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I등재
고대 일본 藤原氏와 백제계 渡倭人 = Ancient Japan Surname Fujiwara and the Emigrants from Baekje
저자
박재용 ((재)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
발행기관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PAEKCHE RESEARCH INSTITUTE CHUNGNAM NATIONAL UNIVERSITY)
학술지명
권호사항
발행연도
2011
작성언어
Korean
주제어
등재정보
KCI등재
자료형태
학술저널
수록면
171-194(24쪽)
KCI 피인용횟수
13
제공처
The emigrants from 百濟(Baekje) denote the migrant who settled down based on professional ability before Yamato and the people who drift to Japan after the fail of the Baekje kingdom in A.D. 660 and its descendant. The emigrants before 大化(Taika) resided in the 畿內(Kinai), in particular most of them lived in 河內(Kawachi) and 大和(Yamato). Based on their professional ability and kinship groups, they had became famous literary family relying upon the relationship between dominant families in 畿內(Kinai).
On the other hands, the drifting people after the fail of the Baekje kingdom in A.D. 660 had took part in the political decision-making either at home or abroad of 天智(Tenchi) and 中臣連鎌足(Nakatominomurajikamatari). 天智(Tenchi) and 鎌足(Kamatari) had moved the capital to 近江(Omi) and had deported the emigrants as part of the clan policies. The emigrants had contributed to the establishment the new governance system of 天智(Tenchi) as well as development of 近江(Omi) region. In this process, the government of 近江(Omi) had confronted backlash from other families of 畿內(Kinai) and the emigrants from Baekje before Yamamoto.
Since 壬申(Jinshin)’s rebellion the political activities of the drifting people was not noticeable whereas the activities of the emigrants was remarkable. 藤原不比等(Fujiwaranofuhito) who began to appear in earnest on the stage of politics promoted the regulations and constructed the bureaucracy, relaying on the succession to the Imperial throne and the relationship with 持統(Jitou). The close relationship between 持統(Jitou) and 藤原不比等(Fujiwaranofuhito) seems to be based on the influence of the emigrant, 田邊史(Tanabenofuhito)as well as the succession to the Imperial throne. 藤原不比等(Fujiwaranofuhito)’sstatus in the government became stronger and more solid after he became the Japanese emperor’s fatherin-law to intervene actively in publishing 日本書紀(Nihonshoki).
Although such activities of the emigrants from Baekje relay on the individual ability and their family background, the relationship with the largest bloc, 藤原不比等(Fujiwaranofuhito) could not be ignored.From the documentary survey, it is revealed that the emigrants from Baekje had close relationship with Surname Fujiwara. Through such a history the emigrants assimilated into Japanese society as officials in the government.
백제계 도왜인은 大化 이전 백제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고유 직능을 바탕으로 기반을 잡은 씨족, 그리고 660년 백제 멸망 후 일본으로 건너 간 백제 유민과 그 후손들을 가리킨다. 대화 이전에 건너간 백제계 씨족들은 畿內, 그 가운데에서도 河內와 大和지역에 대부분 거주했다. 이들은 서로 동족관계를 맺고 고유 직능을 바탕으로 기내의 다른 유력씨족들과 결탁하면서 유명한 문인집안으로 성장하기도 했다.
한편 660년 백제의 멸망 후 일본에 건너 간 백제 유민은 天智天皇과 中臣連鎌足의 대내외정책에 적극적으로 기여하게 된다. 천지와 겸족은 씨족정책의 일환으로 근강 천도를 단행하고 그 전후에 백제 유민들을 대거 근강 지역으로 이주시킨다. 백제 유민들은 근강 지역의 개발은 물론 천지조의 새로운 지배체제를 구축하는데 많은 역할을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근강조정은 기내의 다른 씨족들과 기존 백제계 씨족들의 반발을 사기도 하였다.
임신의 난 이후 天武朝에 백제 유민들의 구체적인 활동은 보이지 않지만, 기존 백제계 씨족들의 활약상이 두드러진다. 持統朝에 정치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藤原不比等은 황위계승과 함께 지통과의 관계를 배경으로 율령의 찬진과 시행을추진하고, 관료사회를 구축해 나아갔다. 지통천황과 등원불비등이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것은 황위계승문제뿐만 아니라 田邊史라는 백제계 씨족의 영향도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등원불비등은 천황가의 장인이 된 후에는 『日本書紀』편찬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만큼 그의 조정 내 지위는 더욱 견고해졌다.
백제계 도왜인들이 율령이나 『일본서기』 편찬에 가담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집안의 내력이나 개인적인 능력도 있었겠지만, 당대 가장 큰 세력가인 藤原不比等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다. 여러 자료를 검토한 결과 백제계 도왜인들은 藤原氏와의관계가 매우 밀접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역사를 거친 백제계 도왜인들은 점차 율령제 국가의 관인으로서 일본 사회에 동화되어갔다고 볼 수 있다.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
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6-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5-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유지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2-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
2016 | 0.82 | 0.82 | 0.89 |
KCIF(4년) | KCIF(5년) | 중심성지수(3년) | 즉시성지수 |
0.85 | 0.87 | 1.843 | 0 |
서지정보 내보내기(Export)
닫기소장기관 정보
닫기권호소장정보
닫기오류접수
닫기오류 접수 확인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닫기음성서비스 신청 확인
닫기이용약관
닫기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약관 (2017년 1월 1일 ~ 현재 적용)
학술연구정보서비스(이하 RISS)는 정보주체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위해 「개인정보 보호법」 및 관계 법령이 정한 바를 준수하여, 적법하게 개인정보를 처리하고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법」 제30조에 따라 정보주체에게 개인정보 처리에 관한 절차 및 기준을 안내하고, 이와 관련한 고충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개인정보 처리방침을 수립·공개합니다.
주요 개인정보 처리 표시(라벨링)
목 차
3년
또는 회원탈퇴시까지5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3년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2년
이상(개인정보보호위원회 : 개인정보의 안전성 확보조치 기준)개인정보파일의 명칭 | 운영근거 / 처리목적 | 개인정보파일에 기록되는 개인정보의 항목 | 보유기간 | |
---|---|---|---|---|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이용자 가입정보 파일 | 한국교육학술정보원법 | 필수 | ID, 비밀번호, 성명, 생년월일, 신분(직업구분), 이메일, 소속분야, 웹진메일 수신동의 여부 | 3년 또는 탈퇴시 |
선택 | 소속기관명, 소속도서관명, 학과/부서명, 학번/직원번호, 휴대전화, 주소 |
구분 | 담당자 | 연락처 |
---|---|---|
KERI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정보보호본부 김태우 | - 이메일 : lsy@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439 - 팩스번호 : 053-714-0195 |
KERI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개인정보보호부 이상엽 | |
RISS 개인정보 보호책임자 | 대학학술본부 장금연 | - 이메일 : giltizen@keris.or.kr - 전화번호 : 053-714-0149 - 팩스번호 : 053-714-0194 |
RISS 개인정보 보호담당자 | 학술진흥부 길원진 |
자동로그아웃 안내
닫기인증오류 안내
닫기귀하께서는 휴면계정 전환 후 1년동안 회원정보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으신 관계로 개인정보가 삭제되었습니다.
(참조 : RISS 이용약관 및 개인정보처리방침)
신규회원으로 가입하여 이용 부탁 드리며, 추가 문의는 고객센터로 연락 바랍니다.
- 기존 아이디 재사용 불가
휴면계정 안내
RISS는 [표준개인정보 보호지침]에 따라 2년을 주기로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관하여 (재)동의를 받고 있으며,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휴면계정으로 전환됩니다.
(※ 휴면계정은 원문이용 및 복사/대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휴면계정으로 전환된 후 1년간 회원정보 수집·이용에 대한 재동의를 하지 않을 경우, RISS에서 자동탈퇴 및 개인정보가 삭제처리 됩니다.
고객센터 1599-3122
ARS번호+1번(회원가입 및 정보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