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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신의 신사참배 인식 연구 = A Study on the Perceptions of Kim Kyoshin on Shinto Shrine Wor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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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수 (케이씨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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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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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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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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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7-307(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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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article aims to reexamine previous studies that argued that Kim Kyoshin opposed Shinto shrine worship. This article corrected errors of existing arguments and through this, urged the Academy of Korean Church History to conduct accurate history research. At the same time, this article argued that tertiary discussions on Shinto shrine worship should be developed to include more than previous studies that simply argue resistance or submission to Japanese colonial rule.
Kim Kyoshin surely took part in Shinto shrine worship. Also, the ideological and theological perceptions of Kim Kyoshin on Shinto shrine worship can be summarized into the following three ways through his words and actions during the 1930s. First, Kim Kyoshin participated in Shinto shrine worship as a teacher and as there are no traces of him displaying serious concern about ‘Shinto shrine worship acceptance’, it would seem that he accepted the view that Shinto shrine worship was a national ceremony. From perspectives that Shinto shrine worship was the duty of citizens, he viewed thatPresbyterian believers should follow the decisions of the General Assembly of the Presbyterian Church with regard to the issue of Shinto shrine worship. This does not differ greatly from his position to publish Bible and Chosen as far as national law allowed. Second, Kim Kyoshin accepted Shinto shrine worship but he had his own religious standards regarding Shinto shrine worship. It was that he could never accept the agreement and promotion of Shinto shrine worship through Bible and Chosen. This seems to be the last stand taken religiously by Kim Kyoshin regarding Shinto shrine worship. Third, Kim Kyoshin appreciated the work and devotion of missionaries in the educational world of Chosun and deeply empathized with their pain but Kim Kyoshin considered the withdrawal of missionaries to be an opportunity for the people of Chosun to take responsibility for the educational world. Of course, the position of Kim Kyoshin was unrealistic.
The withdrawal of missionaries did not reinforce the positions of the people of Chosun in the academic world but led to Japanization penetrating the educational world with more force through the removal of missionaries, who were its obstacles.
At first, Kim Kyoshin had strong critical perceptions regarding Shinto shrine worship but eventually accepted it. If the Shinto shrine worship acceptance of Kim Kyoshin is viewed as a religious surrender, historical evaluations of Kim Kyoshin must be stricter than they are now. At the same time, the historical interpretations and perceptions of the Academy of Korean Church History on Shinto shrine worship should be expanded and diversified. Accurately understanding how Shinto shrine worship was actually understood at thetime and how one individual dealt with the situation is the natural work of history.
본고는 김교신이 신사참배를 반대했다고 주장한 기존 연구를 재검토하는 것이 목적이다. 본고는 기존 주장의 오류를 바로 잡고 이를 통해 한국교회사학계에 정밀한 역사연구를 촉구하였다. 동시에 본고는 일제에 대한 저항과 굴복이라는 기존의 연구 분위기를 넘어 신사참배에 대한 제3의 논의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김교신이 신사참배를 한 것은 분명하다. 또한 신사참배에 대한 김교신의 사상적·신학적 인식은 1930년대 그가 취했던 언행을 통해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김교신이 교사로서 신사참배를 했고, ‘신사참배 수용’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는 점에서 신사참배가 국가의식이라는 견해를 수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국민의 의무라는 관점에서 신사참배 문제에 있어 장로교 신자라면 장로교회 총회를 결정을 따라야 한다고 보았다. 이는 국법이 허용하는 선에서 「성서조선」을 발행하겠다는 그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둘째, 김교신은 신사참배를 수용하였지만 신사참배에 대한 자신의 신앙적 기준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성서조선」으로 신사참배를 찬성하고 홍보하는 것을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는 신사참배에 대한 김교신의 신앙적 최후 보루였다고 판단된다. 셋째는 조선교육계에 쏟은 선교사들의 수고와 헌신에 감사하고 그들의 고통을 깊이 동정했지만 김교신은 선교사들의 철수가 조선인이 교육계를 책임져 갈 수 있는 기회로 여겼다는 점이다. 물론 김교신의 입장은 비현실적인 것이었다. 선교사들의 철수는 교육계에서 조선인의 입지를 강화시킨 것이 아니라 선교사라는 장애물을 제거함으로써 일제의 황민화 정책을 교육계에 더욱 강하게 침투시키는 결과로 나타났다.
김교신은 신사참배에 대해 처음 비판적 인식이 강했지만 결국 이를 수용하였다. 김교신의 신사참배 수용을 신앙적 훼절로 본다면 김교신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지금보다 엄격해져야 할 것이다. 동시에 신사참배에 대한 한국교회사학계의 역사적 해석과 인식도 보다 폭넓고 다양해졌으면 한다. 당시 신사참배에 대한 이해가 실제 어떠했는지, 거기에 한 개인은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역사 본연의 작업이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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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19-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6-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2-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11-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9-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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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0.34 | 0.34 | 0.38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36 | 0.33 | 0.816 | 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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