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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의 강역과 하부조직의 시기별 변화 = The Changes of Territory of Jinju and Sub-administrative System Depending on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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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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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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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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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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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39(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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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의 역사와 문화의 특징을 언급할 때 흔히 거론되는 것 중에 ‘南冥學派의 본고장’, ‘1862년 농민항쟁의 선구적 지역’, ‘1894년 경남 서부지역 동학농민전쟁의 본거지’라는 표현들이 있다. 이런 상징적 표현은 진주의 강역이 조선시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변해왔음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고려시대에 진주는 경상도 界首官의 하나로서 경남 서부지역을 통할하는 지방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하면서 여러 고을을 통할하였다. 또한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은 많은 屬邑과 鄕ㆍ所ㆍ部曲 등의 任內를 고을 예하에 두고 있었다. 예종대 이후 진주목의 일부 속읍들이 독립해 나가기는 했지만, 昆明縣 등의 여러 임내가 조선왕조 초기까지 남아 있었다. 조선 건국 후에도 여전히 넓은 강역을 차지하고 있었던 진주는 여러 번에 걸쳐 그 강역이 축소된다. 1419년 진주의 속현 중 하나인 곤명현이 분리되고, 이후 진주 예하의 金陽部曲을 흡수하여 昆陽郡으로 독립해 나갔다. 조선후기 숙종대에 들어와서도 섬진강 일대의 관방을 강화하면서 진주목의 적량ㆍ진답ㆍ화개현ㆍ악양리가 하동으로 이속되었다. 을사조약 직후인 1906년 일제는 합리적인 지방제도 개혁을 내세우며 대대적인 행정구역 개편을 추진하게 되는데, 이때 진주의 강역은 대폭 축소된다. 즉 진주의 75면 중 25개 면이 산청ㆍ하동ㆍ고성ㆍ사천ㆍ남해ㆍ함안 등 주변지역으로 이속된다. 또 한일합방 직후인 1914년에는 전국의 군과 면ㆍ리를 통폐합하여 군과 면의 수를 크게 줄이는데, 이때에도 진주군의 영역 중 일부는 사천군으로 이속되었고, 1906년 진주에서 함안군으로 이속되었던 지역이 다시 진주로 편입된다. 이처럼 진주의 강역은 여러 시기에 걸쳐 점차 축소되어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더보기When the history and culture of Jinju are mentioned, it is usually said that Jinju is ‘the place of origin of Nammyung school’, ‘pioneering region of farmers’ resistance in 1862’, and ‘the place of origin of Donghak(東學) peasant’s uprising in the western part of Kyungnam in 1894’. These symbolic expressions would be hard to understand without assuming that the territory of Jinju went through many changes from Joseon era to the modern era. In the era of Goryeo, Jinju was one of Gyesugwan(界首官) in Gyeongsang province, and played the central role in local administration and governing of many villages. In addition, it governed many Imnae(任內)s such as Sokeup(屬邑), Hyang(鄕)ㆍSo(所)ㆍBugok(部曲) to which local officials were not dispatched. Since the era of Yejong, some Sokeups in Jinju became independent, but many Imnaes such as Gonmyunghyun(昆明縣) remained until early Joseon Dynasty. Even after the establishment of Joseon, Jinju occupied large territory, but the territory became reduced many times. In 1419, Gonmyunghyun, one of Sokeups in Jinju was separated, since then, Geumyang Bugok(金陽部曲) under Jinju was absorbed, and became independent to be Gonyang-gun(昆陽郡). In the era of Sukjong in the late Joseon, as the defense near Seomjin river was strengthened, Jeokryang(赤良)ㆍJindap(陳畓)ㆍHwahae(花開)ㆍAkyang(岳陽) were placed under Hadong(河東). In 1906, right after Eulsa Treaty, Japan promoted rational local governing system and pushed for rearrangement of administrative area, and the territory of Jinju at that time was largely reduced. In other words, 25 myuns of 75 were placed under nearby areas such as Sancheong(山淸)ㆍHadongㆍGoseong(固城)ㆍSacheon(泗川)ㆍNamhae(南海)ㆍHaman(咸安). Moreover, in 1914, right after the treaty annexing Korea to Japan, myunㆍri(面里) across the nation were merged or abolished, resulting in the large degrease of the number of gun and myun. At that time, some part of Jinju territory was placed under Sacheon-gun, and the area which was placed under Haman from Jinju in 1906 was merged into Jinju again. As these suggest, Jinju territory was reduced many times to become the current terri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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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15 | 학회명변경 | 한글명 : 남명학연구소 -> 경남문화연구원영문명 : The Nammyonghak Study Institute -> Institute of Gyeongnam Culture | KCI등재 |
200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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