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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의 자유, 식민자의 권리: 영국 헌정주의, 정착민 식민주의, 그리고 미국 독립혁명의 대의(大義) = English Liberties and Colonizers’ Rights: English Constitutionalism, Settler Colonialism, and the Search for the American Revolution’s Common Ca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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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혁명 전야에 독립파는 미국이 독립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를 걱정하기에 앞서, 북미 주민들의 광범위한 동참을 이끌어낼 혁명의 대의부터 마련해내야 했다. 이 일이 쉽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보다 18세기에 식민지들이 급성장하면서 동부 연안과 내륙 사이의 문화적, 이념적, 정치적 괴리가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식민지민들은 공히 영국 보통법과 헌정체제에 입각하여 자신들의 기본권을 주장하고 특히 북미 식민지의 상황에 맞추어 지역자치를 강조하는 헌정 관념을 발전시켰지만 이런 법 문화는 동부 연안의 주민들 사이에서 특히 고도로 발전해 있었다. 18세기 후반 애팔래치아 산맥 인근의 내륙으로 몰려든 정착민들은 비슷하지만 훨씬 느슨하고 유연한 법 및 헌정 관념을 보이곤 했다. 그들은 영국인으로서의 자유와 권리를 주장하면서도 그 내용에 있어서는 정착민 식민주의에 강하게 기댄 토지소유권 및 지역자치권을 내세웠다.
동부와 내륙 식민지민들을 아우르는 독립혁명의 대의는 따라서 영국 헌정주의와 정착민 식민주의를 접합시킴으로써 만들어질 수 있었다. 동부 연안의 독립파와 내륙 정착민들은 공히 자신들(또는 자신의 선조들)이 야만적인 원주민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 손수 노동을 들여 새로운 식민지를 개척하고 농지를 개간하였다는 점을 들며 이는 곧 식민개척자로서 자신들이 해당 토지에 불가침의 소유권 및 자치권을 창조한 것이라 주장하였다. 나아가 식민지민들의 이런 신성한 권리는 국왕도 전적으로 인정해온 바였고 따라서 식민지민들의 권리가 영국법 및 헌정체제 속에서 보호받을 수 있도록 뒷받침해준 것이라 해석하였다. 군주의 역할을 이렇게 상정한 식민지민들의 정치 담론은 군주가 식민지민들의 자유와 권리를 더 이상 보호해주지 않는 것으로 비춰질 때 그를 향한 강한 실망과 분노로 식민지민들을 결집시킬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독립선언문에서도 드러나듯 독립파는 더 나아가 조지 III세가 원주민들로 하여금 식민지민들에 대한 무자비한 살상을 저지르도록 종용하였다고 성토함으로써 영국 동부와 내륙 주민들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독립혁명의 대의를 완성해 냈다. 독립혁명의 대의가 만들어진 과정을 이렇게 파악할 때 영국 헌정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 정착민 식민주의를 적극 반영한 소유 및 자치 관념이 건국기 미국의 법 및 정치 문화에 깊숙이 녹아들었다고 할 수 있다.
On the eve of the American Revolution, it was entirely unclear whether the British American colonists could find a common revolutionary cause, not to mention win a war against the mother country. What made this an especially daunting task was the considerable cultural, ideological, and political distance separating the interior and coastal parts of the colonies―a distance that had widened with the explosive growth of the colonies. While strong adherence to English common law and constitutionalism, along with a disposition to interpret them in ways that underline personal rights and local autonomy, was widespread among the colonists, that constitutional culture reached sophistication mainly in the coastal parts. English constitutionalism tended to be much more loosely interpreted among settlers who had pushed into the fertile lands around the Appalachian mountains in the later half of the eighteenth century. Although they fashioned their legal and political demands as part of a common pursuit of English liberties, their conception of inalienable property rights and local self-government drew more upon settler colonialism as a core organizing ideology.
The weighty task of finding a common revolutionary cause for both inland settlers and coastal colonists, then, hinged in large part upon integrating English constitutionalism with settler colonialism. Patriot leaders accomplished this task by developing a rhetoric and historical identity that merged settlers’ rights with English liberties. They averred that both for coastal colonists and inland settlers, their inalienable rights of possession and self-government had been firmly established through their (or their ancestors’) hard work of settling colonies while sustaining attacks from savage Indians. Further, they insisted that the king had implicitly but fully acknowledged these rights through charters and royal instructions, thus ensuring that the colonists’ rights would be protected as English rights. A rhetoric placing great weight on the king’s role in upholding the colonists’ rights could easily morph into a language uniting the colonists with a deep sense of disappointment, once they found reason to believe that the king had betrayed their expectations. In addition to galvanizing this sentiment,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claimed that George III had induced “merciless Indian savages” to attack the colonists. The successful creation of a common revolutionary cause depended on such rhetorical strategies conjoining the eastern colonists’ resentment toward the king with the inland settlers’ hatred of Native Americans. The legal and political culture borne from this revolutionary cause, unsurprisingly, would bear the marks of the American revolutionaries’ efforts to blend English constitutionalism with an idealized settler coloni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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