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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세기 高句麗의 樂浪ㆍ帶方 경영과 中國系 亡命人의 정체성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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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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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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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00(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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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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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高句麗 대외정책과 中國系 亡命人의 정체성 인식을 고려하면서 낙랑ㆍ대방지역 경영을 고찰한 것이다. 고구려는 4세기 초반 요동진출을 최종목표로 삼아 대외정책을 추진했기 때문에 313~314년 樂浪·帶方郡을 점령한 다음에도 최소한의 국력만 투입해 이 지역을 경영했다. 그러다가 333~336년 前燕에 내분이 일어나자, 요동진출을 위한 토대를 다지는 한편 다른 지역으로 진출하거나 지배력을 강화했다. 이때 낙랑ㆍ대방지역에도 대동강 북안에 平壤城을 축조해 지배거점을 마련하고 지배력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고구려는 342년 전연에게 도성까지 함락당하는 위기를 맞은 이후, 전연의 침공이 예상되는 지역에 대한 지배력을 더욱 강화했다. 낙랑ㆍ대방지역에는 중국계 망명인을 대거 이주시켜 재지질서를 재편하면서 통치력을 강화했다. 안악3호분의 피장자인 ?壽도 이때 이주되어 고구려의 통제 아래 세력기반을 마련했다. 다만 동수는 저승에서 만큼은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되찾고 싶어 했다. 그는 중국왕조의 질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던 後漢-西晉代를 기준으로 출신지를 표기하고 관작을 자칭하며 이상적인 사후세계를 꿈꾸었다.
350년대 이후 전연이 북중국까지 진출하자, 고구려는 전연과 우호관계를 맺은 다음 남진정책을 추진했다. 이를 위해 고구려는 전진기지인 낙랑ㆍ대방지역의 지배체제를 더욱 확고히 다져 나갔다. 이때 고구려는 재지세력이나 중국계 망명인에게 관등을 수여하며 준관인층으로 편입했다. 덕흥리벽화고분의 피장자인 鎭도 그 중 한 명이다. 다만 鎭도 西晉代를 기준으로 이상적인 사후 세계를 꿈꾸었다. 鎭의 관작도 망명 이전에 역임한 하위직과 고구려로부터 수여받은 小大兄을 제외하면 모두 이상적인 사후세계를 꿈꾸기 위해 자칭한 것에 불과했다.
This thesis proposes to rethink the issue of Koguryo’s control of the Nangnang-Daebang(Ch. Lelang-Daifang) regions considering its foreign policy and Chinese exiles' national identity. Because the ultimate target of Koguryo’s expansion policy in the early fourth century was the Liaodong region, Koguryo tried to consolidate its control over Nangnang-Daebang regions by minimizing national resources after its occupation. Former Yan suffered from internal dissensions due to a succession struggle from 333 to 336 AD. Accordingly, Koguryo fortified its base to advance to the Liaodong region, while taking up other regions and consolidation its ruling power. Koguryo established Pyeongyang-seong(平壤城) fortress in the northern basin of the Daedong River at that time and began to control the Nangnang-Daebang regions on a full scale.
After Koguryo was invaded and even sacked its capital of Hwandoseong(丸都城) by Former Yan in 342 AD, Koguryo fortifyed military forces in the areas exposed to potential attack by Former Yan, such as the Buyeo region. Koguryo attempted to rearrange the ruling order and to build a basis to facilitate local control by relocating Chinese exiles to Nangnang-Daebang regions at that time. Dongsu(Ch. Tongshou), who was the owner of Anak tomb no. 3, was also relocated to this region and he probably consolidated his political basis in relation with Koguryo government in his real life. However, Dongsu hoped to regain his identity as Chinese only in the next world. He regarded the Later Han and Western Jin periods as ideal eras when Chinese dynasties were in good order, and imagined an ideal afterlife by referring to the place of his birth in terms of those periods and proclaiming self-appointed Chinese official titles.
Former Yan took over the northeastern part of the Chinese mainland after the 350s AD. Thereupon, Koguryo established favorable foreign relations with Former Yan in 355 AD and began to launch an expansion policy southward. Koguryo needed to establish firm control over the Nangnang-Daebang regions in order for it to function as an southward advance base. Koguryo began to confer official rank titles upon Chinese exiles and local powers in order to reinforce its local control by absorbing them into a semi-officialdom class. Jin(Ch. Zhen), who was the owner of Deokheung-ni mural tomb, was among them. Jin, like Dong Su, also viewed the early Western Jin as an ideal world and imagined an ideal afterlife based on this perspective. Therefore his Chinese official titles except lower titles bestowed by Chinese dynasties and Kuksodaehyeong(國小大兄) conferred by Koguryo must have been also proclaimed for his imagined ideal afterlife and could have not been used while he was alive.
분석정보
연월일 | 이력구분 | 이력상세 | 등재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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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 평가예정 | 재인증평가 신청대상 (재인증) | |
202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재인증) | KCI등재 |
2017-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계속평가) | KCI등재 |
2013-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10-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8-07-07 | 학회명변경 | 영문명 : The Korean Ancient Historical Association -> The Society for Ancient Korean History | KCI등재 |
2008-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유지 (등재유지) | KCI등재 |
2005-01-01 | 평가 | 등재학술지 선정 (등재후보2차) | KCI등재 |
2004-01-01 | 평가 | 등재후보 1차 PASS (등재후보1차) | KCI후보 |
2002-01-01 | 평가 | 등재후보학술지 선정 (신규평가) | KCI후보 |
기준연도 | WOS-KCI 통합IF(2년) | KCIF(2년) | KCIF(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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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 1.69 | 1.69 | 1.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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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 1.57 | 3.463 | 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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