(忠烈)의 의인(義人)’,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지사인인(志士仁人)’으로 형상화되었다. 그러나 그는 보살의 면모를 지닌 불승이었다. 사대부들이 영규를 ‘순국의 승장’이나 ‘충렬의 의인’으로 부각시킨 것은 불승다운 그의 정체성을 흐리게 한 것이다. 그런데 사대부들이 영규의 죽음을 애도하고 그를 ‘순국의 승장’으로 형상화한 것은 그들이 영규와 임진왜란을 함께 겪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런 예는 임진왜란을 겪고 17세기 초까지 살았던 조위한, 이해수, 구사맹 등의 시에서 볼 수 있다. 한편, 18-19세기 사대부들은 영규를 ‘충렬의 의인’, 또는 ‘지사인인’으로 형상화하였다. 이들은 주로 정부가 편찬한 역사나 재야의 기록물을 통해서만 영규를 인식했다. 그것은 영규가 미처 자신의 어록이나 기록물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사대부들은 영규의 인물됨을 평가하고 추상하는 데 크게 두 가지 시각을 보여준다. 하나는 유교적 이념에 따른 시각, 곧 ‘묵명이유행론(墨名而儒行論:겉모습은 불승이나 속마음에 따른 행동은 유자이다)’의 관점을 고수하여 영규를 유교적 인간상 안에 포괄하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유교적 척도에 따른 평가에 거리를 두고 영규의 실상과 진정을 보려고 하는 관점이다. 전자는 황경원, 정규한, 조인영 등의 글에서 볼 수 있고, 후자는, 이인상, 박지원, 성해응 등의 시문에서 볼 수 있다. 이상의 조선후기 유교지식인들의 영규에 대한 두 그룹의 인식과 형상은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전자의 관점과 태도는 영규의 정체성 확인 작업에 다소 억지와 왜곡을 가져올 수 있는 점에서 경계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더보기Yeong-gyu(靈圭?~1592) is a Buddhist monk in the history of the late Joseon Dynasty, and during the Imjin War, he is recorded as a figure who played an active part as a monk general. He was also said to have won the Battle of Cheongju Fortress(淸州城) in aliance with a Militia commander, Jo Heon(趙憲) and he was killed by the Japanese army in the Battle of Geumsan(錦山). As time goes by, Yeong-gyu was praised as the monk general who defended the country in the poems and prose of Confucian intellectuals. He has been regarded as a “faithful and brave righteous man.” However, he was the Buddhist monk with the appearance of a high priest. As the fact that Confucian intellectuals raised Yeong-gyu as a monk general who defended the country or who was the faithful and brave righteous man, which blurred his identity as a Buddhist monk. However, the Sadaebu(gentry class) mourned Yeong-gyu’s death and they viewed him as a monk general who protected the country is related to the fact that they had lived in the same period with him. Such a case can be seen in poems such as Cho We-han, Lee Hae-su, and Gu Sa-mang who had lived until the early 17th century after the Imjin War. On the other hand, Sadaebu(Gentry class) in the period of 18th-19th century saw Yeong-gyu as “a faithful and courageous man.” because they only could recognize Yeong-gyu mainly through the records of history by the government or unofficial history. It may be because he died without leaving his own articles or books. By the way, Sadaebu(Gentry class) has considered two points of Yeong-gyu based on their ideological tendencies. One is the view of Confucian ideology called ‘Mookmyoengyeeyouhanglone’(墨名而儒行論 : It looks like a Buddhist monk on the outside, but a Confucian on the inside). adhering to the Mookmyeongyeeyouhanglone, they included Yeong-gyu in the part of confucian characters. The other is not the view of Confucian ideology but the view of reality and sincerity. Some researchers wanted to review Yeong-gyu as the man of sincerity at that time. Hwang Kyeong-won, Jeong Kyu-han, and Jo In-young are the researchers for the first view and Lee In-sang, Park Ji-won, and Seong Hae-oong are the researchers for the second view of reality and sincerity. Considering what we ve discussed so far, the viewpoints of Confucian intellectuals in the late Joseon period seem similar. However, it is thought that the former’s viewpoint and research should be wary of the fact that it may bring some distortion and unreasonable view to Yeong-gyu’s identity verification 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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